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더' 답게

by 스더언니

늘 어디론가 떠나야 했던 나의 지난 18년.


상해,

데라둔,

갈로,

릴,

뭄바이.



나는 그중에서도 상해를 가장 사랑하였다.




상해의 공기, 상해의 노을 진 하늘, 비가 온 다음날의 플라타너스 거리, 쌀쌀한 날에 길거리에서 사 먹었던 버블티, 택시를 타며 창밖으로 보였던 높은 빌딩들.



내가 거쳐왔던 그 어떤 도시보다,


상해에는 온통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의 추억과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낭만이 가득한 상해만이 내 집이라고, 내 고향이라고 생각하였다.








"네가 공안을 부르던 말던. 니 생명은 네가 알아서 챙겨라. 그러나 나는 너를 당장, 반드시 죽이겠다."




어느 날, 그 협박에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 나왔다.


나의 상해를 그렇게 버리듯, 도망치듯 나온 것을 매일 아파하며 상처로 정의하였다.




줄줄 울면서도 이력서를 썼다.

아무 생각할 수도 없이 바쁜 삶에 나의 하루를 던져놓았다.



그러나 가끔 자다가도 일어나 미친년처럼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울부짖을 때도 있었으며,


높은 곳에서 창문 밖을 내려다볼 때면,

죽고 싶다는 생각보다,

"아 이 정도면. 여기서는 그냥 당장 목숨이 끊어지겠구나."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제발 이대로 죽여주세요.. 라며 베개가 다 젖어 잠들면, 부모님이 들어와 소리 없이 내 머리칼을 어루만지며 같이 눈물을 흘리시며 조용히 기도하고 나가셨다.


나의 브런치 작가의 서랍에는 미치지 않기 위하여 노력했던 모든 흔적, 그러니까 차마 보여주지 못했던 어두운 한숨과 기운이 가득 차 있는 글이 많지만, 울며 글을 써내려 가면서도..


'내가 죽더라도 효도는 하고 죽게 해 주세요.' 라며 이 악물고 다시 하루를 견뎠다.





견디고, 버텼다.





그게 내가 제일 잘하는 거니까..


조용히 지나갈 때까지. 무뎌질 때까지.






웃고,

다시 울고.


웃고.. 웃고..

울고.


웃고,

웃고, 웃고..

웃고.


또 멀쩡하게 사람을 만나고.

울고.





그래,


"괜찮아"라고 말하면, 정말로 괜찮아질 거야.

그때까지 계속 그렇게 부서진 마음을 안고 살자.


억지로 나를 꼭 안아주고 토닥였다.







그러다가 내가 이제까지는 본 적 없는 따뜻하고 세심한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내가 그토록 오래전부터 바라던 따뜻한 사람이 나의 가족이 되었고, 내가 죽기까지 지켜나가야 할 나만의 가정이 생긴 것이다.






숨구멍으로 내뱉었던 나의 모든 마음의 조각들이 모여진 곳에, 사람들이 하나 둘 공감을 해주었고,


신음 대신 내뱉었던 나의 감정의 결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작가라고 부르게 되며, 나는 정말로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강연 부탁, 출간 계약 문의도 들어왔다.




그러나 나는, 그저 웅크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작가란 내가 마주했던 나의 삶의 일부분을 나누는 것이기에, 나의 삶을 묶어 책을 쓰게 되거나, 강연을 하게 되면, 억지로 싸매었던 그 아픈 흉터가 다 들킬까 봐 무서웠다.




사람들이 흉하다고 욕할까 봐,

대놓고 드러내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올해 2월 29일 새벽,

일이 터졌다.




그놈이 다시 나타났다.

나에게 끔찍한 트라우마를 남긴 그놈이,


나의 숨구멍과 같았던 이 곳에 찾아왔다.


2월 29일, 3월 23일 두 차례에 걸쳐 44개의 댓글 테러에 이어 메일까지 보낸 것이다.





"똥글이다."

"거짓 투성이다."

"소문 때문에 자신의 취업이 힘들어졌으니 사과해라."

"본인에게 사과를 하지 않으면 소송을 한다."




3년이 지나도록,

나는 그 일을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또 나를 찾아와 사과를 요구한다.





억지로 참고,

죽을 만큼 힘들게 감추려 했었던 그 모든 지난날의 눈물과 흉터를.



나는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싸워나가는 중이다.


나는 우리의 일상을 흔들고 나의 가정에 눈물이 나게 하는 그 모든 것들과 죽을 때까지.

아니, 정말로 죽어서라도.


이 세상 어딘가에서 나처럼 숨어서 울고 있던 사람들을 위해,

나와 같은 피해자들을 위해 끝까지 싸우기로 다짐했다.



나는 나의 가정을 부수려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죽기까지 싸워나갈 것이며,

죽더라도 내 가정을 건드는 놈들은 절대로 가만두지 않기로,


결혼하는 그 날, 하나님께 맹세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아프고, 고통이 있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나를 더 건드릴 수록,

더 치열하게 싸울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닫았던 나의 블로그를 다시 활짝 열었다.


상해가 가득했던 나의 블로그를 다시 우리의 이야기로 채워나가며 여기저기 얼룩진 나의 상처들이, 지나 놓고 나면 언젠가는 예쁜 작품이 되길 바라는 믿음으로 '다시'를 외치게 되었다.



우리의 이야기가 메인에 나가게 되었고, 인터뷰 문의도 들어왔다.




나는 앞으로의 출간도, 사업도, 강연도.

절대로 숨지 않겠노라고, 감추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나에게 남겨진 흉터.

그러니까 지난 나의 모든 망한 이야기가, 모자란 나를 인정하는 것이라 매우 부끄럽지만..



어느 누군가에겐 꼭 도움이 될 거라 생각된다.









모자라면, 모자란 그대로.


아프면, 아팠던 그대로.



지금까지 그래 왔듯, 나는 끝까지,

오늘도 최선을 다해 따뜻한 사람으로 살겠다.



어떠한 형태로든 더 사랑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