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야 알았다

내가 비출 수 있는 것은 오직

by 언어미식가

아침마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


얼룩진 나를

보드라운 손수건으로 닦아주고,

조용히 어루만진다.


그리고는

가장 그녀 다운 미소를 남기고

방을 나선다.


나는

그 순간이 좋았다.


아니,

그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선명하게,

더 또렷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녀가

더 잘 웃을 수 있도록.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


아니면

이 순간을

붙잡고 싶은 걸까.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반란을 결심했다.


왜 나는

항상 너만 바라보고 있어야 하지?


나도

나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비추지 않기로 했다.


아, 자기소개가 늦었다.


나는 거울이다.


스스로 빛나지 못하고,

그저 비추는 존재.


그런데 그 ‘그저’라는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나는 조금씩 흐릿해졌고,

닦이지 않은 채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편한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다르게 해 보기로 했다.


더 예쁘게 비춰주기도 하고,

조금은 과장해서 보여주기도 했다.


그건

비추는 게 아니라

만드는 일이었다.


나는 점점

내가 무엇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나를 비춰보려 했다.


하지만

나는 끝내 나를 볼 수 없었다.


그걸 인정하기 싫어서

나는 더 애쓰기 시작했다.


더 밝아지려고,

더 눈에 띄려고

전등을 끌어와 나를 감쌌다.


더 환하게,

더 또렷하게

나를 드러내고 싶었다.


하지만 얽힌 전선에 걸려

나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녀의 손이 닿지 않는

침대 밑으로 굴러 들어갔다.


어둠이 내려앉았다.

먼지도 함께 내려앉았다.


나는 나를 닦았다.


이대로 잊힐까 봐.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나는 충분히 괜찮다.

발견되기만 하면

그녀는 분명 나를 다시 찾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둠 속에서도 나를 닦았다.


그리고 내가 감아올린 전구를 깜빡이며

여기 있다고,

여기 있다고

계속 신호를 보냈다.


며칠이 지났을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짜 아끼던 거울인데, 어디 갔지.”


나는 있는 힘껏 외쳤다.

여기 있다고.

이렇게 준비되어 있다고.


하지만 들릴 리 없었다.


잠시 후,

“어쩔 수 없지. 하나 더 사야겠다.”


그 말에

무언가 쿵 하고 내려앉았다.


한참을 그렇게

얽힌 채로 누워 있다가

문득 생각했다.


나는 드러나기 위해 존재했나,

비추기 위해 존재했나.


그녀는 이미

더 크고 더 반짝이는

새 거울을 가져다 놓았다.


나는 이제

그녀를 비출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비추는 존재가 아닌 것은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비추고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깊이 깨닫는다.

깊은 어둠 속에서 비출 수 있는 것은

오직 빛뿐이라는 것을.


나는 빛을 만들 수는 없지만

빛이 있다면

언제든지 그것을 비출 수 있는 존재였다.


나는 나를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빛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드러나지 않아도

조용히

빛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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