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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더언니 Apr 11. 2018

가슴이 뛰는 것을 찾는다는 것 2

지금 당장, 100점 짜리 정답을 바라지 마세요

전에 물음표로 끝났던 이야기를 계속 이어쓰려 한다.

물론,

지금도 역시 완벽한 답을 찾은 것은 아니다.

가슴이 뛰는 것을 찾는다는 것,


그 것은,

내 안에 숨겨진 영혼의 소리에 매일 같이 귀 기울이고, 그 작은 속삭임을 무시하지 않고 반응하는 것을 이야기 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나는 그렇게 찾아가는 중이며,
다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씩 하나씩.

그렇게 찾아가는 중이다.

그 결과로,
나는 지금 안정된 수입이 있었던 예전 직장을 다닐 때의 삶을 돌이켜 보았을 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풍부하고 재미있는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살짝 쪼들리긴 하지만.



#
블로그에 끄적거리는 지난 내 이야기를 보시고,
혼자 갖는 시간을 어떻게 갖는 것인지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답은 의외로 쉽다.



적당한 대학을 나오고,
적당한 회사에 취직을 하고,
적당한 사람과 결혼을 하고.

그렇게 남들 사는만큼,
남들 하는 만큼 살다가보면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실,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꿈이 명확하다고 믿었던 나였는데.
한국 대기업에 있다보니,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내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배울 수 있었고.
다국어를 하고, 해외 취업을 하는 것이 마냥 답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무엇을 해야하는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가.
이 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수 많은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다시 강조하지만.


지금 텁텁하고 답답한 삶에 해외 취업이 영원한 해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돈을 무조건 많이 버는 것이 자유를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내 삶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그 때,
삶이 당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순간이다.

그 때,
그 공허함을 다른 것으로 채우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자제하고.
예능이나 드라마를 보는 것을 그만두고.
이렇게, 저렇게, '해라' 라고 답이 쓰여진 자기 개발서를 읽는 것도 그만두고,

무엇인가 분주하게 일을 하지 않고,

나에게 더 많은 물음표를 주는 것이다.


정작 물음표를 던지고 또 던지다 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정말 뭣도 아니구나 생각될 만큼 초라해지고,
내가 꿈꿔왔던 모든 것들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분명 지금 이건 내가 원한다고 생각했던 삶인데 왜 그런지도 모르게 공허함에 시달려 잠을 잘 수 없게된다.

근본이 흔들리게 되는 그 때가 온다.



그 과정은, 참으로 고통스러워서,

나는,
SNS를 탈퇴하기도 하고,
연락처를 다 지우게 되고,
1년이 넘게 누군가와 만나는 것을 무서워하게 되었으며,
배개가 눈물로 젖어 울다 지쳐 잠든 날이 허다하였으며,
이럴거면 정말 죽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만큼,
우울증과 무기력으로 삶이 버거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점짜리의 해답은 내 앞에 짠 하고 나타나지 않았으며.

찢기는 듯한 아픔을 견디고 견디고,
그 아픔마저 덤덤해지고 작은 것에 감사하다 보니,

작은 생활 속에서 1점짜리의 정답을,
가끔씩은 5점짜리의 정답을 여기 저기서 긁어모아 내 인생에 담게되었다.


높은 것보다,
따뜻한 그 순간을 감사하며 기억하며 살게 된 것이다.




#
나는, 어릴 때부터 꼼꼼하지 못했다.

정확함이나 신속함을 다루는 그 무엇이 내게 주어지면, 늘 당황스럽고 늘 실수하게 된다.

숫자를 보기만 하여도 가슴이 벌렁벌렁 해질만큼 수학은 내게 공포 그 자체였으며,
중요한 서류를 작성할 때면, 몇 번을 검토해도 제출하고나면 오타를 꼭 발견한다.
엑셀에 수식을 아무리 걸어놓아도, 꼭 틀리기 일쑤이며, 누군가가 나를 몰아부치면, 나는 곧 얼어붙어 더 어리버리 해진다.

그런데 그런 내가 매일 서류 100장을 만지게 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 그런지,

실수 투성이인 내가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지고,
안정기가 찾아왔을 때.


나는 몸이 존나 아프게 되었다.

아무리 해도,
머리로는 '괜찮다'고 계속 타이르고 토닥거려도, 안 맞는 것은 안 맞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나에게도 어릴 때부터 잘하는 것이 있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숙제로 올챙이 두 마리를 주며 관찰일기를 쓰며 기를 때에도, 나는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앞다리 뒷다리 다 나오고, 꼬리도 다 퇴화되어 완벽한 개구리의 형상을 갖추게 한 아이였으며,
이상하게 내가 기르는 식물은 다른 아이들의 것보다도 더욱 풍성하고 예쁘게 자랐으며,
학교 앞에 팔던 병든 병아리를 사서 길러 닭으로 만들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남들보다 쉽게, 애쓰지 않아도 성과가 좋은 것이 있다.

나는, 그냥 그런갑다. 하며 별 생각 없었던 그 것이,

대학원을 다니며 학비와 생활비를 모두 스스로 충당하는 지금의 삶에 참 많은 영향을 끼친다.

별거 없던 그 모든 생활의 조각이 모여,

먹고 살만한 정도는 된다는 것이다.



지금 나는,
각종 식물들을 기르며,
몇 번이나 버림받았던 고양이를 기르며,
더 나아가 어린 아이들도 가르치고 있다.

'양육'

그 것의 본질을 찾아보려고 한참이나 생각해보았을 때,

내가 내린 답은 '공감'이었고,

공감을 기반으로 한 어떤 것이든, 나에게 소질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어도, 스팩이나 스킬을 위해 배운 것이 아닌 소통을 위해서였고,
글을 쓰는 것, 음악도, 공감을 위한 것이었다.
지금 배우는 미술도, 공감을 위한 하나의 촉매 역할이 됨을 알기에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지금 껏 내가 쌓아왔던 모든 인생,
그리고 역경, 경험.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 모두를 종합시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배우라는 직업이 그러하다.


연기를 따로 배우지 않았어도,


바람피는 남자친구를 목격하는 장면이라던지,
힘들게 삶을 살아가는 삶을 표현할 때면,

어렵지 않게 그냥 눈물이 주르륵 난다.


공감이 없어서는 할 수 없는 일,
게다가 내가 이제 껏 쌓아왔던 언어적인 것들을 접목시켜 영어 혹은 중국어로 내가 살아왔던 인생을 다른 사람의 삶을 입혀 표현하는 것들.


그렇게나 잠 많은 내가,
새벽부터 분주한 현장에만 가면 가슴이 뛰고,
카메라가 내 앞에 있는 사실을 잊은 채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낼 때.
그런 나의 모습을 감독이님께서 모니터를 보며 엄지척을 해줄 때면,


나는 참 행복하다.



가슴이 뛰는 것을 찾는다는 것.
어쩌면 나는 이 일을 시작하기엔 늦었지만,

이 것이 나의 최종적인 목표나 꿈이 아니었기에,
지금도 아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토록이나 좋아하는 지금의 일을 혹시나 못하게 되더라도, 나는 '공감' 이라는 키워드를 내 마음에 새기며,
내 인생에 새기며,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인생을 찾아나가고 싶다.



#
현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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