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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Sep 02. 2022

호황기를 지나 쇠퇴기

지하철 출구를 빠져나올 때 종종 전단을 돌리는 할머니와 무료 지하철 일간지 메트로 간판대 주변에 있는 할아버지를 만난다.


할아버지는 보통 메트로 간판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간판대를 바라보며 서 계신다. 아침부터 지하철 앞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할머니, 신문 간판대 주변에 있는 할아버지를 나는 잘 지나치지 못한다. 매번 신문을 가져가지는 않지만 할아버지가 신문을 들고 있으면 꼭 가져간다. 내가 먼저 손을 뻗어 신문을 잡는다. 그 사이 내 손에는 전단지와 메트로 신문이 있다. 한쪽 손으로 전단지와 메트로 신문을 들고, 음악을 들으며, 아침 산책을 하든 나무 사이를 걸으면 걸음걸이를 재촉한다. 짧지만 행복한 시간이다. 남들이 찾지 않는 신문을 들고, 음악을 듣고, 걷는 짧지만 긴 행복을 주는 시간이다.


메트로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세월이 정말 빠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예전에 경영을 전공한다고 경제 신문을 구독하면서 온갖 기업 소식 및 경제, 경영에 관한 소식을 보기 위해 신문을 펼쳐 들었고, 경제 신문의 낱말 퀴즈도 열심히 참여해 현금 십오만 원을 거머쥔 적도 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아닌 일일이 우편엽서를 사서 가위로 낱말 퀴즈 정답지를 올려붙였던 기억이 새록새록 올라온다.


종이신문 냄새와 종이신문을 넘길 때마다 들리는 사각사각 소리가 좋았고, 신문 기사를 읽을 때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다른 사람보다 알아간다는 자긍심, 남들보다 경제·경영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어깨가 한껏 올라갔었다. 신문에 한참 빠져 몇 년을 흘러 보내다가 무료 지하철 일간지를 만났고, 나는 출근할 때 어김없이 메트로와 포커스 한 부씩 집어 들고 사무실로 향했다. 틈틈이 기삿거리를 읽었다. 운세는 물론, 경제, 사회, 책, 연애 이야기까지 신문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호황이었던 메트로가 현재 인터넷의 발달로 그 옛날의 호황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세상은 진짜 어느 한순간도 예측할 수 없다. 그 호황이었던 시기 메트로 무료 신문이 이렇게까지 쇠락의 길로 갈지 누가 알았겠는가. 알았어도 어느 정도 흘러가는 추이를 보면서 예측했겠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던 무료 지하철 메트로 신문을 할아버지가 들고 있어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많다. 나는 할아버지를 그냥 스쳐 지나치지 못하겠다. 나는 사실 여전히 종이가 좋다. 종이 특유의 냄새, 그리고 종이로 인쇄된 활자가 좋다. 사람 냄새가 어디서 날 것 같은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인터넷으로 보는 신문은 그런 냄새가 없다. 너무 빨리 보고 싶은 주제들이 휘리릭 사라지고, 전체적인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강하다. 종이 신문은 펼쳐있을 때 우선 관심 가는 것을 본 뒤 그다음 조금씩 시간 날 때마다 다른 작은 지면들도 들춰보는 경향이 있다. 인터넷 신문은 그런 맛은 없다.


혼자 싱가포르 여행을 갔을 때, 싱가포르의 지하철 무료 신문은 중국어, 영어, 말레이어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흥미로웠다. 다양한 인종이 서로 어울려 사는 싱가포르 사회의 특이한 모습을 반영한 삶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되었다. 영어도 신문으로 인쇄되었기에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온 외국 관광객은 지하철 무료 신문을 통해 싱가포르 세상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지하철 무료 신문을 우리나라 언어는 물론 영어도 추가한다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눈 깜짝할 사이 모바일 세상 속으로 진입했고, 우리는 모두 모바일 없이는 살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때 같은 생각으로 내가 사장으로 메트로를 경영한다면 폭삭 망했을 것이다. 과거의 데이터를 근거해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때론 신빙성이  없다. 메트로 신문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될 것이라고는 나는 전혀 예측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다.


신문 보기를 좋아했던 나도 종이신문을 구독하지 않으니, 세상이 너무 빠르게 돌아간다. 가끔은 제트기 속도로 돌아가는  세상이 무섭다. 천천히, 느리게 세상이 돌아갔으면 한다.


지금 할아버지가 누군가가 가져가길 바라며 잡고 있는 신문은 한때 너나 할 것이 없이 지하철을 빠져나가면서 잽싸게 집어 가는 신문이었다. 가끔은 옛것이 좋을 때가 있다. 메트로 신문을 나눠주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한때 한창 호황기였던 신문의 쇠퇴 역사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인터넷 신문 그 너머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까. 제발 천천히, 더디게, 세상이 돌아갔으면 좋겠다. 빠른 세상 속에 적응하기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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