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가 많은 민둥산을 그저 보고 싶었다. 언젠가는 갈 여행지로 점찍어두었던 여행지였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가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억새가 보고 싶었다. 억새가 그저 보고 싶었을 뿐 다른 어떤 이유도 없었다. 가방 하나 질끈 둘러메고 간편한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기차역으로 가 강원도 정선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고 정선을 갔다. 평소에 즐겨 이용하는 버스에 대한 환상은 없지만, 기차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나는 설레었다.
푹푹 찌는 무더운 여름에 타인과 살을 부대껴야 하는 버스는 그저 단순한 이동수단이다. 버스에 서 있을 때, 버스가 정거장이나 신호등에 걸려 정차하면 넘어지지 않으려고 두 발에 힘을 꽉 주고,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것이 에너지 소모가 많다. 때때로 바깥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도 없다. 기차는 적어도 두 발에 힘을 주지 않아도 된다. 어떤 목적으로든 기차를 타면 여행을 떠나는 낭만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기차를 자주 이용할 수 없는 지역에 살아서인지 기차 하면, 몽환적이고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비밀을 많이 간직한 존재로 느껴진다. 터널을 지나 펼쳐지는 풍경은 순간 이동을 한 것은 아닐까하는 착각을 하게 한다. 기차 밖의 풍경을 그윽하게 바라보면 쉽게 나만의 감상에 빠져들 수 있고, 오로지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만의 시선으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나만의 행복한 시간과 마주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버스는 나도 인식하지 못하는 찰나에 타인이 쑥 나에게로 들어온다. 기차는 적어도 그 간격이 길거나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기차는 타인과 타인의 거리가 적당히 유지될 수도 있어 괜찮다. 기차를 타면 사람들이 평소보다 부드러워지는 것 같고, 또 기차에서라면 낯선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간단한 인사나 이야기 정도는 가볍게 나눌 수 있는 분위가 형성되는 것 같아 좋다. 경계를 허무는 기차가 좋다.
가끔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나, 기분이 울적할 때 계획 없이 기차표를 끊고 훌쩍 낯선 도시로 과감히 탈출한다. 억새가 보고 싶었다. 억새가 보고 싶었다. 산 정상을 뒤엎는 가느다란 억새가 있는 민둥산이 늘 보고 싶었다. 충북선을 타고 제천역에서 갈아타 정선역에서 내렸다. 정선역에 도착하자 마자 민둥산으로 가는 방법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두리번했다. 2008년만 해도 2G 폰을 사용해 지금처럼 궁금하다고 바로 인터넷을 검색해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때만 해도 여행을 떠나기 전에 사전에 교통편을 알아두고 가는 편이 여행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음에도 민둥산으로 갈 때는 이미 어느 정도 국내 여행을 다녔던 경험이 있어 굳이 여행 계획을 세우지 않더라도 잘 다닐 자신이 있어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다. 정선역에 도착해서부터 민둥산의 위치를 역무원에게 물어보고, 최종 목적지인 민둥산으로 향해 걸어갔다.
역에서 조금만 걸으면 정선 카지노가 보였다.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소도시에 덩그러니 있는 카지노가 낯설고, 지역과 어우러져 있는 것이라 아니라 생뚱맞게 있어 오히려 정선의 경관을 망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낯선 도시에 한순간의 일확천금을 기대하고 와 돈 잃은 사람들에게 과연 정선이라는 도시는 어떻게 다가올까 하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배낭 메고, 물도 챙기지 못한 채 산을 올랐다. 야트막한 산이겠거니 생각했던 나의 착각이었다. 돌이켜보면 남에게 민폐를 끼쳤다. 그것도 나의 부주의함으로 말이다. 민둥산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돼서야 물을 챙겨 오지 못함을 알고 물을 사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단순히 가볍게 올라가자는 생각으로 올라갔다. 산 중턱쯤 약수가 있겠지라는 그때까지만 조금 참고 올라가면 되겠지 라고 안일한 생각으로 결정을 했었다. 민둥산 입구에 아무것도 없이 휑한 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 줄 알았다면 정선역 근처에서 분명 물을 샀을 것이다.
어쨌거나 천천히 한 걸음씩 터벅터벅 올라가는 데 점점 목의 갈증은 더해오고, 머리는 온통 물 생각만으로 가득한 채 걸었다. 주변의 경치는 전혀 눈에 담을 수 없었다. 목마름이 제일 먼저 풀어야 할 숙제였다. 민둥산을 하산하는 사람의 거의 없었고, 정상을 향해 등산하는 사람도 거의 없어 도움을 요청할 길이 없었다. 숨은 차오르고, 목은 마르고, 물 한 모금이 절실할 상황이었지만 조금만 더 올라가면 분명 약수터가 있겠지 라는 희망을 품으며 앞으로 나갔다.
끝끝내 정상에 가까워질 떄쯤까지도 물을 마실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거의 지쳐 쓰러져 갈 때쯤 하산하는 부부를 만났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물이 있어 내가 그들에게 간곡히 부탁하면 '기꺼이 물을 줄 거야'라고 계속 주문 외웠다. 용기 내 남는 물이 있다면 한 모금 좀 달라고 부탁드렸더니, 반쯤 채워진 물병 하나를 다 건네주시면 가지라고 했다. 사막을 걷다가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쓰러질 듯 쓰러질 듯 앞으로 나가던 나는 다시 두 발로 정상을 갈 힘을 얻었다.
아둔한 행동으로 비롯된 여행이었지만 부부의 물 한 병으로 그렇게 보고팠던 억새를 볼 수 있었다. 민둥산 정상을 코앞에 두고 다시 하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여러 차례 고민했던 내게 기적처럼 나타나 값진 선물을 준 부부 덕에 민둥산 정상을 뒤엎은 가느다랗지만 쓰러지지 않는 억새를 만날 수 있는 영광을 얻었다. 억새를 왜 보고 싶어 했을까. 약해 보이지만 쓰러지지 않는 강인함을 나에게 원해서였을까. 나는 왜 그렇게 억새를 보고 싶어 했을까.
떠나는 길에 반드시 물을 챙겨가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여행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훗날 홍콩 트레킹 코스에서도 걷는 시간을 예상하지 못해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그 후로 그와 같은 일은 없었다. 낯선 부부의 도움을 받아 고마웠지만 결국 그들의 소중한 물을 빼앗는다는 미안함이 들었다. 그 부부처럼 나 또한 길 위에서 도움을 요청했을 때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여행지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나누는 일은 서로의 마음의 끈을 잇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