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살짝 불편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 진다.
점점 더 치열해져 가는 사회에 열 맞추어 가치관이 병들어가는 어른들,
그리고 그런 아빠 엄마를 두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비교적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공대를 선택하는 아이들.
빛과 소금이 되어야 마땅한 교회가 하루를 넘기지 않아 사건 사고의 중심을 맡고,
나 역시 쏟아지는 경쟁과 유혹들 속에서 얼마나 위태 위태하게 하루를 넘기고 있는지 돌아보기 위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진다. (사실 과거에 이미 썼던 글임ㅋㅋ)
이 이야기의 시작은 나의 혈육 오빠다.
나와 6살 터울의 오빠.
사실,
현재 마흔의 우리 오빠는....
아직도 온라인 게임을 미친 듯이 사랑하며,
아직도 모든 애니를 두루 섭렵하는...
요즘 흔히 말하는 전문 용어로 감히 칭하자면....
덕후다.....
그것도 극심한 덕후.
게다가 우리 오빠라고 말하기엔 나와 참 다른 비주얼을 가진.... 100킬로그램이 넘는....
참 씁쓸한 쇼킹 비주얼의 소유자다. (대놓고 디스ㅋㅋㅋ)
혈육에겐 미안하지만 실제로 진짜로 이렇게 생김.....
여하튼 우리 오빠의 덕후 역사는 아주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이 되었는데.
삐삐, 핸드폰도 없던 나의 어린 시절,
내가 집에서 맡은 가장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는 집에 돌아오지 않는 다 큰 오빠를 찾아 집으로 데려오는 것이었다.
'어디 있는 줄 알고 데려와?'라는 질문이 무색할 만큼,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동네 오락실의 킹 오브 파이터 혹은 철권 앞에서 모니터에 빨려갈 듯한 표정의 빡빡이 머리를 찾거나,
동네 비디오 가게(그 당시엔 만화책도 같이 있었으니) 어느 칸에 기대앉아, 옆에 수북이 쌓인 '괴짜 가족' 혹은 '원피스' 시리즈를 해치워 나가는 빡빡이 머리를 찾아내어,
'오빠, 집에서 찾아. 빨리 가야 해.'
라고 말하면, 나의 임무는 완성이 되었다.
하지만 내 할 말을 전하고도,
오빠가 한참이나 집에 오지 않으면, 그 날 저녁 혹은 밤은 쉴 새 없는 엄마 아버지의 질타로 이어지는데.
이 것 역시, 여느 다른 집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길아.....(심지어 실명 공개.. 쿨럭..) 너 정말 대학 포기한 거니....?'
(이 때 어린 나샛기는 관전잼ㅋㅋㅋㅋ 얄밉 린졍ㅋㅋㅋ)
자, 그리고 이제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2000년, 그러니까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우리 오빠가 고3이 되던 해,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덕후 생활을 뽐내던 우리 오빠는 전문대에 갈 실력도 되지 않아, 집안에서 오빠는 참 많은 골칫덩어리였다.
그렇게 고3임에도, 공부에 전혀 의지가 없던 오빠는 모태신앙답게, 여름 수련회에 참여하게 되는데.
여기서 오빠는 흔히 교회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고',
이제까지의 생활이 바뀌게 된다.
물론, 사람이 휙휙 변하는 것이 참 어려워서 (사람 고쳐 쓴다는 말이 괜히 생기는 것이 아님)
그때도 여전히 우리 오빠는 게임과 만화를 사랑하긴 하였지만,
게임과 만화를 사랑하는 그 와중에,
드럼을 사랑하기 시작하였다.
'고3이 무슨 드럼이니...'라고 만류하는 우리 부모님의 반응에,
오빠는 성적을 올리겠다는 약속을 했고, 정말 신기하게.
게임과 만화와 드럼을 사랑하는 그 와중에, 성적이 오르기 시작하였다.
매 모의고사마다 100점씩.
허허.
(그때 그 시절 100점씩 오른다는 것... 얼마나 점수가 낮았는지 아시겠죠ㅋㅋㅋ 400점 만점 기준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고 3 여름부터 갑자기 100점씩 오르는 성적에, 오빠의 담임 선생님은 너무 아깝다며, 오빠에게 재수를 권하셨고, 우리 오빠는 여전히 게임과 만화와 드럼을 사랑하며ㅋㅋㅋㅋ 재수를 하게 되었다.
진짜 신기하게, 370점 후반이었나.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모두 입 모아 말을 하는 동안,
오빠는 연대와 한동대에(그 시절 정말 핫한 기독교 명문대학교) 원서를 넣었고,
2001년 정말 둘 다 붙었다. (결국엔 하나님과의 의리를 지키고 싶다며 하나님의 대학교라고 생각하던 한동대에 갔습니다.)
하지만 기숙사 생활을 했던 한동대에서도, 우리 오빠의 덕질은 쭉 이어졌고,
군대를 다녀와서도,
졸업을 해서도,
한번 덕후는 영원한지라,
취업을 앞두고도 덕질은 멈추지 않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무렵,
나는 프랑스 대학 입학을 앞두고,
한국에 잠깐 나와 이리저리 인턴을 알아보던 중이었는데, 늘 대기업에 면접을 보려고 이른 아침 분주한 나와 달리,
오빠는 덕질로 인하여 그놈의 영혼 없는 '적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의 음성과 함께... 하얗게 밤을 태워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온 이른 아침을 맞이하였다.
그 극명하게 대조되는 현장을 보며 우리 엄빠는 매일 혀를 끌끌 찼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무리 원서를 내도, 늘 광탈하는 오빠에게,
어느 중소기업에서 연락이 왔다.
사실 말은 안 했지, 취업이라는 압박에 시달려,
오빠의 자존심은 바닥을 치고 있었고, 역마살 낀 우리 가족 구성원답게, 답답한 한국에 살기 싫다던 우리 오빠는 줄 곧 해외 취업을 원했는데,
마침 사람人 채용 공고에 마다가스카르에서 제빵 하실 분을 찾습니다 에 덜컥 지원을 했던 것이다.
'제빵? 오빠가 제빵? 아니 왜? 갑자기?! 뭐, 마다가스카르???'
진짜로 이런 이미지 밖에 생각이 안남..
라는 질문에 '아, 몰라 그냥 나 빵 좋아하잖아.'라는 말을 남기고 오빠는 면접에 갔고, 면접에서 만난 그 마다가스카르의 사장님은 더 의외의 제안을 했다.
사실, 제빵 사업은 사장님의 와이프가 시작하려던 일이었는데,
이력서를 보니, 한동대에 나오셨고.. 제빵 하기엔 좀 아까운 인재 같아서, 원래 사장님 자신이 하시던 건설 사업에 오빠를 데리고 가고 싶다고.
그렇게 오빠는,
내가 프랑스에 사는 동안, 마다가스카르에서 일하게 되었고,
가끔 채팅으로 안부를 물으면,
'잘 지낸다. 그렇지만 아프리카는 좀 지겹다. 중동으로 가보고 싶다.'라는 말을 했었다.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 뒤, 오빠는 정말 중동으로 가고 싶다며 일을 과감히 그만두게 되었고,
현* 건설에서 경력직을 뽑는다는데, 면접을 보게 되었다. 사실 현*에서는 아프리카에서의 경력이 있는 지원자를 내심 바라고 있었는데. 마침 그 많고 많은 지원자 중에, 아프리카 경력자는 딱 우리 오빠밖에 없었고,
오빠는 원하는 대로 중동에 가게 되었다.
그것도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그리고, 쿠웨이트에서 일하던 오빠는 건설 업계에서 제일 복지나 연봉이 세다는 G* 건설에 다시 스카우트되었는데,
G* 건설에서는, 아프리카와 중동의 경력을 둘 다 갖춘 사원을 찾는데 오빠가 적임자로 판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오빠는 여전히 게임과 만화를 지독히 사랑한다.
그리고 역시나 100 킬로그램이 넘는 쇼킹 비주얼이다.
그러나 번듯한 직장도 있고,
예쁜 심지어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새언니를 만나 가정이 생겼다.
오빠의 인생을 옆에서 보며,
실력도, 외모도,
사실 그렇게 세상에서 알아줄 만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렇게 치열하게 살지 않았고,
'이렇다'할 야망이나 꿈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나는,
사실 오빠가 다른 사람과 다른 한 가지 그 무엇을 알고 있다.
오빠는 게임과 만화와 드럼을 사랑했지만,
그 날 수련회에서 만난 하나님을,
마음속 깊숙하게 늘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PS. 이웃님들에게 비주얼 쇼킹을 드릴까 봐 오늘 글의 주인공 당사자의 사진은 과감히 생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