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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준 Aug 08. 2018

유럽 맥주의 종류

유럽여행에 품격을 더하다

와인과 더불어 유럽 생활의 핵심 문화 코드인 맥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마트에 수많은 맥주들이 진열되어 있지만 큰 카테고리로 구분해 보자면 다음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자연발효맥주 람빅(Lambic) 

맥주는 말 그대로 보리를 발효시켜 만든 술입니다. 그런데 이 보리는 우리가 아는 그냥 생 보리가 아니라 싹을 틔운 발아보리인 몰트(Malt)입니다. 전분 형태로 있으면 발효가 어렵기 때문이죠. 이렇게 발아보리에 효모가 붙어서 발효가 일어나면 맥주가 되는 겁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만들어지는 원시 형태의 맥주는 우리가 지금 마시고 있는 맥주와는 좀 다른, 보리 막걸리 같은 걸쭉한 액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렇게 자연 효모를 이용해서 만드는 원시 맥주가 남아있는걸 아시나요?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 근교, 람빅(Lambic) 마을에서는 세계 유일한 자연 발효 맥주인 람빅을 지금도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마시는 막걸리는 단맛을 내기 위해 아스파탐 등 감미료가 상당히 들어가는데 만약 이 감미료를 뺀다면 지금 느끼는 것보다 훨씬 시큼하고 텁텁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막걸리에서 단맛을 빼고 상상하면 바로 이 람빅의 맛을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람빅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겠지만 만들기 어렵고 숙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로 미숙성 람빅과 숙성 람빅을 브랜딩해서 괴즈(Gueuze/Geuze)라는 형태로 만들어 팝니다. 숙성 람빅의 비중이 높을수록 신맛이 강해지겠죠. 또 한가지, 어떻게 보면 벨기에 맥주의 특징이랄 수 있는데, 체리나 라즈베리 등의 과일을 섞어 만들기도 합니다. 체리를 섞으면 크릭(Kriek)이라 하고 라즈베리를 섞으면 프람브와즈(Framboise)라고 부릅니다. 대부분의 벨기에 맥주가 그러하듯 이 맥주들도 가당을 하기 때문에 상당히 달게 느껴집니다. 



#상면발효맥주 에일(Ale) 

에일은 상면발효 방식에 의해 만들어지는 맥주를 말합니다. 상면 발효라 함은 상온에서 활성화되는 효모(Top Fermenting Yeast)를 이용해서 발효를 시키는데, 상온에서 발효가 일어나기 때문에 발효의 속도가 빠릅니다. 빠르게 발효되는 과정에서 생성된 이산화탄소, 즉 가스에 효모들이 붙어서 엉켜 끈적하고 풍성한 거품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크라우젠(Krausen)이라고 합니다. 즉 발효조 위에 거품이 잔뜩 낀 상태가 되기 때문에 상면발효 맥주라고 합니다. 

현재 우리가 즐겨 마시는 맥주는 라거 계열로서 저온에서 발효되고 에일보다 더 긴 숙성이 필요한 맥주기 때문에 에일 맥주가 라거보다 훨씬 먼저 개발된, 더 오래된 전통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에일의 중심은 영국인데, 이는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성과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 문화에 기인하여 라거의 열풍이 유럽대륙을 휩쓸었을 때도 대륙과 동떨어진 영국에서 유독 에일의 전통이 살아 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은 라거 맥주도 많이 마시지만 그래도 역시 에일의 중심은 영국이고 영국에서 마셔봐야 할 맥주는 단연 에일이 되겠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IPA를 중심으로 Craft beer로 에일 맥주가 많이 활성화되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너무나 IPA 중심이라는 것인데 이는 사실 미국의 Craft beer의 문화이기 때문에 엄밀히 영국의 IPA와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IPA란 Indian Pale Ale의 약자로 과거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가지고 있던 시절, 인도의 영국 주재원들에게 보내주던 맥주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당시 항해를 통해 인도까지 가려면 아프리카 대륙 남쪽 끝, 희망봉을 돌아 적도를 두 번 지나는 무덥고 긴 코스였기에 맥주가 변질되지 않도록 홈(Hop)을 엄청나게 많이 넣은 쓴 맥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영국에서는 이렇게 쓰디쓴 IPA가 더 이상 유행이 아닙니다. 일반 Pale Ale과 별반 차이가 없는 수준까지 부드러워졌습니다. 원래 전통이란 것이 해외에서 더 잘 지켜지듯이 IPA 본연의 맛은 미국에서 더 잘 보존되어 미국식 Craft beer열풍과 맞물려 한국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Pale Ale은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 창백한, 엷은 색 에일을 말하는데, 실제의 색은 구리빛으로 우리가 흔히 마시는 일반 라거 맥주보다 훨씬 진합니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엷은 거란 말일까요? 바로 당시 유행하던 Porter보다 엷다는 의미입니다. 맥주의 색은 맥아를 얼마나 볶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과거의 맥주들은 맥아를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볶아서 색이 짙은 맥주를 마셨습니다. 그런 맥주들이 항구 노동자(Porter)들에게 인기가 있어서 포터 맥주라 불렀다는 설과, 이 맥주를 수레로 나르며 팔던 사람(porter)들을 부를 때, "헤이! Porter!! 여기 맥주 한 병!!"라고 불러서 Porter 맥주가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포터 얘기가 나온 김에 한가지 더 얘기하자면, 스타우트(Stout)라는 맥주를 들어봤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그냥 흑맥주라고 부르지만 사실 흑맥주란 말은 반만 맞는 말입니다. 색은 검지만 에일 계열의 흑맥주만 스타우트라고 부릅니다. 대표적인 스타우트가 바로 아일랜드의 대표 맥주, 기네스(Guinness). 원 의미의 스타우트는 도수가 높은 포터라는 의미로 Stout port, Extra porter로 불리우다가 지금은 구분 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리해 보자면, 과거의 맥주는 라거가 아닌 에일이고 짙은 색 에일은 Porter, 구리빛 에일은 Pale ale 그리고 특별히 홉을 듬뿍 추가하여 쓴 맛을 강조한 에일은 IPA라고 부른다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하면발효맥주 라거(Lager) 

Lager는 독일어로 저장이란 뜻입니다. 가장 중요한 특징이 바로 저온 발효, 저온 숙성이라는 점인데, 저온으로 유지할 냉장 시설이 개발된 후에나 대중화된 가장 현대적인 맥주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상면 발효 맥주라 불리는 에일에 대비하여 하면 발효 맥주라고도 하는데, 에일과 달리 끈적이는 거품 덩이인 크라우젠이 발효조 상부에 별로 형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에일에 비해 발효가 저온에서 천천히 이루어져서 이산화 탄소의 발생도 급격히 일어나지 않고 그래서 효모들이 엉켜 붙어 위로 뜨는 현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 에일밖에 없던 시절, 맥주는 빨리 상하기 때문에 양조한 즉시 마시거나 가을 겨울에만 만들어 마실 수 있었습니다. 한 여름엔 보관이 어렵기 때문에, 굳이 여름에도 마셔야겠다는 저 같은 골수 술꾼들은 궁리 끝에 가을에 빚은 맥주를 산 위까지 지고 올라가 동굴에 두고 얼음을 채워 두었습니다. 그러다 찌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 여름, 농사일을 마치고 불연듯 그 맥주가 생각나 산속 동굴에 가서 맥주를 꺼내 보니 에일과는 완전히 다른 전혀 새로운 맥주가 되었더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즉 저온을 유지시켜서 일반 상온에서 발효시키는 에일 효모가 아닌 저온에서 활성화되는 라거 효모가 작용을 한 것이죠. 이렇듯 저온에서 맥주를 만드는 기술이 발명되고 냉장 시설이 개발되자 새로운 맥주인 라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게 됩니다. 우선 에일보다 변질에 대한 우려가 현저히 적어 생산자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대량 생산이 가능하였고, 19세기 중엽 유리잔이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라거 맥주 특유의 맑고 밝은 황금색이 돋보이게 됩니다. 이전의 맥주들은 주석잔 또는 도기 잔을 썼기 때문에 사실 맥주의 색은 거의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유리잔이 보급되자 맥주의 색을 바로 볼 수 있게 되었고, 그것도 인간이 가장 사랑하는 황금색의 액체라니.  

이런 맑은 황금빛 맥주를 당시 가장 잘 만들어 낸 곳이 체코의 필젠(Pilzen)이란 곳으로, 때 마침 철도 부설 붐으로 전 유럽 어디든 기차로 운송이 가능하게 되자 체코 필젠의 맥주가 전 유럽을 강타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즐겨 마시는 맥주의 원형이 이렇게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맥주를 마시다 보면 라벨에 Pilsner, Pilzen style, pils 등의 단어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 의미가 바로 체코 필젠의 맥주, 필스너 스타일로 만든 맥주라는 뜻입니다. 체코 사람들이 맥주에 관한 자부심이 넘치는 충분한 이유가 되겠죠? 

맥주 하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나라가 또 있습니다. 바로 맥주의 나라라 불리는 독일. 

체코가 현대 맥주의 전형인 Pilsner를 만든 나라라면 독일은 맥주의 품질을 표준화한 나라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1516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의 빌헬름 4세가 선포한 "맥주 순수령" 

맥주에는 물, 맥아 그리고 홉만을 사용해야 한다고 공포하였고, 미련할 만큼 우직하고 준법적인 독일 사람들은 아직도 이 규정을 지키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지금도 이 3가지 (엄밀하게는 효모 포함 4가지)외에 다른 재료를 섞으면 맥주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는 다른 재료를 섞는 독일 외 EU국들과의 형평성 문제로 이제는 법적으로는 허용되고 있지만 이전까지는 불법이었고 독일 내에서는 비록 불법은 아니어도 여전히 맥주 Beer라 표현하는 걸 암묵적으로 금기 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다시 생각해보면 맥주 순수령이 공포되기 전엔 다른 재료를 섞었다는 말입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맥주의 기본은 당연히 보리이지만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값비싼 보리 맥아를 절약하여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또는 더 나은 맛을 위해 여러 가지 부재료를 섞어서 만들었습니다. 우리 막걸리가 가평에 가면 잣 막걸리, 고창에 가면 복분자 막걸리, 풍기 인삼 막걸리로 다양하게 변종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각 지역마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자기 동네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각기 다른 재료들을 첨가해서 맥주를 만들어 마시던 것이죠. 빌헬름 4세가 맥주 순수령을 공포한 데에는 가장 중요한 세금 문제, 그리고 본인 소유의 양조장 (옥토버 페스트로 유명한 그 호프 브로이가 바로 빌헬름 4세 소유였습니다)의 독점을 위해, 부재료로 인해 맥주의 품질 저하 심지어는 독초, 독버섯으로 인한 피해 등의 방지 등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의 본 의도와 별개로 이를 통해 독일 맥주의 품질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호프 브로이 – 뮌헨 독일) 


다른 부재료 없이 발아보리와 홉만으로 만드는 독일 맥주에 대한 독일 사람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러 다른 재료들을 넣는 다른 나라 맥주는 맥주 취급도 안합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자기들이 가장 흔한 것들을 이용하기 마련이라, 미국의 대기업에서 생산하는 버드와이져나 밀러등의 맥주에는 미국에서 가장 흔한 옥수수가 가미되어 대체로 가볍고 달달한 맛을 내며, 중국이나 베트남, 한국의 맥주에는 쌀이 첨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럽도 과거에는 지역마다 여러 가지 부재료를 혼합하여 만들었는데 독일의 맥주 순수령과 체코의 필스너가 표준으로 자리 잡은 이후엔 대부분 필스너 스타일로 만들면서 특이한 부재료를 넣는 맥주는 많이 사라졌습니다. 다만, 여전히 다양한 부재료를 활용해서 다양한 맥주를 만들어 내고 있는 나라가 있으니 앞에 람빅을 설명하면서 언급한 벨기에가 되겠습니다. 유럽 지도를 보면 벨기에의 위치가 에일의 나라 영국과 라거의 대륙 사이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벨기에는 영국에서 대륙으로 들어오는 현관이자 대륙에서 영국으로 건너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네덜란드와 더불어 무역으로 먹고 사는 장사꾼의 나라, 가장 자유분방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맥주도 영국식의 에일을 기본으로 대륙식 라거도 있으며 독일처럼 재료를 제한하지도 않고 이것저것 다 넣고 싶은 대로 넣어서 만드는 나라가 바로 벨기에입니다. 

그래서 벨기에 맥주를 마시다가 오렌지 맛이 느껴진다면 그건 진짜 오렌지 껍질을 넣은 것일 확율이 높고, 체리 맛이 난다면 그건 체리를 실제로 넣었을 확율이 높습니다. 독일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고 그래서 독일에서는 은근히 벨기에 맥주를 비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의 독일 친구들만 하여도, "벨기에 맥주를 마시고 나면 다음날 머리가 아파. 넌 잘 몰랐겠지만 걔들은 사실 맥주에 이상한 것도 막 넣어" 이렇게 진짜 진지하게 귓속말로 얘기해 주곤 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이상한 것이란 진짜 이상한 성분이 아니라 홉을 제외한 다른 부재료를 말하는 것이겠죠. 그래서 저는 벨기에 맥주의 매력은 다양성에 있고 독일 맥주는 그 미니멀한 단순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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