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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더언니 Dec 08. 2018

네? 암이라구요?

샤워를 하고 수건으로 몸을 닦는데,

피가 묻어나온다.


가슴에서 피가 계속 나온다.


놀라서 바로 병원에 갔다.



'글쎄요. 검사를 한 번 해봅시다.'

무심한 듯한 의사는 결과는 전화로 알려주겠다고 한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검사 결과에 특이 사항이 있어서요. 조직검사를 한 번 해봐야할 것 같아요."

  


놀란 내가, "네? 특이사항이라뇨?" 라고 되물었을 때,


"암으로 발전되는 바이러스가 보입니다." 라고, 여전히 무심한 말투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전한다.



조직검사.

그 단어가, 예전에는 그렇게나 무섭더니,

처음이 아니라고, 그나마 익숙하다.

그러나 사람이 많은 버스에서 눈물이 나는 것을 멈출 수는 없다.




스물 다섯, 죽음이라는 단어가 처음 피부에 와닿았을 때, 당분간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블랙' 그 자체였다.


두 번째, 서른이 넘어 협박을 받아 다 버리고 도망치게 되었을 때, 그 때 역시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사지가 떨려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였다.




그리고 서른 셋을 앞둔 현재 시점,

애가 벌써 둘이고 혹은 자기 인생을 향하여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그들과 다르게,

아직 개털이고, 해놓은 것도 없고, 불효만 잔뜩 남겨둔 지금의 시점에서 '암'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나는 '시발'을 외쳤다.


"아니, 내 인생 뭔데. 시발. 인간적으로 이러면 안되는거 아님?"


 


공감이 잘 안될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이번엔 이런 반응이라도 할 수가 있음에,

그래도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음에 감사했다.


"내가 살아있긴 한가 보구나." 라는 사실만으로도 꽤나 기뻤다.


그래서 다시 검진을 받으러 오라는 말을 일상으로 흘리고, 그냥 모른 척, 한 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바쁨'을 핑계로, 병원에 가지 않았다.


 

걱정이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별 일 아닐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아파서 죽으면 그냥 죽어야지." 라는 신념을 가진 부모님의 정신적 유산을 물려받아서 그런가, 얼마 뒤 내가 죽는다면, 내가 쓴 글들이, 내가 남겼던 영상들이, 내가 남겼던 음악들이,


'얜 이렇게 살았는데도 밝게 살았네?' 라고,

어쩌면 이렇게라도 조금은 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였다.

   




 


찜찜함을 밀린 숙제처럼 마음 한구석에 팽개쳐 두다가, 마침내 병원에 갔다.


그 무심한 의사는 어제 전화로, "크게 위험한 바이러스는 아닙니다만, 암으로 발전되는건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요. 정기검진은 꼭 받으세요." 라고 전해주었다.


가족들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는데,

조카 주제로 바로 넘어가는 이 쿨함ㅋㅋㅋㅋ


그래, 살고 죽는 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싶다.






그러나,


내 삶이 끝나는 그 날까지,

나의 삶이 꼭 아름다울 수 있다면 좋겠다.


비록 슬픔이 잔뜩 뒤엉켜 있다해도,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전해질 때엔,

따뜻한 온기로,

은은한 향기로 남겨지길 바란다.


말 뿐만이 아닌,

많은 실패와 절망을 버텨내었던,


남들과 다르지 않았던 나의 여리고 작은 마음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온전하게 그렇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내 곁을 지켜주는 주변의 모든 것들,

지금 나의 삶을 더욱 나답게 해주는 모든 사람에게,

늘 감사해하며,

그렇게 살아내고 싶다.


(네? 암이라구요? 라는 소식을 전해들은 버스 안에서, 울면서 썼던 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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