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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Jun 24. 2019

경북 여행 : 나라면 과연 그들처럼

경북 무전여행 그리고 히치하이킹

대학 시절, 장학금 받기 위해 공부도 해야 하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는 형편으로 나의 생활 반경은 매우 협소하고, 정해져 있었다. 학교, 도서관, 집, 아르바이트, 등만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다양한 친구들을 사귈 시간이 없었다. 수업을 들으면서도 별도로 친구들과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혼자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해서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때 무엇이 그렇게 바빴던 것인가?


장학금을 타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술 마실 수 없었다. 어울리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도서관 의자에 엉덩이를 찰싹 붙이고 앉아 몰입할 방법밖에 없었다. 시간과 노력, 이 두 가지를 모두 해야 따라잡을 수 있어 최대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2년 늦게 입학한 나는 동기들과 어울려 보낼 시간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도 희한하게 교양수업에서 나와 비슷한 또래의 한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뒤늦게 들어온 또래에서 오는 공감이 있었던 걸까, 어떤 계기를 통해 친해졌는지 기억이 없다.     



친구는 역사학을 전공했다. 내 주변에 역사학을 전공한 사람은 지금까지도 그 친구뿐이다. 지금은 연락이 끊어졌지만 언제나 그리운 친구이다. 멋지고, 과감하게 용달차를 운전하는 친구였고, 키는 170cm로 모델같이 컸으며, 얼굴도 백옥같이 하얀 피부와 예쁜 얼굴을 가진 친구였다. 마음씨도 착한 친구였다. 그 친구에게는 한 가지 심각한 고민이 있었는데, 그녀의 예쁜 얼굴이 아토피 염을 앓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주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생활했었다. 대학 생활에서 나와 그녀는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얼굴에 아토피가 점점 심해져 학교에 다니는 것조차 힘들어했던 친구는 결국 자퇴를 결정했고, 시골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그녀와 연락이 끊어졌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 친구여서 함께 무모한 여행을 할 수 있었는데 소중한 경험을 함께 해 준 친구의 소식조차 알 수 없으니 슬프다.






대학 3학년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계획도 없었다. 그저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여행을 떠날 때 정해진 것은 없었다. 다만 경비로 십만 원만 준비했을 뿐이다. 짐을 꾸리고 떠나는 날, 비로소 여행의 방법을 정했다. 히치하이크와 무전여행이었다. 준비한 십만 원은 절대 사용하지 않기 위해 배낭의 맨 밑바닥에 돈을 보관했다. 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돈을 넣어두면 언제나 손쉽게 꺼내 쓸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여행 방법을 100% 실천하기 위해서 각자의 방식으로 돈을 숨겼다. 히치하이크, 무전여행을 하는 친구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나 또한 그들처럼 길 위에 있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품어 왔었는데 혼자 떠날 용기가 없었던 내게, 그녀는 그렇게 다가왔고, 그녀와 함께 그토록 바라던 무전여행을 할 수 있었다.      



과연 히치하이크를 통해 여행을 잘 할 수 있겠냐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은 한순간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믿었고, 서로 역할 분담을 했다. 선한 얼굴과 키가 큰 친구는 차를 세우는 역할을 했고, 차가 멈추면 그때부터 나의 역활이 시작되었다. 차에 올라타 소통하는 일 역시 나의 역할 중 하나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혼자 외갓집을 다니던 실력이 이때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버스 운전사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질문했던 온몸의 세포가 하나하나가 되살아나 조건반사처럼 대화를 끌어내 무전여행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당시 친구는 그런 나의 능력을 놀라워했다. 난 다만 소수에 강할 뿐이다. 만약 많은 인원이 몰려 있는 장소나 상황이라면,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군중이 무섭다. 소수에 강하다.     





그렇게 히치하이크를 하며 충북 괴산, 경북 문경, 안동, 포항, 경주를 여행했다. 갑작스러운 일정으로 통영까지 가보려는 우리의 계획은 이루어질 수 없었으나 길 위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 다양성을 배웠다. 길 위에서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와 연결이 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의 도움으로 삶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워나갔다. 우리는 서로 연결된 존재로 더불어 가는 삶을 살아가는 존재이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길 위에서 낯선 사람의 베풂과 친절함이 없었다면 우리는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없었을 것이다.      



깊은 산속의 절에서 하룻밤 보내려고, 늦은 밤 어둑어둑한 산길을 올라가 도움을 요청했었다. 하지만 공사로 부득이하게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스님의 대답을 듣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내리는 굵은 소나기로 마음과 몸은 잔뜩 움츠러들었다. 순간 비를 피하고자 앉았던 장소 앞, 음식점 주방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다른 방법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이미 밤은 10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잠자리를 위해 무작정 음식점의 주방에 들어가 설거지를 하고 하룻밤 재워 줄 것을 정중히 부탁드렸다. 극적으로 사장의 허락을 받아냈고, 우리는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피해 음식점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자신의 것을 낯선 사람에게 내놓을 수 있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시골길을 따라 걷다가 마주친 할아버지가 자신의 우유를 넌지시 건네며 더위를 식히고 가라고 했던 일도 잊을 수 없다. 몇 차례 거부했건만 할아버지는 끝까지 우유를 권했다. 무더위에 할아버지가 건네준 달콤한 우유는 행복의 맛이었다. 꼬깃꼬깃 모아뒀던 쌈짓돈을 받은 기분이었다. 너무나 소중하고 값진 우유는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마음의 선물이었다. 분명 할아버지의 소중한 우유였을 것이다.    


  

노부부가 배고픈 우리를 위해 밥 한 그릇과 반찬을 선뜻 내놓으시고, 가는 길이 바쁨에도 우리를 태워줬던 사람들, 멋진 장소를 알려주고 싶다며 좋은 풍경과 장소를 기꺼이 알려주셨던 사람들이 있어 행복했다. 히치하이크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다. 뉴스를 통해 전해 듣는 소식이라는 것이 대부분은 어둡고, 비루하다. 뉴스는 온통 이 세상은 점점 삭막해지고, 사악해지고 있는 것들로 앞다퉈 보여주려고 경쟁하듯 부정적인 기사만을 뿌렸다. 이런 세상 소식을 자주 접하다 보니 우리의 여행도 혹여 잘못되어 붙잡혀 갈 수 있지 않을까 우려를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섣부른 판단과 걱정에 불과했다. 많은 사람이 조건 없는 선물을 주었고, 우리는 인생의 아름다운 선물을 받아들였다.      



만약 내게 그들과 같은 상황이 주어진다면, 나는 과연 그들처럼 조건 없는 선의를 베풀 수 있을까, 나는 과연 길을 가다가 낯선 사람이 손을 흔들면, 가던 길을 멈추고 그들을 태워줄 수 있을까. 가던 길이 바쁜데도 불구하고 멋진 장소를 보여주겠다며 돌아서 갈 수 있을까. 갑자기 들이닥친 낯선 사람에게 밥과 국을 내어 줄 수 있을까. 난 선뜻 이런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베푼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에 고맙고, 감사하다.      



세상은 다양한 빛깔로 무장한 많은 사람이 살고 있고, 그 많은 사람과 삶을 느끼고 싶다면 길 위에 기꺼이 서는 일이 나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려면 모임을 가거나 학원 다니는 등 활동해야 한다. 그런데 여행은 그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길 위에서 삶의 지혜도 배울 수 있는 특별함이 있다. 길은 배움이고, 길은 언제나 열려있다. 그 길을 한껏 끌어안으면 우리의 삶도 다채로워지리라 의심하지 않는다.



이미지 출처 : Photo by Atlas Gree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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