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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Oct 08. 2022

추억 그리고 미래 간송미술관

아는 언니를 통해 간송미술관을 알게 되었다. 역사에 관심 많은 사람이었고, 그 덕분에 일 년에 한 번 간송미술관을 찾아갔다. 그렇게 나는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선생을 알게 되었다.     


역사책에서  적이 없는 그분의 삶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에 대한 도서를 검색했고,  제목 「간송 전형필, 이충렬」을 읽었다.  누구보다 우리나라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쏟아부었던 그가 많이 알려지지 않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국가가 하지 못하는 일을  개인이 우리나라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위대한 사람이고, 대단한 사람이며, 존경을 받아야  사람이다. 역사에 남을 사람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나는 친구에게 밥 한 끼 살 때도 비싼 금액이면 몇 번 고민하는데, 그는 자신이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이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았다.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자기 삶도 버거워 남을 돌아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를 비롯하여 얼마나 많은데, 우리나라의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다른 나라까지 가면서 문화재를 구매해 오는 그에 대해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나는 역사를 어려워하고, 지금도 어려워한다. 그러나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지식 중 하나가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의 밑바탕에 있어서인지 역사를 많이 알고, 깊이 있게 알고 있거나 알아가려는 사람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대학교 때 무전여행으로 경주에 갔을 때 친구가 시대별 탑의 차이점을 설명해줬을 때 국사 시간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해줘 역사도 재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 친구를 통해 알았다. 오로지 암기 형식으로 가르쳤던 국사 선생을 증오했다. 그 국사 선생의 생활 태도 역시 국사 선생으로서 자세 불량이었다. 중간, 기말고사가 끝난 뒤 주관식 채점을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답안지를 교실로 가지고 와 수업 시간에 공부 잘하고, 글씨 잘 쓰는 몇 명을 뽑아 채점하게 했다. 나는 그런 행위 자체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해 그 선생과 담판 내려고 맞붙었지만 결국 학생이라 찍혔다. 그런 선생이 국사를 가르친다는 사실이 징글징글하게 싫었고, 칠판에 판서만하며 역사를 가르치는 방식으로 역사를 멀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역사는 한순간에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러 시대와 여러 사람에게 걸쳐 일어난 일에 대한 사회, 경제, 정치적인 맥락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학문보다도 깊이 알아야 할 학문이라 생각한다. 그런 지식이 쌓이고 쌓여야만 인문학적 소양은 물론 삶에 대한 방향성, 자신의 가치관도 성립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역사를 알수록 문화재를 보는 눈도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간송 전형필은 역사에 대한 관심을 늘 가지고 살아갔을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간송 전형필 선생은 국가조차 신경 쓰지 않았던 것에 자신의 재산을 써가며 지켰고, 후손인 우리에게 역사적 기록물을 꾸준히 보여줘 왔다. 책으로만 보던 기록물과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간송미술관 보화각에서 일 년에 1회인가 2회인가 무료로 개방하였다. 그가 그렇게 수많은 개인 돈을 써서 산 국보급 유물은 물론 다양한 그림을 무료로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무료 혜택을 받았지만, 간송미술관은 힘들었을 것이다. 유물을 보존하는 일과 간송미술관을 관리하는 일이 만만치는 않았으리라. 당시 국가에서 지원이 없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런 부분이 안타까웠다.      


왜 우리나라는 역사적인 부분에 노력하지 않을까 안타깝고, 창피했다. 이 분야를 잘 알지 못해 비평할 수 는 없지만 한 개인이 모은 문화유산을 그 한 개인의 건물에서 무료로 개방하면서까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얼마나 각고의 노력과 고민이 있었을 것이며, 많은 세월이 흐른 문화유산을 지키고 보존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될지 그려져 안타깝고 걱정되었다.


결국 일 년에 두 차례 정도 개방했던 간송미술관을 그렇게 폐쇄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동대문 DDP 플라자에서 전시를 진행했다. 나는 강북에 있는 간송미술관이 국가의 지원을 받아 문화유산을 보존할 수 있는 기술과 돈을 투자받고, 오래된 건축물의 보수와 수리를 지원받아 자기 재산을 아낌없이 투자해 그가 그렇게 지키려 했던 문화유산을 미래의 많은 후손도 볼 수 있게 해줬으면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나 또한 그렇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사로잡혀서는 안 되겠지만,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거울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강북 간송미술관 근처를 다녀오며 다시 간송미술관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무료 개방했을 때 도로까지 길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지루함보다 문화유산을 보기 위한 기대감으로 가득 찼던 눈빛들이 선명하다. 그렇게 나는 강북 간송미술관의 삐그덕 삐그덕 거리는 마룻바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서 세월의 흔적을 느꼈고, 건물 밖의 풍경이 도시에 있지만 도시에 있지 않는 느낌의 고즈넉한 분위가 좋았다.


강북 간송미술관이여 다시 오너라. 나 너를 기다리고 있다. 국가지원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고, 상업적이지 않고, 내가 너를 처음 보았던 그 느낌이 그대로 보존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만나는 날은 과거의 흔적을 지우고 새로운 현대식 건물이 아니길 바란다. 그렇게 너의 시간을 존중하고 싶다. 그리고 무료가 아닌 유료로 관람하게 해줬으면 한다. 그리고 그때처럼 상시 개방이 아닌 일 년에 한 두 차례 정도 개방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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