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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산은 Jan 06. 2019

불필요한 걱정이 아름다운

업무상 공항을 자주 이용한다.  끊임없는 움직임이 있는 곳, 수평적인 흐름 속에 상승과 하강의 수직적인 역동성이 교차한다. 출발하기 전 출장은 가야 할 과정의 여독과 시차의 어려움이 떠올라 그리 내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공항에 도착하면 새로운 힘을 느낀다. 무엇 때문일까? 움직임만은 아니란 생각이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살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모여들고 흩어지고 있다. 동네 공원 산책하듯, 자다 하품하듯 무료하게 공항을 찾지는 않을 것이다. 목적을 가지고 자기 스토리를 가지고 모여드는 곳이다. 설렘이나 기대 두려움이나 희망을 한 줌씩 쥐고 있다. 물리적인 흐름에 스토리가 더하는 남다른 역동성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뿜어내는 적절한 아드레날린을 공유하는 때문이다.

 

충분히 여유 있게 도착해서 탑승수속을 마쳤다. 탑승권을 받아 돌아서며 어디 좀 쉬어 갈까 생각하는데 친절한 승무원이 눈치챈 듯하다.  “빨리 들어가셔야 할 것 같아요. 아시안 게임 중이어서 보안 검색이 많이 강화되었어요. 저 사람들을 보세요. 검색 통과하는데 한 시간 이상 걸리는 것 같아요.”  탑승권을 1차로 체크하는 유리벽 입구까지 늘어선 긴 줄이 예사롭지 않다. 여유 있게 공항에 도착한 것이 다행이다. 한 시간쯤 기다리는 거야 뭐. 시간적인 여유가 주는 심리적인 여유가 있다.  주변을 쫓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볼 수 있다.  심리에 미치는 시간의 영향..  재미있을 것 같다. 언제 한번 깊이 생각해 볼까? 조금이라도 줄이 짧아 보이는 입구를 찾아 종종걸음을 하고 손짓을 하며 일행을 부르는 사람들을 여유 있게 바라보며 유리문 근처까지 왔을 때다.  “아부지, 조심혀 댕겨 와 유.” 다양한 소음을 뚫어내는 이질적인 목소리다. 


한 총각이 유리문 앞에 설치된 펜스에 상체를 숙이고 손을 흔들고 있다. 검게 그을린 얼굴과 주위 사람들에 비해 한자는 더 커 보이는 것만으로도 눈길을 끄는데, 투박한 목소리에 큰 동작이 밤하늘 북극성 같이 드러난다.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오히려 더 부각한다. 어디에서든 일꾼으로 대소사를 헤쳐나갈 것 같은 듬직한 인상이다. 여남은 사람 앞에 ‘아부지’로 보이는 60대 후반 아니면 70 대 초반의 사람이 막 유리벽 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돌아보는 그의 그을린 얼굴과 그만 들어가라는 손짓이 잔상으로 남는다. 건강한 60-70대는 아저씨라 부르기도 할아버지라 하기도 애매하다.  ‘할저씨’라고 해야 하나. 스치는 혼자 생각에 얇은 미소가 피었다.  “아부지 비행기 첨 타는데 좀 도와 주소 잉. 기차는 안까지 들어갈 수 있는디…” 나와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돌직구로 날아온 말이다. 순간 당황했으나 걱정 어린 진지한 눈빛에 민첩함이 깨어났다. “걱정하지 말아요. 안에서 필요하면 내가 도와주지요.” 짧을 대화를 주고받고 밀리듯 유리벽을 통과했다.  


오랜만에 보는 정감 있는 작별에 옛 기억이 떠오른다. 첫 국제선 비행기에 오르던 때, 벌써 스무 해가 훨씬 넘었다. 그때 공항은 얼마나 감성적인 장소였던지. 출국장마다 환송 나온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남는 사람들은 뒤돌아 눈물을 훔쳐내느라 손수건을 놓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은 손을 크게 흔들며 애써 웃음 지었지만 뒷모습에는 걱정과 두려움의 긴 그림자를 남기곤 했다. 후줄근한 그림자 속에서 한 동안 자릴 뜨지 못하곤 하던 사람들. 애절한 표정의 얼굴들을 뒤로하고 긴장 속에 안으로 들어가던 나의 모습도 잠시 스친다. 반면 입국장은 이산가족 상봉장처럼 색깔이 다른 감성이 넘치곤 했다. 가족과 친구들의 환성과 웃음 그리고 기쁨의 눈물이 언제나 널려 있었다. 기대나 설렘이 대세이고 역동적인 오늘의 출국장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감성적 공항 모습이 오버랩된다. 공항 풍경의 변화이고 진화다. 

생각에 잠긴 사이 첩첩이 서있던 사람들이 줄었다. 할저씨가 검색대 앞에 서 있다. 도움이 필요한지 힐끗 쳐다보았다.  전혀 우물쭈물하지 않고, 표정에서 걱정보다는 호기심이 더 있어 보인다.  “흠, 아들이 괜한 불필요한 걱정을 한 거야. 덩치에 답지 않게 애틋한 아들이군.”  


검색 후 출국 확인은 신속해서 줄이 길지 않았다. 출입국에서 인천공항만큼 효과적인 데가 또 있을까?  그가 출국 확인을 받는 모습을 보며 나는 자동출입국 기기를 통과했다.  거의 동시에 통과한 듯하다.  “뭐 도와 드릴까요? 입구에서 아드님이 걱정하며 제게 부탁하던데…” 혼자도 문제없어 보이지만 아들의 눈빛이 떠올라 유리문을 나서며 말을 건넸다. “여길 가야 하는디…”  탑승권 게이트 번호다. 정확히 순서를 알고 있다. “처음이라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마을에 미국 댕겨 온 사람이 있어 수도 없이 들었제. 삼 년도 넘게 준비했어.”  흠 그렇군. 상상 속에서 얼마나 많이 공항을 통과했을까?  “갸도 비행기를 안 타봐서 더 걱정을 하는 거여. 괜한 걱정 말라 혀도. 일 바쁜데 오지 말라 혀도 왔구먼.”  미국 사는 동생이 몸이 좋지 않단다. 죽기 전에 한번 보자 해서 30여 년 만에 가는 길이라 했다. 차분한 말씀에 서늘함이 배어 있다. 더 듣고 싶었지만 탑승수속에 시간이 의외로 많이 걸렸다. 


“그렇군요. 잘 다녀오세요. 저보다 늦은 비행기인데 넉넉합니다. 저쪽 왼편으로 가면 됩니다.” 탑승권에 굵은 형광펜으로 동그라미 표시된 게이트 방향을 알려 주고 돌아섰다. 서두르지 않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아들의 걱정스러운 시선과 손짓이 뒷모습에 교차한다. 좋은 아들이다.  괜한 걱정이라지만 그런 불필요한 걱정이 아름답다. 호기심인지 아픈 동생을 생각하는지 면세점 앞에 멈춰 서기도 한다.  통 유리 큰 공간 오후의 가을빛이 가득하다. 


글/이 산은 (李山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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