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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Jun 04. 2019

전남 장성 : 바다 저편에 펼쳐진 쌍무지개


돈도, 인간관계도 모두 힘겨웠던 2012년. 또다시 비슷한 무게의 고통이 찾아온 2014년.




나는 몸과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돌이켜보면 지독한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서울의 작은 원룸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방구석에서 인생의 쓴맛과 절망을 느끼며 숨을 쉬는 것조차 답답해하며, 하루에도 열두 번씩 나락으로 떨어지는 감정에 파묻혀 지냈다. 매일매일 날카로워지고, 뾰족한 심리상태를 이어갔다. 천 원 쓰는 것도 조심스러워 김치와 밥으로 하루를 보내며 정신은 밑바닥으로 하염없이 미끄러져 갔다.     


방과 부엌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는 다섯 평짜리 원룸에서 잠을 자려고 누우면 싱크대에 있는 칼이 내게로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반복적으로 찾아와 몸을 부들부들 떨어야만 했다. 이러다가 미칠 것 같아 밖으로 조금씩 나가기 시작했지만 힘든 삶의 굴레에서 꽤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대단한 것을 원하는 것 아님에도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손에서 쏜살같이 빠져나가기만 한 시절이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대부분 스스로 극복하려 해, 도움의 손길을 요청할 곳도, 사람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미래는 불안했고, 정신은 더 불안했다. 불안상태가 지속되니 주변에서 전화가 걸려오면 나도 모르게 거친 말투가 튕겨나갔다. 자제도, 통제도 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나의 힘겨운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없어 매몰차게 떠났으며, 떠날 때 마지막까지 ‘모든 상황이 너의 잘못이다’라며 거침없는 말을 쏟아냈다. 그 사람에게 질러버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가 매우 힘들다. 하지만 남의 일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이 옳다고 주장하며 답을 주려는 행동을 일삼는다. 자신의 문제는 결국 당사자가 풀어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일로 심신도 지치고, 사람들로부터 피해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몇 개월을 보내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결심하고 조금씩 활동했다. 그해 가을, 그렇게 나는 엄마와 하루 여행길에 올랐다. 2014년 11월 가을은 유난히 자연의 신비로움을 경험한 여행이었다. 여행 내내 바라봤던 풍경은 하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이라 착각할 정도로 생애 처음 겪은 풍경을 선사해줬다.      

 

몇 번을 눈여겨보고 있던 백양사를 가을 여행지로 엄마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백양사의 아름다운 낙엽과 엄마와의 여행은 한참만이라 행복했다. 얇은 잠바를 입고 와 추위에 떨고 있는 엄마에게 여유로 가지고 온 도톰한 반코트를 빌려줬다. 몸에 살짝 끼여 답답해하였지만 다른 여분의 옷도 없는지라 불편함을 감수하고 여행을 다녔다. 결국 나중에 불편해 벗어던지고 엄마는 엄마가 가져온 얇은 외투를 입고 여행을 지속했다. 말 없는 엄마를 알아가는 여행이었다.      




백양사를 나와 고창 고인돌박물관 입구에 들어섰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퍼부었다. 차에서 내릴 수도 없었다. 갑작스럽게 내린 비로 하늘을 보니, 더 굵은 빗줄기가 쏟아질 것 같아 박물관을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운전석 앞 창문으로 무지개가 어렴풋이 보였다.


최대한 가깝게 무지개를 담아보려고 주차장 끝으로 이동해 무지개를 바라보았지만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과감히 엄마와 동호해수욕장으로 자동차 핸들을 꺾었다. 과감하게 차를 빌린 것이 신의 한 수 였다. 여러차례 빌릴까 말까를 고민했었다. 그러나 탈출구가 필요했기에 선택한 나의 결정에 스스로 행복해했다.



가는 중에도 소나기는 그치지 않았고, 거센 바람도 불었다. 바다와 가까워질수록 무지개가 내게로 다가오는 것 같지만 가까이 다가갔다고 생각하면 다시 멀어져만 갔다. 바다로 가는데 갑자기 흐린 하늘에 밝은 빛과 함께 쌍무지개가 보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바라본 쌍무지개를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에 감사했다.


엄마 역시 60년 넘은 생애 동안 난생처음 쌍무지개를 본 것이라며, 행복한 웃음을 지으셨다. 감격스러워 차를 논길에 세워두고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한 폭의 그림 같은 아름다운 무지개를 다 담아낼 수 없었다. 저 멀리 차를 세워 무지개를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만 감동받은 것이 아니군.     



무지개를 더 가까이 보고 싶은 마음에 바다로 달렸다. 엄마와 전라도 여행을 떠나오지 않았다면, 그리고 백양사 이외의 장소를 정하고 왔다면 과연 나는 평생 볼까 말까 한 쌍무지개를 볼 수 있었을까. 행운의 여신이 내게로 찾아온 날이었다. 힘겨웠던 한 해의 11월에 그렇게 쌍무지개는 나에게 웃음을 선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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