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 1,509원,
브렌트유 100달러 재돌파.
뉴스는 연일 불안을 쏟아냈다.
주식창은 파랗게 질려버렸다.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다시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난 올해 회사 리프레쉬 휴가 대상자가 되었다.
회사는 5년을 주기로 장기 휴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어느덧 만 20년 장기 근속자가 되었다.
예전 장기근속 선배들을 보며 신기했는데, 그 자리에 지금 내가 서있다.
결혼을 하면 아이들과 배낭 하나 메고 유럽 여행을 하겠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다.
그 시작은 첫 리프레쉬 때였다.
혼자 떠났던 여행에서 가족끼리 배낭을 메고 다니던 모습을 보며 막연한 부러움을 가졌다.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아이들과 여행해 봐야지.'
하지만 현실은 늘 타이밍을 비껴갔다.
한번은 출산과 겹쳤고,
또 한번은 코로나19 팬더믹 속에서 집에서 브루마블로 대신 해야했다.
그리고 이번, 드디어 기회가 왔다.
심장이 두근 거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쉽게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리프레쉬 한번에 다녀오겠습니다."
당연한 권리였지만, 입밖으로 꺼내는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주주총회가 끝나고 조직이 안정되었을 때 이야기 하자'
핑계를 대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렇게 기다리는 사이, 비행기 값은 매주 50만원이 넘게올랐다.
환율, 유가가 모두 오르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4월에는 유류 할증료도 더 오른다고 했다.
더는 미룰 수 없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티켓을 끊었다.
주저했던 만큼 나는 대가를 치뤘다.
비행기값만 해도 150만원은 더 비싸졌다.
거기에 숙소까지 예약하다 보니 카드 한도초과가 떴다.
아직 절반도 예약하지 못했는데.
세상은 내 급여만 빼고 다 오르는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여행을 포기 할 수 없었다.
이번이 아니면 아이들과 이렇게 긴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은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낭하나 메고 떠나는 여행.
아이들과 함께 하는 첫번째 해외 장기 여행.
우여곡절 끝에 우리의 여행은 이제 막 출항 준비를 시작했다.
이 시간은 아주 오랫동안 나와 아이들에게 많은 이야기가 될것이다.
그리고 출국 전까지, 난 그 시간들을 머릿속에서 수없이 더 경험할 것 같다.
조금은 늦었고.
조금은 비싸졌고.
조금은 두렵지만.
그래도 난 괜찮다.
돈으로 환산 할 수 없는 멋진 시간일테니.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