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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더언니 Oct 13. 2019

I hate competition

얼마 전, 대기업 경력직 면접에 참여했다.


나름 일찍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대기실에는 나와 같이 일찍 도착한 대기자들이 방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많았고, 하나같이 빽빽한 공책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여자는 까만 치마에, 하얀 셔츠, 정갈하게 망으로 정돈된 묶은 머리. 남자는 회색 양복에 가죽 서류가방,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었다.



나름 단정한 베이지 원피스를 입고 갔던 나는,

그들과 달라 보여 주눅이 들어있었다.





세명씩 조별로 면접실에 입장을 하는데,


한 줄로 쭉 앉은 면접관들은, 면접자 수 두배보다 더 많은 7명이었으며,

역시나 비슷한 옷차림에 동그란 안경을 낀 남자들이었다.





ㅇㅇ씨는 엘라 노이 공대를 졸업하셨네요?!

ㅇㅇ씨는 스위스 제네바 학교 출신이시네요?!



나는 안 그래도 속으로 '와우'를 외치는데,


한 명은 불어, 영어, 한국어를.

한 명은 독어, 영어, 한국어를.


그래도, 나만 삼개국어를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 더 이상 삼개국어는 놀랄 스펙도 아니라는 사실에 더욱 랐다.



게다가,

졸업 후 나처럼의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아무런 허튼짓 없이 오랜 기간 한 우물만 파서,

무려 경력이 8년, 9년이나 되었다.







여느 다른 면접 때와 같이 면접관들은 나에게 참 질문이 많았다.


"프랑스 가기 직전, 사기당하시고 갈 곳이 없어졌을 때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

"상경계를 학부로 졸업하시고, 석사를 미술로 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글을 쓰신다고 했는데, 회사일과 병행하여 글을 쓰실 수가 있을까요?"

"비누는 얼마나 많이 파셨나요? 어떻게 기획을 하셨는지 말해주실 수 있나요?"






모든 질문에 성실히, 솔직하게 대답하였지만,

나의 대답은 옆 두 사람의 대답과 많이 달랐다.


그들의 대답은 너무나 완벽하게 준비되어있었고,

자신이 쌓아왔던 경력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진행하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나 같이,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과 다르게,

그들은 그 자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보였다.




면접이 끝나기 전부터 나는 알았다.


나는, 다르구나.

그래서 이 사람들이 원하지 않겠구나.






수많은 경쟁 끝에,

사람들은 스펙이라는 무기를 하나씩 얻게 된다.


언어 하나.

봉사활동 하나.

동아리 활동 하나.


그렇게 취업에 필요한 아이템들을 하나씩 갑옷처럼, 방패처럼 갖춰나가며,

또 계속, 그렇게 경쟁을 한다.






나는 스펙을 위해 언어를 공부하지 않았다.
그저 살기 위해서였다.
교양을 위해 예술을 시작하지 않았다.
그저 미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누구에게 보이려고 글을 쓰지 않았고,

'인성'이라는 항목에 부합하려 봉사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저 지나가는 모든 울고 웃는 마음들을 간직하고 싶었을 뿐이었으며,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다였다.



그렇게 가혹했던 모든 순간들을 이유도 모른 채 견뎠을 뿐인데,


나와 그들은 비슷한 갑옷을 입었으나,

싸우는 방법이 다른 사람이 되었다.

싸우는 목적 또한 다른 사람이 되었다.

머리를 쓰며 긴장한 채 사는 것보다 가슴을 쓰는 것이 편하다.

앞을 보는 것보다, 주변을 보는 것이 편하다.

누군가가 쏘아붙이면, 바로 쏘아붙이지 못할 정도로 곰팅이며, 약하지만, 그래도 순간에 감사하고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간교한 것보다, 당하는 것이. 그리고 손해 보는 나의 모습을 차라리 그나마 나은 것이라 여기며 스스로를 토닥이며 산다.





지친 하루 끝에 잠이 들기 전,

남편을 끌어안고 물었다.



"여보는 나 같은 여자랑 결혼하고 싶었어?"


"너 같은 여자가 아니라, 여보랑 결혼하고 싶어서 결혼한 건데?"






참 다행이다.



"ㅇㅇ같은"이 아닌,

딱 '나'이기 때문이라니.


사랑 앞에서는 경쟁이 필요 없어진다.




세상은 1등 만을 기억하지만,

2등, 3등, 꼴찌도 누군가에게는 아주 소중한 사람이다.



그깟 기억되지 않는다 해서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




마음이 놓였다.




세상은 약육강식이며,

끊임없이 경쟁하는 가운데 지혜가 있는 자는 힘이 가지고 세상을 지배한다지만,


나는 안다.

그들도 결국 지치며, 가슴이 따뜻한, 기댈 곳을 찾는다는 것을.





좀 모자라고, 비록 꼴찌더라도 나는 괜찮다.



그저 지혜가 있는 사람도 기댈 수 있을만한,

사랑이 가득한 따뜻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오늘도 사랑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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