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열매의 비극

원치 않았던 혐오

by 작가미상


은행나무에 열매가 맺히던 날

열매들은 어떤 꿈을 꾸었을까


누구는 아름드리나무를 꿈꾸고

누구는 울창한 숲이 되길 꿈꾸었을까


열매들은 꿈을 꾸고

누렇게 익어만 갔다.


그러다 툭...

데구루루...


포근한 흙이 반겨주리라 생각했건만

그들이 떨어진 곳은

차가운 아스팔트...

혹은 새로 깔린 보도블록 위였다.


무심하게 지나가는 사람들

그들의 구둣발에 짓밟혀

하나씩 짓이겨진 열매들


부스러지고 으깨지며

열매들은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비참했던 짧은 생이 끝난 후

오히려 쏟아진 것은

사람들의 혐오였다.


가을비가 내리고

처절한 열매들의 시체들도

씻겨 내려가고 나면


흔적도 사라지고

사람들의 혐오도 기억도

사라지겠지만


푸르른 꿈을 꾸었던 열매들은

왜 그런 수난과

죽음 뒤의 비난을 받아야만 했었나...


짓밟은 것은

오히려 사람들이었다.



Photo by Steven Su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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