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더 언니, 그 사람은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리드도 잘하고, 어딜 가나 분위기 메이커였어요.
소심한 저를 이끌어줄 수 있을까 기대하며 반하게 되었죠. 그만큼 성격이 너무 좋아 보였어요.
그런데, 리드를 잘하는 성격 유형이라 그런지 모르겠는데, 저랑 사귀는 와중에도 주위에 여자가 끊이질 않아요. 오히려 즐기는 것 같았죠. 이 남자, ㅄ인가요?
사실, 누군가를 ㅂㅅ이라고 욕하기 이전 여러분께 고백할 것이 있다.
나도 그랬다.
나도 누군가에겐 ㅆㄴ이었다.
나도, 병신이었다.
나는 한낱 김칫국물이나 교복에 묻히고 다녔던 평범했던 -아니 찌질했던- 쭈구리 중학생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중국 상하이에선 평범하지 않게 되었다.
한국. 일본. 대만 등 기타 국을 통틀어, 중. 고등학교를 통틀어 청음이 가능한 유일무이(唯一無二) 키보디스트였으며, 그 당시 그토록 선망의 대상이었던 일본 꽃미남들로 구성된 학교 대표 밴드에 무려 최초 스카우트를 당하여, 크고 화려한 무대에 올라가는 유일한 -여자-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전 학년 모든 관심을 받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였다.
그 뒤로, 한꺼번에 여러 남자들이 나에게 대시를 하면, 앞에서는 수줍어하는 척, 그렇다고 단칼에 거절하지 않았다.
"상처 받을까 봐..." 라는 말로 그럴듯하게 덮었지만,
사실은 내심 나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가져다주었던 많은 편지들과, 책상 위에 놓였던 비싼 머그컵, 엄청나게 큰 인형, 바구니에 넘치도록 받았던 사탕과 빼빼로. 공연에서 날 쳐다보는 시선들과 함성.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큰 관심이었다.
그런데 나에게 다가오는 호의를 단칼에 자르면, 이 모든 것들을 더 이상 누릴 수 없을 것 같았다.
한동안 나는 꽤 오래도록, 성인이 된 후로도.
그렇게 누군가에게 ㅆㄴ이었다.
나는 밝고 명랑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덜렁 거리기도 하고, 푼수이기도 하고,엉뚱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또 지는 것은 싫어해서 이 악물고 공부할 때는 밤을 새워서라도 공부하고, 시험이 끝나면 누구보다 앞장서서 힘차게 노는 사람이었다.
이 정도쯤이면, 내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남자가 주위에 많은걸 어쩌겠어."
"그냥 걔들이 날 좋아하는 건데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어."
"내가 좋아하는 옷은 이렇게 몸매가 드러나는 원피스야. 너도 그래서 나 좋아한 거 아니었어?"
"알고 사귀었으니까, 네가 감당해야지.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
이런 말을 쉽게 하던 사람이었다.
(정말 부끄럽네요..ㅠ)
성격과 인격의 차이를 몰랐던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주었던 수많은 고통을 배로 받고 받으며, 내가 얼마나 거지 같은 인격을 가지고 있었는지 점점 깨닫게 되었다.
'성격'의 성은 마음心과 날生으로 만들어져,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기질이나 성질에 기반된 것이다.
내성적인 아이는 자라나며, 사회화를 강요시키는 환경으로 인하여 본래의 내성적인 성격을 적당히 외형적으로 바꾸게 되는 방법을 터득하기도 하며,
한없이 외형적이었던 아이는 왕따를 경험하며 말을 잃고 방어적인 성향을 가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을 도우며 칭찬을 받는 아이는 뿌듯한 마음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베풀자 하는 마음을 점점 품어가게 될 것이다.
반면, 이러한 경험이 부족하거나 사랑에 관심이 없다면, 오직 윗사람으로서의 권위로 사람들을 조종하거나, 돈으로 지배하는 능력에만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인성 논란'의 중심이 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타고난 성격과 성질을 기반하여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그렇게 성격이 형성되는 과정 속에서 내가 속한 사회와 타인에 대해 고민하고, 때로는 인내하며 다듬어지는 것이 인격, 즉 사람다운 됨됨이와 품격이 되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사람의 인격을 발전시킨다.
이 사람이 무엇을 좋아할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하며, 그것이 자연스럽게 배려의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고 ‘어떻게 상대를 기쁘게 해 줄까..’ 그것으로 온통 내 의식이 쏟아져 있어서 나에 대한 인식을 잃어버릴 때 오히려 행복해진다.
내 기쁨이 사라져 버리고, 나에 대한 인식이 없어져 버리는 것. 어떻게 이 사람의 마음을 얻고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해 줄까.. 그 의식이 우리에게 설렘을 가져오고 기쁨을 주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원래 연락을 잘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너를 사랑하니까 네가 걱정되지 않게 연락할게.'
'나는 원래 무뚝뚝하고 표현을 잘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애교 부리는 것을 네가 이렇게나 좋아해 줄지 몰랐어.'
'나는 이렇게 붙는 원피스를 좋아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단아한 스타일이라면 긴 주름치마와 셔츠를 입어볼게.'
'널 만나기 전에는 이성들과 가까이 지냈지만, 걱정되지 않게 단둘이 만나지 않을게.'
그렇게 서서히 서로에게 물들어 가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그런데, 절대 나를 바꾸지 않고 상대를 내 원하는 스타일로 바꾸려는 사람이 있다.
상대의 스타일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나의 즐거움을 위해 상대를 바꾸려고 하는 것은 존중이 아니라 이용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안 해주면 삐지고 드러눕는 것. 아이였을 때야 떼쓰고 드러눕는 것이 '오구오구' 하며 허용되지만, 다 큰 성인의 사랑에서 어느 한쪽이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극구 말리고 싶다.
아직 사랑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격이 눈뜰수록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고 존중을 배우게 된다. 미숙한 사랑일수록 상대방의 의지를 꺾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내 고집대로 하는 것. 젊은 남녀들은 흔히 그것이 사랑인 줄 알지만 그것은 상대방을 이용하는 것이지 사랑이 아니다.
아직 나 역시도 완벽한 인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직도 거지 같은 나의 본성(성격)을 발견할 때마다 흠칫 놀라며, 조금 더 조심하고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바랄 뿐이다.
한 때 우린 모두 ㅂㅅ일 수 있다.
그러나 괜찮다.
아직 우리에겐 사랑할 기회가 남아있다.
우리는 그렇게 점점 나아질 것이다.
나의 글을 읽는 이들은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이 권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끝으로 나의 글에 이런 명언을 써주신 구독자님^^
감사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 젊음이 사라져도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더 사랑할 줄 아는, 더 나은 인격을 가진 나를 기대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문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얼마나 성장하는 것이냐인데.. 당신은 사랑하고 있나요? 성장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