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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Nov 08. 2022

사무치게 보고픈 아이들

스물두 살부터 스물여섯 살까지 아이들과 다양한 활동을 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부터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과 2주에 한 번 만났다. 오 년 간의 활동은 나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갔지만 오히려 내가 얻은 것이 훨씬 많았다. 봉사를 한다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이다. 아이들을 만났고, 봉사자를 만났고,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할 수 있었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나눠주는 훌륭한 부모님을 만났다.      


발달장애에 대한 지식도 전무후무했고, 사회복지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기에 많이 부족했던 부분이 미안할 따름이었다. 활동하기 전까지도 발달장애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활동하면서 발달장애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가까이에서 그들과 그들의 부모님을 만나면서 우리나라의 발달장애인의 현실을 조금씩 알아갔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 편견으로 인한 마음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부모님들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편견이 내게도 존재했고, 무지했었다. 그러나 상처를 보듬을 겨를도 없이 부모님들은 자식이 조금 더 사회적으로 적응하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온통 가시밭인 사회 현실에 맞서 이겨내려고 고군분투하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웠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미안했다. 이십 대 때 나는 참으로 많이 사회에 악감정과 분노가 많았다.

    

발달장애 아동들과 함께하면서 아이보다 하루라도 더 살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간절한 마음이 전해져 올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 결혼하지 않았고, 아이를 낳지 않아 솔직히 부모의 내리사랑이 어떤 것이 정확히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발달장애를 키우는 부모님이 아이보다 하루라도 더 살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했다. 그 당시 발달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말아톤’이라는 영화가 나오면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내가 참여했던 봉사활동은 대다수 봉사자가 사회복지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자주 YMCA 간사의 도움을 받았지만 거의 모든 활동의 처음과 끝을 봉사자들이 주체적으로 진행했다.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봉사자 스스로 삼삼오오 모여 머리 싸매며 골똘히 고민하고, 토론하며 만들었다. 그만큼의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 만들었던 프로그램들이라 더 애착이 갔던 것 같다. 활동을 함께 했던 아이들이 재미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봉사자 모두는 자신이 어린이가 된 것처럼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롤러 함께 타기, 마카로니로 액자 만들기, 공원에서 대형 비눗방울 만들기, 요리하기, 딸기 체험, 1박 2일 캠프, 신문 던지기, 눈썰매 타기, 크리스마스 전날 가가호호 아이들의 집을 방문하여 선물 주기 등      


내가 스물두   초등학교 저학년이 많았으니 지금쯤  아이들도 서른 살이 넘었을 것이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하다. 얼마  봉사활동을 함께 했던 친구와   만에 전화 통화를 하면서 아이들의 소식을 알고 있는지 넌지시 물어봤었다. 전혀 알지 못했다. 전혀 소식을 모르니, 성인이 되었을  아이들이  사무치게 보고 싶다.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그리움이 멈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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