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멀리스트 상희 Oct 14. 2021

당신이 남기고 싶은 기록은 무엇인가요?

기록을 하는 이유


한동안 ‘기록’에 푹 빠져있었고, 모든 일을 기록화시키는 일에 열을 올렸었다. 지금도 기록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기록을 하면 할수록 기록의 미니멀리즘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하고 싶은 기록이 너무나도 많다. 그렇지만 나에게 꼭 필요한 기록은 무엇일까? 내가 정말로 남기고 싶은 기록은 무엇일까? 필요한 것만 남기는 삶을 지향하면서 왜 기록만은 욕심내고 안달하며 더더더 많이를 외치고 있었을까? 기록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열심히 기록하는 일은 귀찮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다. 그렇게 힘든데도 기록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겨 놓은 기록들로 내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돌아갈 수 없는 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 자연스럽게 잊히는 것들을 잊지 않게 만든다.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기록의 쓸모이다.


내가 꼭 남기고 싶은 기록은 무엇일까?


학창 시절에도 여느 여자애들처럼 다이어리 꾸미기에 큰 애정이 없었던 내가 기록하는 삶을 시작하게 된 이유에는 여행이 있었다. 

여행을 출발하는 비행기 안에서는 설렘을 안고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글을 썼고, 오래 간직하고 싶은 순간은 한 장소에 머물며 그림을 그렸다. 여행 일정이 힘들고 지치는 날에도 정신을 부여잡고 일기를 썼다. 무엇을 먹었고 어디를 갔는지 여행에서만은 가계부를 기록했다. 돌아보면 여행에서 가장 잘한 일중 하나가 여행의 순간순간을 흘러 사라지게 두지 않고 부지런히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이다. 여행은 사진이 전부라고 말하지만, 여행은 사진이 전부가 될 수 없다. 그날 내가 떠올렸던 생각들은 사진에 나오지 않는다. 내가 감동받으며 바라봤던 풍경들은 사진으로 잠깐만 찍고 돌아서면 잠깐의 시간만 기억하게 되지만 오래도록 한 장소를 바라보고 그림으로 그렸다면 오래도록 그 장소를 기억하게 된다.

여행에서 느꼈던 감정을 글로 남겨 놓았더니 글을 읽을 때마다 그때의 감정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여행에서 생긴 티켓들을 모았더니 사진보다 더 강렬하게 그 순간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에서 느꼈던 모든 것들을 잊고 싶지 않았다. 몸으로 느끼는 것도 중요했지만 내가 느끼는 생각들을 흘러가게 두고 싶지 않았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무기력하게 사라질 나의 생각들을 사라지게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여행 중에 힘든 날에도 기록을 놓지 않았다. 하루 종일 걸었던 날 아주 멋진 풍경을 보았던 날 내가 했던 생각들은 다시 열어볼 때마다 나를 그 순간으로 데려다 놓는다. 맞아 이때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지. 맞아 내가 이렇게 느꼈었지. 그렇게 남겨둔 기록들은 여행이 그리울 때마다 꺼내보면서 위로가 되어주었고, 다시 떠날 수 있다는 용기도 주었다.


또 하나의 기록을 남겨놓으라면 ‘아들의 성장 기록’을 남기고 싶다. 아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조금씩 커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아이의 소중했던 순간순간을 동영상으로 남기고, 아이의 세계를 담고 있는 말의 기록도 아이의 상상 속 세상을 그려내는 그림도, 아이의 성장하는 순간순간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최근에 아이의 하루를 기록하고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기록하는 리추얼을 참여했었는데 한 달 동안 아이에게 편지도 쓰고 이런저런 일과들을 기록으로 남겼었다. 리추얼이 끝난 지 2달 정도가 지났는데 벌써 기억이 흐릿해져 다시 꺼내어보니 맞아 이때 이런 일도 있었지, 이런 날도 있었네 생각하게 돼서 너무 좋았다. 다시 이어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빨리 크는 것 같다. 지나온 시간을 기록으로 더 많이 남기지 못해 아쉽고도 또 앞으로 얼마나 더 빠르게 클지 애틋하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소중한 하루하루가 흐르고 있다.


나에게 ‘기록’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행복했던 순간들을 꺼내 다시 돌아가게 만들어주는 시간이다. 흘러가는 소중한 순간들을 기록으로 남긴다. 힘들 때 언제든 다시 꺼내볼 수 있게.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게. 그리고 내가 살아온 순간들이 의미 있고 행복했다고 나의 기록을 돌아보며 후회도 아쉬움도 있겠지만 그래도 기록을 멈추지 않겠다.




<나의 여행의 기록들>




<하늘 위 비행기 속에서의 일기들>




<아들과 함께했던 제주도 한 달 살기의 기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