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빛항아리 Jul 01. 2019

이탈리아어, 콩글리시의 조합이 만들어 따뜻한 커피 한잔

이탈리아 여행 - 여전히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는 만남 -2

할머니를 보자마자 파란 섀도부터 들어와 소심한 나는 바짝 움츠러들었다. 불편한 마음으로 한 시간 이상을 함께 가야 하는 상황, 불편한 마음을 어찌할 줄 몰라 그저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보았다. 기차가 출발하고 할머니는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멈출 생각도 없었다. 할머니는 혼자 앉은 내가 신기하고 대단해 보였던 모양이다.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알 수 없는 단어와 표정으로 어떻게든 나와 소통하려는 할머니, 난 그런 할머니를 외면할 수 없었다.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할머니는 오로지 이탈리아어, 나는 오로지 콩글리시 영어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할머니는 나와의 대화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 마음이 고마워 전날 시장에서 산 바나나를 드렸다. 그렇게 할머니는 이탈리아어, 나는 콩글리시 영어로 베네치아 전 정거장까지 한 시간 이상 대화를 이어 나갔다. 서로 다른 언어로 말, 손짓, 표정 등 다양한 방법을 써 대화했다는 것이 여전히 신통방통한 일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서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화 하나를 하더라도 엄청난 집중력과 시간이 필요로 하지만 재미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보면서 웃었다. 처음 할머니의 눈 밑의 파란색 섀도가 너무 진하여 무서운 분은 아닐까 봐 선입견을 품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정도 많고, 웃음도 많은 멋쟁이 할머니였다. 그 옆에 나란히 앉은 할아버지를 살뜰히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 할머니는 낯선 이방인이 나도 살뜰히 챙겨줬다.     







기차가 어느 정도 달릴 때쯤, 커피, 비스킷을 파시는 역무원이 우리 쪽을 향하여 수레를 끌고 왔다. 할머니는 나에게 이탈리라어로 뭐라 뭐라 하셨다. 지나고 보니 그것은 ‘커피 안 먹느냐’고 물었던 것이었을 테다. 속으로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왜 자꾸 먹으라고 하는지 부담스러웠다. 솔직히 ‘전 가난한 여행자로 돈을 많이 쓰면 안 돼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영어로 소통도 안 되고, 이탈리라어도 모르는 판국에 정확히 전달할 방법이 없어 포기하고 역무원 아저씨에게 “커피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커피값을 계산하려고 바지에서 돈을 주섬주섬 꺼내려고 하니 할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지에서 커피값을 꺼내려 하고 있는데 할머니 옆에 할아버지가 이내 역무원에게 커피 값을 지불하셨다. 말릴 틈도 없었다. 내가 먹을 커피값만 지급하시고, 정작 할머니, 할아버지는 커피를 드시지 않았다. 미안하게 혼자 커피를 마셨다. 그 후로 우리의 이야기는 지칠 줄도 모르고 계속되었다.      



베네치아역 바로 한 정거장 전에서 내렸는데, 내리기 전 정말 감사하고 또 보고파 질 것 같아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악수도 하고, 꼭 안아드렸다. 할머니는 나를 더 꼭 안아주셨다. 볼에도 인사를 해주셨다. 낯선 도시에서 혼자 여행을 다녀 이따금 외로웠는데 할머니의 따뜻한 품에 안기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중학교 3학년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의 정을 느낄만한 것이 없었는데 그것도 이국땅에서, 할머니의 정을 느낄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파란 눈의 할머니를 보고 처음 선입견에 사로잡혀 무섭게 생각한 내가 바보 같았다. 할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립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사진을 보면서 문뜩문뜩 그때 그 만남을 기억하곤 하다. 따듯한 정을 낯선 나라에서 느낄 수 있게 해준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어 나의 여행이 외롭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비록 언어는 달랐지만, 마음이 통했다고 생각한다. 많은 말을 한다고, 서로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서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서로의 감정을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베네치아로 이동하는 기차역에서 알았다. 비록 언어도 다르고, 외모도 다르고, 세대도 다르지만 보이지 않는 강한 이끌림으로도 충분히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인연이 있다는 것을 기차에서 확인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사람이나 인연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선입견을 품고 바라보면 다른 모습을 볼 수 없다. 내가 할머니의 화장으로 무섭게 생각해 오해했던 것처럼,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데 내가 가진 선입견으로 나에게 다가온 인연을 멀리 쫓아버릴 수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으레 겁먹고 대화를 하지 않았다면 베네치아로 가는 내내 서먹서먹하고 불안 감정으로 옴짝달싹 못 했을 것이고, 이는 베네치아 여행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따라서 우리에게 낯선 것들이 다가오면 두려움과 선입견을 한 귀퉁이로 던져버리고 받아드리는 연습을 하면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행복한 순간을 분명 맞이할 것이고, 그것은 인생을 더욱 아름답고, 풍부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탈리아 마조레 호수, 계획이 틀어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