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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Jun 20. 2019

첫 배낭여행 - 베트남 하노이 2

여권분실로 뜻밖의 우연한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노이에 있는 여행사들은 하노이에 있는 관광지는 물론 인근 지역을 여행할 수 있도록 하는 상품을 판매했다. 여러 여행사를 둘러본 뒤 몇 가지 여행 상품을 예약하고 베트남 관광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뒤섞여 시커먼 매연을 뿜으며, 서로 질서 없이 다니는 도로에 적응하는데 한참이나 시간이 걸린 여행이었다. 오토바이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자동차는 혹여 경주하는 자동차와 흡사했다. 이런 무질서 속에서 현지인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는 생활방식에 적잖게 놀랐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나름의 규칙은 분명 있을 것이다. 이방인의 눈으로 보면 비상식적인 것이 그들에게는 상식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노이에서 물건 하나를 사려면 부르는 게 값이었다. 상인들은 으레 높은 가격을 불렀다. 한번 거절을 하면 상점 주인들은 다시 불러 가격을 인하하여 흥정을 붙였다. 이런 상인들의 행동에 적잖이 실망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문화라 뭐라 할 수 없어 속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최대한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사려고 가져간 계산기까지 총동원했다. 뻔히 보이는 행동을 하는 베트남인들에게 화도 나고, 우여곡절도 많은 여행인데 희한하게 베트남이 싫지 않았다. 다시 떠나고픈 나라이다.


우리나라 60~70년대 수준 같아 불편한 것들이 왕왕 있었지만 나름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을 가진 하노이였다. 점점 하노이에 빨려 들어갔다. 사회주의 국가인데 거리 곳곳에서 거침없이 애정행각을 하는 연인들이 볼 때마다 당혹스러웠다. 사회주의 국가라 사랑, 연애 등에 상당히 보수적일 것이라는 생각은 여지없이 깨졌다. 상당히 개방적인 모습에 흠칫 놀랐고,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서서히 고수 냄새에 익숙해질 무렵, 하노이에서 북쪽에 위치한 사파라는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이때부터 여행을 즐길 수 없었다. 여권을 잃어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사파로 가기 위해 하노이의 한 기차역으로 가 올라탔더니 친구와 내가 배정받는 객실은 직원들이 쓰는 직원 전용 객실이었다. 문제는 이다음부터 생겼다. 직원 전용 객실이라 혹시 직원들이 들락날락 하지 않을까 싶어 돈을 최대한 잘 보관한다고 한 행동으로 결국 여권과 돈을 기차에 두고 내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뒤늦게 사파로 이동하는 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른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이동 중이라 차를 중간에 되돌릴 수 없어 일단 사파로 가서 기차역에 물어보고, 방법을 찾기로 했다. 또한 예약한 현지 하노이 여행사에도 연락을 취하기로 했다. 당장에 조치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지 못해 걱정과 불안으로 사파 여행 내내 여행을 즐겁게 즐기지 못했다. 베트남 여행 중 일부 시간을 여권과 돈의 행방을 쫓는데 쏟아야 해서 같인 동행한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좌불안석이었다.        

   

사파에서 돌아온 뒤 한국대사관을 방문에 임시여권 발행을 요청하였지만, 대사관 직원은 비자 신청으로 줄지어 있는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두고 자국민 일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 질문을 했는데도 내가 알고 있는 정보보다 며칠을 더 부풀려 이야기해서 결국 화를 냈다. 그들은 내가 그들이 기간을 부풀려 이야기한 것을 모를 것으로 생각했나 보다. 조목조목 따지니 말을 못 하고, 최대한 빠르게 처리해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현지 경찰서에 방문해 분실신고를 하고 경찰서에서 발행해주는 서류를 가져오면 임시여권을 발행해주겠다는 설명 또한 엄청 불친절하고, 불투명하게 이야기해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그들의 일은 자국민 보호도 자신들의 업무 중 하나일 텐데 관심 밖의 일로 치부해버리는 방만한 태도에 일을 참 대강대강 하려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같은 건물에 있는 한인협회로 가 도움을 요청했더니 대사관보다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려고 애썼다.     





베트남어를 할 수 없는 우리를 보고 알아서 분실신고까지 하라고 했던 한국대사관. 베트남어를 잘 모르는데 어떻게 하냐고 물어봤더니 그것도 알아서 하라고 했던 한국대사관. 솔직히 대사관의 역할이 무엇인지 의심을 감출 수 없었다. 오히려 한인협회에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줘 한국어를 능숙하게 하는 베트남 현지 대학생을 소개받아 경찰서로 이동해 눈물, 콧물 다 짜낸 후 극적으로 분실 신고서를 손에 받아 들고 임시여권 발행 요청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대사관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임시 여권이 나오는 기간 동안 하노이 관광을 했다. 통역해준 친구와 함께 하루는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에서 차와 과일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며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베트남 현지에서 그녀의 도움으로 무사히 한국에 귀국할 수 있었다. 그녀는 몇 년 후 한국으로 공부하러 들어왔었다. 그때 그녀의 열정으로는 충분히 한국으로 들어와 공부하리라 생각했는데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은 연락이 끊어졌지만, 그녀의 도움으로 나는 친구들과 떠난 여행에서 혹여 나만 귀국을 못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또 다른 어딘가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사심 없이 손길을 내밀 사람이다. 분실된 여권과 돈은 며칠간의 수소문 한 끝에 여권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분실된 여권을 찾았더라도 이미 임시여권을 발급받아 전혀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분실된 여권을 찾아서 가지고 있었더니 출국과 입국할 때 상황이 꼬였다. 베트남 출국 시 임시여권을 보여줬는데 대화가 안 돼 결국 담당자에게 분실된 여권을 찾았는데 그것이라도 보여 주냐고 물었고 보여 달라고 해서 보여줬더니 담당자는 딱하니 분실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그래서 한국 입국 시에도 분실여권으로 보여줘도 괜찮겠지 하며 순간 착각을 하고 분실 여권을 내밀었다. 이상하게 생각해 설명했는데도 의심은 풀리지 않았다. 결국 별도의 사무실로 불려 들어가 삼십 분 정도 조사를 받고 나올 수 있었다. 돈을 잃어버릴까 봐 조심스럽게 행동했던 것이 오히려 여행을 망쳐 그 이후 여행에서는 누군가 나의 여권과 지갑을 훔쳐 갈까 걱정돼 침대보 밑에 숨기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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