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고향을 떠올리면

칼럼#7 <H마트에서 울다>를 읽고

by 순수

나는 토종 한국인인 데다가, 한국을 제외한 어떤 국가에 1년 이상 머물러본 적도 없고

고향이라고 부를만한 특정한 지역도 없어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감정을 잘 알지 못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그렇구나 하고,

기껏 해봤자 해외에서 빵조각을 먹으며 한식을 그리워한 적이 전부이니.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서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 중이나, 나조차도 이해하기 어렵기에

그것은 그냥 불가능의 영역으로 놔두는 연습을 하고 있다.

사랑하는 이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한국을 제대로 그리워해본 적이 없는 내가,

한인 마트에서 우는 주인공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책은 '한국'에 대한 내용이 아니었다.




나는 아주 가끔씩 엄마가 죽은 그다음을 상상해보고는 한다.

도대체 그런 것을 왜 상상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너무 중요하고 큰 존재를 잃었을 때 내가 내 삶을 온전히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사람들이 지진 대피 훈련을 하는 것과 유사한 상상이라고 해야 할까.



"엄마는 나의 기록 보관소였다. 엄마가 사라지고 나니 물어볼 곳이 없다. 엄마와 같이 기록되지 않은 일들은 엄마와 함께 죽어버렸으니까." - <H마트에서 울다>



일기를 매일 쓰던 내가 몇 달째 별다른 기록을 하고 있지 않다.

들고 다닐 수 있는 기억들을 참 사랑했는데.

아이폰 달력과 메모의 순기능을 편리하게 이용 중이라고 생각했으나 잘 생각해 보면

순수한 나의 기록물들이 겹겹이 쌓일 틈을 주지 않은 역기능만이 남은 듯하다.

줄글로 기록을 하지 않아 버릇하니 그렇게 몇 달 동안의 나는(우리는) 사라진 기분이다.


무언가를 추억하는 것,

사람의 기억은 영원하지 않고

그 사람이 기억하고자 하는 일을 함께 기억해 줄 수 있는 사람 또한 영원하지 않다.

그렇기에 영원한 추억도 영원한 기억도 존재하지 않는 법.


결국 고향이 없는 내가,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집과 나의 방이 곧 마음의 고향일 내가

내일 당장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가장 아프게 떠올릴 곳이 이곳이며

가장 그리워할 사람은 방금까지도 딸이 도대체 왜 좋아하는지 모를 영상을 함께 봐주던 엄마일 것이다.

그런 엄마가 사라진다면 그것을 기억할 사람은 온 우주에서 나뿐이고, 힘을 빌릴 수 있는 것은 사진과 글들 뿐이다.

내가 엄마를 참 사랑했다는 것이 지금 이 글로도 남고 있듯이.




올해 초에 이터널선샤인을 보면서도 참 많이 울었다. 예전에는 무표정으로 보던 영화였는데 기억이 사라지는 장면에서 어찌나 많이 울었는지.


그를 얼마나 사랑하든 언젠가는 잃기 마련이고 상실에는 언제나 고통이 따르니 그 기억을 너무 오래 갖고 있지 말라는 뜻일지 모르지만,

책 속의 주인공이 가족들을 기억하고자 이모를 찾아가듯

분명히 잡고 싶은 기억들이 있다.


영원히 완벽한 사랑이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자식을 향한 사랑도 때로는 밉고 싫을 때가 있을 테니.

애정표현도 잘 못하고,

오히려 티격태격 화를 내는 관계일지라도

나는 그녀를 오래 기억하고 싶다.

그래서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추억들을 많이 만들고자 한다.

우리 둘의 기억의 주인공은 우리 둘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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