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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더언니 Mar 20. 2017

사람의 평가,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나에 대해 뭐라 말하던, 그것이 마냥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가장 찬란해야 마땅한 나의 20대의 반.


그렇지만, 그 찬란해야 할 나의 5년은,

그냥 인도다.


'인도'로 정의된다.



그 중에서, 쭈구리였던,

쭈구리일 수 밖에 없었던 잠깐의 내 삶을 공유 해주고 싶다.


LG 나 삼성이 일본 회사인줄로만 아는 대부분의 무식한 그들에게,

그저 작기만 한 나라, '한국'에서 온 나는,

뼛속 깊숙히 박힌 카스트 제도에,

그저 'Non vegeterian'인,

상종하기 꺼려지는 그런 untouchable 한, 불가축천민.


뭐, 그런 존재였다. -부연 설명을 하자면... 그들은 고기를 먹는 것을 천한 계급의 야만 행위라고 여긴다.-


아무튼 그 5년 중,

1년 가량을 기숙사 생활을 했었는데.


나는 그 곳의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아니, 전체 다 통틀어 나 혼자 동양인, 홀로 외국인인 그 곳에 홀로 살았다.


한류?


인도에선 그딴거 없다.

나는 그냥 이방인, 아니 불가축 천민이었다.


(물론 좋은 친구도 있었지만) 그 곳 대부분의 그들은 어눌한 영어를 구사하는 나를 대놓고 비웃기 일쑤였고,

(샤워를 하려면) 뜨거운 물을 길으려 1층에서 물을 길러 와야했는데.. (찬물에는 장구벌레 같은게 둥둥 떠다녔다ㅜㅜ) 어느 날은 낑낑 거리다가 물을 쏟아 발에 화상을 입었는데 그 모습을 보며 깔깔거리며 재미난 구경이 났다며 친구들을 불러오며 굴욕을 주기도 했던 여자애들이었다. 째려보는 나에게 'what?' 하며 오히려 바닥이 너 때문에 다 젖었으니 걸레로 닦으라며 -걸레로 바닥을 닦는 것은 하층민만 하는 행위-, 관리실에 사람을 불러 얘 때문에 복도를 지나갈 수가 없다며 난리를 치기도 하고. 빨래를 옥상에 가져다 널으면, 훔쳐가서 뻔뻔하게 자기가 입고 다니며 '내 옷'이라고 우기기도 했으며,

새벽에 화장실을 갔는데 쥐만한 바퀴벌레가 보란 듯이 내 칫솔에 머리를 박고있는 쇼킹한 장면, 고양이만한 쥐가 방안에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하고 소리를 지르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정말 별걸가지고 호들갑 떤다며 손가락질도 했었다.



나는, 학교에서도 쭈구리였는데.

연수 없이 어떻게 신기하게 대학에 합격해 입학하였지만,

교수가 질문을 하고, 어눌한 내가 대답을 못하면, 나는 80명의 아이들 앞에서 1시간이 넘게 서 있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쭈구리였다ㅠㅠ


그래 나는, 이 땅은 내 것이 아니니까.

나는 그저 이 땅에 잠시 머무는 이방인이니까.

내가 사랑하기로 마음 먹은 나라니까.


그렇게 꾹 견뎠던 나날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진짜 다시 못할 것 같아요.)




지옥 같았던 나날들의 끝에,

'더 이상 못견디겠다.' 라는 마음이 들었을 때, 나는 다행히 프랑스 학교에 합격할 수 있는 성적이 있었고.


지정된 교수에게 추천레터를 받으러 갔을 때,

나는 나와 함께 합격한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또 차별을 겪어야 했다.


솔까 그들의 부모님은 권위있는 금수저의 자식이고.



난 그냥... 그냥...

그냥 한국에서 온, 아직도 어눌한 학생이니까.


일찌감치 레터를 받은 그들과 다르게,

내 레터를 받으려고 얼마나 조르고 졸랐는지.


며칠 뒤에 그렇게 어렵게 받은 레터 내용 마저 충격적이었다.


'이 학생은 영어를 잘 못함.'


이렇게...

달랑 씌여져 있는게 다였다.


그걸 받고 억울해서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제출해야 할 서류 중 하나인 영어 IELTS 테스트 결과는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무사히 프랑스 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나와는 다르게, 그 때 같이 입학한 친구들이 받은 레터에는 온갖 칭찬이 가득했었다.


책임감이니,

정확함이니,

시간약속이니,

활달하고 리더십이 있다니,

영리해서 학업 성적이 우수하다느니.


하지만 그 때 '그렇다 치자'라고 넘어갔던 인도에서의 그들의 평가는,


프랑스 학교에서 통하지 않았다.



그들은 수업에 지각하기 일쑤였고,

기숙사 내에서 설겆이를 하지 않아 다른 국가에서 온 친구들의 원성을 사게되어 결국 기숙사에서 그 다음 학기에는 인도인들은 받지 않게 되었으며, 이런 저런 성추행, 마리화나를 파는 등, 여러가지 문제들을 가져왔었다.


인도에서 나는 불가축천민, 쭈구리였는데.


프랑스에서 나는, 인도 영어를 못 알아듣는 교수님에게 통역을 해주는, 오히려 영어 잘하는 한국 사람이 되었다.




인도에선 '발랑 까진애'로 평가될 수도 있었겠지만.


난 잘 못노는 인도 친구들과 달리,

놀기도 잘 놀아서, 친구들과 룩셈부르크 신문 메인에 뜨기도 했다.


결국 평가와 상관없이,

공식적인 기록에는.


그 인도 대학교에서 '외국인 신분'으로 프랑스 학교에 입학하여 복수 학위를 딴 사람은 지금까지 나 밖에 없다고 한다.

(이건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저 졸업하고 나서 갑자기 학비가 외국인에게는 말도 안되게 비싸졌다고 해요ㅋㅋㅋㅋㅋ)



사람들의 평가는,

사람들의 기억은,


난 그저 영어 못하는, 그저 쭈구리 불가축천민이었을 뿐인데 말이다.






지금 주변의 사람들의 평가.


친구던, 가족이던.


나에 대해 뭐라 말하던,

그 것이 마냥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평가.


사람들의 평가와 기억이란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기댈 수 있을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실수 할 수도, 정말로 가끔은 쭈글이로 살 수 있고, 반대로 너무나 좋게 나를 띄워줄 수도 있지만.


그들의 평가가 나의 운명 혹은 나의 삶이 되게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가끔 넘어져도,

가끔 가장 가까운 이에게 마저 내가 되기 싫은 모습으로 평가 받더라도,


내가 '아름다운 사람'이 되길 꿈꾼다면.

그 마음을 품고 있는 그 자체로도.



나는 이미 그런 사람인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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