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스위스 여행
2008년 스위스 루체른에서 리기산을 가기 위해 유람선을 타고 어느 작은 선착장에서 도착했다. 선착장을 나와 리기산 정상까지 가는 리기쿨룸행 등산 열차에 탑승하여 리기산 정상까지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등산 열차를 개발하고, 만든 사람들의 능력에 다시금 감탄했다. 해발고도가 높은 곳까지 열차로 사람들이 갈 수 있도록 하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을 것이고, 희생의 결과로 혜택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고마울 따름이었다. 과연 인간의 능력은 어디까지이고,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리기 쿨름역에서 하차하여 리기산 정상을 가기 위해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산 아래 풍경은 말로는 형언할 수 없었다.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푸른 초원, 나무, 식물, 야생화가 펼쳐진 풍경은 한국과는 다른 멋을 자아낸다. 산 중턱 집들, 초원 위에서 소들이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은 한국과 대조적이었다. 한국이라면 대부분 외양간에서 갇혀 한정된 공간만을 평생 가지면 살아갔을 텐데 스위스의 소들은 드넓은 초원이 다 자신의 영역인 것이다. 이런 근본적인 차이는 왜 나는 것일까? 국토가 좁아서 그런가? 아니면 사람들이 동물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일까?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소들이 넓은 초원 위에서 마음껏 돌아다니며 풀을 뜯어먹고 사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소에게서 방울 소리가 은은하고, 청명하게 들렸다. 소들이 움직일 때마다 딸랑딸랑하는 소리가 정겹고 반가웠다. 아마도 초원 위에서 방목하는 소를 잃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소 방울을 만들지 않았을까 싶은데 소 방울과 관련하여 최근 자주 의견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소의 되새김질을 방해하는 동물학대 의견과 농민들의 대립이 있는 기사를 보면서 소 방울 소리를 은은하게만 들었던 나 자신의 생각을 되짚어 보게 된다.
하산 길은 등산 열차가 아닌 트레킹으로 내려오는 데 열차를 타고 오는 느낌과 사뭇 다르다. 풍경을 만끽하며, 흥얼흥얼 노래도 부르고, 중얼중얼 혼잣말하며 드넓은 초원이 다 나의 것이냥 가벼운 발걸음을 디뎠다. 의자에 앉아 그윽하게 전경을 바라보는 노년의 부부, 패러글라이딩하려고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들, 한적하고, 싱그럽고, 푸르른 자연풍경을 마주하니 현실의 녹록함을 순간 잊어버린다. 나는 과연 내 앞에 보이는 그들과 같은 여유를 누리고 살아갈 수 있겠냐는 질문을 던져보지만 나 스스로에게 답을 할 수 없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 사회에 속해있는 나는 그 세상을 벗어날 용기를 가진 자도 아니었고, 소심한 사람으로 더욱 답을 내놓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
선착장의 유람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산 중턱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트레킹하며 혼자 사진 찍는 것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노부부가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우연히 그들과 함께 케이블카를 탔다. 그들이 영어를 할 줄 몰라 우리는 바디랭귀지인 그저 웃음으로만 대화를 나눌 뿐이었다. 케이블카 안은 초등학교 아이들로 붐벼, 왁자지껄 시끄러웠다. 나도 어릴 적 분명 아이들처럼 시끌벅적 떠들고 다녔을 텐데 귀찮게 느껴지고 피곤해졌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고 하더니 딱 그 꼴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는 데 점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걱정되었다. 가져온 우산도 없고, 도착 후 선착장까지 어떻게 이동해야 할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점점 빗방울 굵어져 케이블카 종착점에 도착하니 비는 더욱 거세게 쏟아졌다. 선착장까지 상당한 거리였다. 비가 언제 그칠지 걱정이 앞섰다. 이대로 계속 저녁까지 오면 큰일이겠다 싶었다. 비를 쫄딱 맞고 선착장으로 달려가야 하나 오만가지 생각이 들면서 그저 발만 동동 굴렀다. 케이블카 주변에 상점이 없었다. 우산을 팔만한 곳도 없었다.
선착장의 유람선 시간은 다가오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착장까지 가는 버스는 없냐고 물어봐도 대답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 사람들이 영어를 못했다. 나 역시 영어를 잘 못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설명할 수 없어 이래저래 초조해졌다. 이윽고 한 젊은 여성이 나보고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어왔다. 조금 할 줄 안다고 말하고 상황을 설명했더니 승용차에 있는 노인들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초조하게 기다리는 나를 노인들이 손짓하며 자신들의 차에 타라고 했다. 자동차 안은 이미 만원이었는데 나까지 차에 타니 자리가 무척 비좁아졌는데도 불편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미안하고 고마워 드릴 수 있는 것이 없나 호주머니를 뒤적거려봤지만 나오는 것은 '아카시아 껌'뿐. 창피해도 아카시아 껌을 그들에게 건넸다. 그분들의 선행을 넙죽 받아들이고,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고, 나는 마침내 배를 놓치지 않았다.
비록 의사소통은 되지 않아 손짓·발짓을 해야 했지만, 그들의 덕행으로 두려움 없이 남은 여행을 만족하며 다닐 수 있었다. 나눔을 실천한 사람은 상대방에게 작은 도움을 나눠준 것뿐이라고 말할지라도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남은 여행 내내 불안과 초조함으로 여행을 즐기지 못했을 것이다. 두려울 수 있는 여행을 즐겁게, 행복하게 만들어준 큰 은인이었다. 선착장에 도착해 우산 하나를 날름 사고, 배 시간에 맞춰 올라타 남은 여행을 여유롭게 즐겼다.
여행에서 어떤 것을 보는지도 중요지만 누구를 만나는지도 중요한 것 같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더 다채롭고, 풍요롭고 아름다운 여행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벌써 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들을 그 순간 만나지 않았다면 쫄딱 비를 맞았을 것이고, 비를 맞으며 선착장까지 뛰어갔더라도 분명 유람선을 놓쳤을 것이다. 그로 인해 남은 일정을 우울한 기분으로 보냈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 인생에서 불현듯 찾아오는 행운과 불행이 있다. 우리는 행운과 불행, 그 어떤 순간을 맞이하더라도 지혜롭게 극복할 힘이 있다고 믿고 싶다. 내게 여행에서 일어난 기적처럼 우리는 문제 안에서 좋은 해결책을 구하고, 그것에 분명 답할 기적이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