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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더언니 Mar 20. 2017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을 때,

그저 조용히 눈물을 내뱉기

#

10년 전 어느 날,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어느 교회 모임에서 쪽지를 받았다.


당장 교회 반주를 하기로 한 반주자가 일정이 생겨 못오게 되었다고. 반주를 부탁한다고.


갑작스러운 연락이 당혹함 보다는 반가움으로 다가왔던 나는 단숨에 흔쾌히 허락하였다.



온갖 잡다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때였기에, 그 날 벌어먹고, 그 날 사는 나였지만. 오랜만에 보는 이들을 위해서, 하루 일정 쯤은 당연히 뺄 수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 둘 모여들었고,

반주자의 자리에 앉아 설레는 마음으로 조용히 그들을 맞이하는 BGM을 한 두곡 쯤 쳤나,


저 쪽에서 박수를 치며 누군가를 환영하는 소리를 들었다.

모임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던 반주자가 온 것이다.


그녀는, 나를 쓱 보더니 아무 말 없이 피아노 쪽으로 다가왔고 그녀의 가방을 내가 앉았있는 피아노 의자 옆에 슬며시 올려놓았다.


옆에 있던 사람들은, 그래 오랜만에 '전공자' 반주를 들어보는구나! 라는 말에, 나는 순식간에 구석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그 외에도, 몇 천명이 모이는 큰 교회에서도 이따금 반주를 맡는데, 나는 주로 전공자들이 대예배 때 펑크를 내면 대타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한 번은 나도 모르게 목사님이 부르시는 찬송가 음율에, 흔히 말하는 재즈 코드를 섞다가 목사님이 멜로디를 놓치시게 되었는데.


나는 그 몇 천명이 모인 자리에서, '니 애비 누구여?!, 기본도 못치는게 왜 저기있어?!' 라며 당장 단에서 내려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 없이 웅크러진 초라해진 나의 어린 모습을 보았다.






#

나는, 비록 전공자는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절대음감을 가졌다고 한다. 말을 하기 전부터, 장난감 피아노를 가지고 놀며,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만화영화 주제곡을 곧바로 따라 치기도 했으며, 내가 처음 배운 한글도 어느 작은 피아노 학원에서 '4분음표'와 함께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피아노가 꼴도 보기 싫었다.



마음대로 코드를 넣어 소나타를 치는 나를 선생님은 야단쳤고,

손모양이 계란 모양이 아니라며 30센티 자로 손을 탁탁 내리쳤으며,

성가대 곡을 꼭 악보대로 반주하는 것이 스트레스였으며,

의미없고 반복적인 악보보기는 정말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내 말을 하고 싶었다.






#

늘 옮겨다니고.

그렇게 늘 쫓겨다니다시피, 질질.

어차피 이삿짐 박스를 장롱처럼 쓰는 우리 집에 피아노를 놓는다는 것은 사치였다.


나는 말이 하고 싶었다.



‘카드 판매원’ 이라는, 잡상인 비슷한 것을 할 때에도, 들고 있던 것이 무거운 것보다, 밖에 눈이 섞인 비가 내려 추운 것보다.. 하루 종일 거절당했다라는 사실에 마음이 무너질 때,


친구들 대학 합격 소식을 듣고, 기뻐하면서도, 소주 두병과 포카칩을 봉지에 넣어 털털 인천에 있는 공원 언덕 혼자 아빠다리를 하고 벤츠에 앉아 밤을 샜을 때.


나는 정말 말이 너무 하고 싶었다.


외로워서 미칠 것 같은 유학생활, 나를 작정하고 괴롭히는 어느 미친x로 인하여 학교생활이 지옥 같았을 때, 잘 지내냐? 라고 걸려오는 부모님의 전화에 '응'이라고 대답하며 소리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을 때.


데이트 폭력을 당한 뒤, 버스정류장에서 하염없이 눈물 콧물 쏟아내며 엉엉 울고 있을 때, Qu'est-ce qui se passe? 무슨일이에요? Ne pleure pas! 울지마세요! 라고 모르는 사람이 건네주는 휴지를 꼭 움켜쥐고 있을 때.


다 잃고, 껍질만 남은것 같은, 죽을 수도 있구나. 하는 그 때. 세상이 나를 존나 미워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던 그 때.



나는, 정말,


그 때마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지언정.



그래도 말은 하고 싶어서,


빈 교회를 찾아다니며, 불도 키지 않고 숨어서 몰래 피아노를 쳤다.

학교 가는길에 있는 악기점에 들러, 아끼던 용돈을 내고 피아노를 치기도 하고,

돈이 없을 때엔 악기점 앞에 쪼그려앉아, 누군가가 연주하는 그 선율에 눈을 감고 머리속으로 내 화음을 덧입히기도 했다.

공항이나 기차역에 있는 피아노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보면, 처음 보는 여러 거리의 악사들이 모여 나와 함께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내 말을 꽁꽁 쌓아왔다.





#

이유도 모르고 견뎌야했던 그 때 그 시간들은.

마음 졸이며 그리워했던 만큼이나,

못다한 이야기가 쌓여가는 만큼이나,

어느 날 홀연히 날 찾아준 지금 내가 누리는 그 모든 존재에, 그 모든 순간들에,


더 많은 감사를 할 수 있으며

더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 모두, 때로는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싶지만,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일 때가 있다.


잠깐은 울더라도..

잠깐은 슬프더라도..

그렇게 마음으로 삼키는 연습이 필요하다.


여기가 아픈가봐..하며 흘렸던 나의 모든 눈물이.. 그래도 그럭저럭 그런데로 살아냈던 나의 불완전한 과거의 모습이, 현재의 모습이,


오늘 이렇게 조금이나마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오히려 먼저 기뻐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을 것 같다.



언제나 그렇지만,

물론 '말'이라는건 오늘도 이렇게나 참 쉽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

그래, 나는 전공자는 아니다.


악보도 잘 볼줄 모르고, 빠르게 손이 돌아가지도 않는다. 내가 치는 코드 이름이 뭔지도 모르고, 누군가와 같이 연주를 할 때 여기선 '리타르단도' 혹은 블라블라 등등, 전문적 용어는 아직도 하나도 못알아 듣는다.


그렇지만,

나는 피아노로 말을 하는 사람이다.



전공자는 아니지만, 음악을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꽁꽁 싸매었던 사람들의 말을 미술로 풀어내고, 음악으로 풀어내고 싶다.


마음을 다하여:)


<김한나, 말을 하고 싶지 않아요>


Ps: 얼마 전에 상해대학교에서 열렸던 피아노 콩쿨, 3등해쪄염 데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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