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대 줌마의 취업투쟁기?
본성의 불편함
“너, MBTI가 뭐야? 음, E, S, T, J ?”
요즘 MBTI 분석에 재미를 붙인 지인이 물었다. 한 개만 맞췄다.
"그래 보여?"
엄청난 노력의 결과 개과천선한 나의 모습에 난 무척 만족한다. 외향적이고 사람들과 일 만들기를 좋아하는, 꼼꼼하고 계획적인, 일 것이라고 여기게 하는 나는 ‘사회적 나’이다.
국민학교 입학은 희망이었다. 장장 7년, 어머니, 언니, 오빠와 안 맞았던 나는 담장 밖 거기에는 나와 맞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고 희망했다. 운동장에서 동글동글한 머리통이 줄줄이 선 맨 끝이 내가 설 자리였다. 단상에서 한도 끝도 없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대는 어른들의 세계와 끝 종이 울리면 우르르 생각 없이 몰려 나가는 아이들의 세계를 만나자마자 난 멀미가 났다.
‘내가 희망했던 세계가 아니구나.’
어릴 때 가장 재미있게 즐겼던 놀이는 소꿉놀이다. 우리 고장에서는 ‘빠끔살이’라고 했다. 서너 채 집을 그려놓고 1인 다역을 하며 혼자 빠끔살이를 하고 있으면 누군가 끼어들기도 했다. 함께 하면 가끔은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 나를 싫증 나게 했다. 내 구상과 달라졌고, 갑자기 떠오른 재미있는 내 생각이 퇴짜를 맞기도 해 내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게는 혼자가 자유로웠다. 내향적인, 공상을 좋아하는, 닥치는 대로 재미있는 것만 하는, 그러나 납득이 안 되면 고집부리는, 나, 그런 나는 이방인이 편했다.
비표준의 불리함
사람들은 모른다 표준의 편리함을. 반대로 말하면 비표준의 불편함을. 근대는 표준과 함께 왔다. 표준은 도시화,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그런 표준들에게 세상은 편리함이란 선물을 줬다. 옷을 사는 일만 해도 그렇다. 비표준인 나는 남들보다 오래, 많은 품을 들여야 맘에 드는 몸에 맞는 옷을 살 수 있다. 비표준을 극복해야 하는 허들을 넘어야만 표준에 합류할 수 있다. 요즘은 금주를 하면서 새로운 비표준의 불편함을 겪게 됐다. 50대 우리 세대는 뒤풀이, 만남을 주로 술과 함께 한다. 농담 삼아 말하는 주류, 비주류로 나누는 술자리에서 나는 비주류들의 소외감을 공감하게 됐다. 남들 하는 건 다 할 줄 알아야 한다던 어머니 말씀이 뇌를 스쳐간다. 유독 내가 사는 나라는 비표준에게는 표준에 맞추어야 하는 고행을 주었고, 표준에게는 비표준이 될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불안을 안겨줬다.
고밀도 접촉사회인 대한민국은 ‘성격’도 '취향도' 표준을 좋아한다. ‘사교적인, 현실적이며 꼼꼼한, 계획적이고 실천을 잘하는, 공감능력도 뛰어난’ 사람을 원하고, 되기를 원하는 듯하다. MBTI가 어느 자리에나 화제가 되는 까닭도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면접에서는 MBTI가 뭐냐고 묻기도 하며, 기업에서 좋아하는 MBTI가 검색되기 한다. 나처럼 ‘떠들썩한 자리가 불편한, 생각이 많은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닥치는 대로 꽂히는 일에 매달리는, 잘잘못을 지나치지 못하고 따지고 드는’ 유형은 MBTI에 관심이 많다. 이런 본성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왜 그런지, 타인은 또 왜 그런지 알 수 없는 세상을 간편하고 그럴듯하게 분류해 주기 때문이다. 세상에 다른 류의 사람이 산다는 것에 위안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본캐, 부캐가 한참 회자되었다. 나도 ‘사회적 나’를 부캐로 만들어 살아야 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본성의 나’인 본캐로 돌아온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런 하소연의 장일지도 모른다. 보통 술자리에서 이런 소리는 분위기 망친다고 애초에 잘리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일자리를 찾고 있는데 보는 족족 떨어지고 있다. 자격증도 안 띠고 경력 관리하지 안 한 채 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산 대가이다.
그래서 글을 쓰러 아주 오랜만에 들어왔다. 글쓰기는 그런 나의 허우적거림이다. 세계와 접점을 만들어가려는 허우적거림. 누가 읽어줄지도 모를 이곳에서 허우적거린다. 허우적거림은 본캐인 나를 잃지 않으며 세계와 균형을 잡으며 헤엄쳐 나가려는 나의 애씀이다.
2024.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