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빛항아리 Jul 10. 2019

충남여행, 우리의 오월이 찾아오면 거침없이 함께 하리라

중학교 동창들과 충남 개심사, 해미읍성으로

초등·중학교 동창과 연락하는 친구가 거의 없다. 연락하고 있는 중학교 동창은 단 두 명뿐이다. 연락하는 그들과도 자주 연락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몇 년에 한번 만나면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낯설지 않다. 세월의 흐름만 더해갈 뿐, 대화의 흐름은 끊어지지 않는다. 2018년 모처럼 셋이 모였다. 셋이 다 함께 모인 것은 1박으로 여행을 갔다 온 후 꼬박 8년이나 걸렸다. 그 사이 친구 두 명은 아이들을 키우는 일에 여념이 있었고, 이제 아이들도 제법 성장했다. 세월 속에 주름살은 하나 둘 늘어갔지만, 우리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오랜 간만에 만났지만 시간의 흐름과는 달리 어색함이라고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짧은 시간 만나면서 그간 각자의 살아온 삶을 들으며 함께 걱정하고, 함께  웃기며 다시 만난 날을 기약했다. 다들 두 시간 이내의 거리에 살지만 모이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우리는 또 그렇게 만날 것이다. 그때는 또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이어 갈 것이다. 날 것 그대로의 대화를 이어 갈 것이다. 숨기려 하지 않고, 잘 보이려 하지 않고, 십대 시절 만났던 우리의 순수성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소소한 대화들로 아름다운 시간을 보낼 것이다.     




우리가 다녔던 중학교 지역을 벗어나 두 명은 서울, 한 명은 안산에서 살아갔다. 2010년. 함께 여행하기로 했다. 안산에서 만나 안산에 살고 있는 친구 자동차로 여행했다. 처음의 목적지는 강원도로 정했으나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는 결론을 짓고, 서해안으로 출발했다. 서울에 사는 친구가 이란성 쌍둥이 중 아들을 데려와 여행 내내 함께 했다.     



친구 두 명은 서울과 안산으로 일찍 올라와 생활하면서 서해안과 강원도로 여행을 많이 다녔다. 내가 주로 전라도와 경상도로 여행길에 올랐을 때 친구들은 서해와 강원도로 여행을 다녔던 것이다. 그래서 친구들은 서해와 강원도 지역에 대한 정보를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여행을 가는 지역이 조금씩 다를 수 있겠다는 것을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면서 알았다. 내가 오랫동안 살던 지방의 중소도시는 전국에서 지도상으로 중간지점에 위치해 전국 어디든 떠나는데 걸리는 시간들 비슷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가장 먼저 서해안의 해미읍성을 도착해 옛날 조상들이 사용했던 화살 쏘기를 체험하고, 천천히 관광했다. 예전에 다른 친구와 볼 때하고는 또 달랐다. 화살 쏘기와 같이 색다른 경험도 같이 해볼 수 있어 같은 장소에서 다른 사람과 또 다른 여행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늦게 여행을 시작해 우리는 해미읍성만 보고 바로 태안으로 이동했다.      



저녁은 이미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무작정 해미읍성으로 달려와 태안으로 이동할지도 몰랐던 상황이라 별도로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었다. 태안으로 옮겨 펜션들이 있는 쪽을 둘러보다가 먼저 허기를 달래고 축제현장을 구경했다. 축제현장을 둘러본 뒤 바닷가 주변에 저렴한 숙소를 찾아 예약한 뒤 바로 씻고 뻗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친구들이 나를 보며 웃기 시작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더워 몇 번이나 깨며 울었는데 몰랐냐고 신기하게 물어봤다. 친구들 모두 밤새 잠을 설쳤다. 근데 나는 상황도 모르고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콜콜 잠을 잤으니 친구들 입장에서 내가 놀라웠던 모양이다. 아이가 우는 소리 못 들었냐고 몇 번을 되물었지만 나는 전혀 듣지 못했기 때문에 못 들었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잠들기 전에 살짝 뒤척이는 편이나 한번 잠이 들면 천둥·번개가 내리쳐도 잘 듣지 못하고, 비가 세차게 내려도 잘 듣지 못하고 잠을 잔다. 어머니는 그런 날 아침이면, 새벽에 천둥소리를 듣지 못했냐고 종종 물어왔지만 언제나 나의 대답은 듣지 못했다는 말만 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도 나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그런데 이 당시의 나의기억은 오류가 있었다. 최근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하면서 알았다. 친구 아들이 아파서 밤새 울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더워서 그랬다는 것을. 그래서 집에 돌아와 여행기록을 찾아보니 아이가 더워서 잠을 못 자서라는 것이 분명 기록되어 있었다. 어디서부터 나의 기억은 오류가 발생했던 것인가, 언제부터 잘못된 기억으로 자리 잡았는지 기억해 낼 수가 없다. 


     

기억의 오류는 언제나 우리 삶에서 일어난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을 만들고, 생산해낸다. 그래서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에 대해서 자신의 기억이 정확하다는 표현으로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일이었다. 여느 날 다시 이런 여행이 또 찾아올지 모르겠지만 그때도 스스럼없이 함께 웃고, 마시고, 먹으면서 여행하고 싶다.      





다음 날 개심사를 여행했다. 아이를 업고, 개심사를 오르는 친구를 보며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아이를 업는 친구는 작고, 여리다. 나는 나 하나의 몸도 제대로 지탱하지 못하고 산에 벅차게 올라가는 것은 물론 버겁고, 힘에 부치는데 아이를 업는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다는 말인가. 엄마가 되면 모두가 다 그렇게 강해지는가. 신비로운 힘이다. 그것은 연인의 사랑과는 분명 차원이 다른 사랑일 것이다. 그런 사랑의 힘을 아직 발휘할 일이 없어 마냥 놀랍니다.      



개심사를 다 둘러본 후 우리는 다시 안산으로 돌아와 쌈밥을 먹고 헤어졌다. 오월의 하룻밤은 그렇게 흘러갔다. 다시 찾아올 오월의 하룻밤이 기다려진다. 그때는 우리는 어떤 추억을 쌓을까. 마흔 줄에 접어든 우리는 이제 어느덧, 십 대 소녀 시절과 다른 이야기로 채워 나갈 것이다. 셋이 하는 여행은 두렵지 않다. 편안한 친구들과 삶의 희로애락을 나누며 밤을 지새우고 싶은 오월이 찾아오면 나는 그렇게 또 거침없이 그들과 함께 떠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 할망숙소의 할망이 보고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