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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Nov 17. 2022

감정 회복

나를 기억해주는 한 사람 덕분에 감정이 회복되다.

나를 기억해주는 한 사람 덕분에 감정이 회복되다.


재택근무를 끝마치고 몸이 노곤해져 눈이 스르륵 감겼다. 마침내 참지 못하고 알람을 맞춘 후 이불을 목까지 바짝 끌어올리며 누워버렸다. 보일러를 켜지 않은 채로 종일 일하니 이불속이 보일러다. 엄청 따뜻하다. 곤히 잠들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깨지 못할까 봐 엄마에게 당부하고 잠을 청했다. 삼십 분 정도 달콤한 잠을 잤다.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자는 사이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와 있었다. 나의 도움을 요청하는 문자였다. 누구인지 생각나지 않아 전에 온 문자를 살펴보니 누군지 기억났다. 전화를 걸었다. 퇴근하지 못하고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몽롱한 상태에서 도와주기 위해 책상으로 몸을 옮겼다. 다행히도 컴퓨터를 끄지 않아 바로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그녀와 나는 서로를 잘 모르는 사이다. 잠깐의 도움을 준 적이 있을 뿐인데 나에게 도움을 청한 그녀에게 그저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제가 그래도 불편하지 않으셨군요. 고마워요.’라는 말을 전했다. 나를 좋게 본 한 사람에게 도와줬던 일로 나는 어제의 감정을 퉁쳐버리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어제만 해도 이따금 나를 깐족거리며, 은근슬쩍 무시하는 한 사람의 행동으로 인해 폭발했던 것과 비교된 감정이다. 결국 옆에서 또 한 번 무시하길래 참지 못하고 ‘아~씨 진짜 짜증 나 죽겠네.’라고 혼잣말했다. 들었을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 곁을 떠나 사무실로 돌아왔다. 화가 나도 대놓고 이런 적이 없었던 사람인데 실수를 한 것 같아 나를 자책했다. 


과거에 만약 이런 경우가 있으면 당사자와 직접 대화했던 것과 다른 행동이었다. 어제 그래서 우울했다. 그렇게 한 행동이 시원스럽게 느껴지다가도 시원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복잡한 감정의 회오리 속에 있었다. 어제 늘 울리지 않는 나의 핸드폰이 울렸다. 아는 언니의 전화였다. 이야기하다가 그 일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잘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준다. 그저 하는 말인지 몰라도 무거운 마음이 살짝 가벼워졌다. 계속 그렇게 행동하는 친구에게 아무런 행동을 안 취할 경우 계속 같은 행동을 하거나 그런 행동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나의 불안한 감정을 안심시켜줬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모르겠다. 더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 다행히 재택이었다.     


저녁 한 사람을 도와주고 글을 쓰기 위해 앉아 있는데 갑자기 카톡으로 케이크 선물 쿠폰이 도착했다.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였다. 분명 카톡에 생일 표시 기능을 해제해 놓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어릴 적부터 사실 생일이 크게 의미 있지 않았다. 엄마도 잘 기억하지 못해 항상 며칠 전부터 ‘내 생일이야’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생일이라고 해서 특별하지 않았다. 어릴 적에는 엄마에게 살짝 서운한 감정은 있었지만 생일을 못 챙겨준다는 것의 서운한 감정보다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었다. 어릴 적부터 사실 생일에 대해 특별한 하루라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었다. 성인이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에서 나에게 부여된 임무 중 하나가 생일자 챙기기가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나의 생일을 챙겨 받지 못했다. 친구들과도 그런 적이 많아 크게 생일에 의미도 두지 않고, 그저 평소와 같은 하루라고 생각하고 산다. 그저 보통날이다. 


그런데 오늘 누군가 나의 생일을 기억해주며 선물을 보내왔다. 그것 자체가 나에게 사건이다. 아주 특별한 사건이다. 생일이 지난 지 2주가 되었지만 누군가가 나를 생각해준 그 사실이 고마운 날이다. 작년 생일이 17일이었나 보다. 음력 생일을 보내니 매년 날짜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나의 생일을 기억하는 것 자체가 감개무량하다. 타인의 생일을 기억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상당히 번거롭고 수고롭고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더 고맙다.     

 

어제와 다른 감정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래서 사나 보다. 사실 살면서 행복보다 고통이 더 많지만, 찰나의 행복을 느끼려고 사는지도. 오늘 나를 기억해준 한 사람처럼 나도 누군가가 그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기억해주는 한 사람이 되고 싶은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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