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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Aug 21. 2019

아쉬움이 많았던 독립출판

부끄러운 결과물이지만 도약의 밑거름이 되리라

Photo by Dariusz Sankowski on Unsplash


십 대 때, 책을 읽은 일은 손에 꼽을만하다. 방과 후 가방을 던져놓고 해 질 녘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초등학교 때 주산학원 한 달, 동네 언니 집에서 피아노와 주산을 다닌 것 외에 뚜렷하게 학원이라는 것을 다닌 기억이 없다. 유치원도 다니지 않았다. 가장 친한 친구가 병설 유치원에서 끝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일은 나의 일과 중 하나였다. 그렇게 책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가난한 살림에 집에 있는 책이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 외에 몇 권의 책뿐이었다. 또래 친구들의 집에 위인전이나 백과사전이 꽂혀있으면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몹시도 부러워했다. 책을 읽을 만한 환경을 갖추지 못한 어린 시절이었다. 그저 산, 들녘, 마을이 나의 놀이터였다. 여름이며 냇가에서 다슬기를 잡고, 친구들과 어울려 개 헤엄치며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놀았고, 겨울이면 비료 부대에 짚을 넣어 눈썰매를 신나게 탔다. 저수지에서 썰매를 타거나 논두렁에서 연을 날리기도 했다. 자연은 나의 놀이터였다. 내게 있어 책을 읽는 시간은 고작 중간고사, 기말고사 때뿐이었다. 그것도 교과목. 그야말로 벼락치기 순간에 책을 만났다.    

  

그렇게 책은 나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어린 시절, 책의 유익함을 전혀 알지 못했다. 스무 살 무렵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도서관을 내 집 들락날락하는 것처럼 찾아가 국내 작가부터 시작해 해외 작가까지 두루두루 책을 읽기 시작했다. 소설책을 읽다가 재밌게 읽히는 책을 찾으면 그 작가의 책을 설렵하려고 노력하며 작가의 정신세계로 파고들었다. 일 년에 읽을 책 권수의 목표를 세우고 책을 인위적이라도 읽으려고 했다. 읽고 난 뒤 책 목록 카드를 만들어 줄거리나 후기를 쓰지를 않더라도 책 제목, 저자 이름을 적어두었다. 책 목록 카드는 지금도 작성하고 있다. 최근 들어 빼먹고 있지만 이렇게 적어두면 가끔 몇 년 전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었는지, 어떤 작가에 꽂혀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렇게 책을 읽다 보니,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대부분 작성한 글은 스트레스를 푸는 배출구였다. 그렇다 보니 어둡고, 부정적인 글로 채워졌다. 어느 순간 ‘아~차다’ 싶었다. 칙칙한 글보다 다채로운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글이 나의 삶을 바꿀 수도 있겠다 싶었다. 생각이 바뀌면서 조금씩 주변을 관찰하고, 경험했던 일을 쓰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죽기 전에 내 이름 석 자가 들어간 책을 출판하고 싶다는 마음이 스며들었다. 마흔쯤. 내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한 자리에 오롯이 새겨졌다.


대학교 때 열심히 써 내려간 과제에 C+라는 충격적인 점수를 접하고 “글 쓰는 재주는 나에게 없구나” 싶었다. 거기에 국어, 영어 즉 언어를 지루하고, 재미없이 여겼던 나이기에 더욱더 글을 잘 못 쓰는 사람이라고 나 스스로 단정했다. 글을 못 쓴다고 생각해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을 선뜻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싶었다. 내가 설령 글을 잘 못 쓴다고 하더라도 엉덩이를 방바닥에 찰싹 붙이고 쓰고 싶었다. 꿈꾸지 말라는 말을 들었어도 나는 내 안에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다.      




Photo by Studio Media on Unsplash


여느 날, 블로그를 보다가 <나만의 책 만들기> 수업에 수강생을 모집하는 글을 봤다. 덜컹 책 만드는 과정이 궁금했고, 그 과정을 통해 미래에 평생 책 한 권이라도 내볼 수 있는 꿈을 실현할 기회가 될 것 같아 망설임없이 수업을 등록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수업을 들으러 갔는데 진짜로 책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부담되었다. 단순히 책 만드는 과정을 알고 싶어 갔는데 책을 만들어야 한다니, 어떡해야 하나 싶었다. 어떤 책을 만들지 미리 염두에 두고 수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겁이 났다.      



어떤 주제로, 어떤 책을 만들어야지. 그것도 4주 만에. 가슴이 무너져 내려앉았다. 다들 뚜렷하게 말을 하는데 주저주저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서 일단 소셜 네트워크에 짧게 올린 단상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모아 짧은 독립출판물을 제작해보기로 했다. 4주라는 시간 동안 혼자 글을 모으고, 편집하고, 책 제목을 정하고, 책 표지를 디자인하고, 인쇄하는 이 일련의 모든 과정을 진행하기에는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다. 그나마 공휴일이 끼어서 수업은 5주에 걸쳐 다행이었다. 여러가지 일을 한꺼번에 혼자 하는 것도 벅찬데 처음 사용하는 프로그램에 실수를 연발했다. 충무로에 인쇄를 맡겨 테스트 결과를 보러 여러 차례 가야만 했다. 시간에 쫓겼다. 혼자 편집까지 하려니 많이 놓쳤다. 그렇게 책을 부랴부랴 완성했고, 동네 책방 입고와 주변에 내 책을 판매했다. 처음으로 내가 글을 쓰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책을 보내고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완성된 책이 보였다. '아뿔싸' 이상한 문맥이 여러 개 보이고, 오탈자도 상당했다. 한글 프로그램에 있는 맞춤법 기능을 믿고, 빨간불이 나오면 빨간 불이 나오지 않게 바꿨는데 그것이 오히려 잘못된 것이었다. 얼굴이 불그레 지고, 창피하고, 책을 산 사람들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처음 만든 나의 독립출판물은 내가 초 자라는 사실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를 통해 첫째, 맞춤법을 조금 더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국어를 잘 못 했던 나이기에 맞춤법은 항상 어렵다. 두 번째는 한 권의 책을 내는 과정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 숭고한 작업이 들어가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책 한 권에 많은 사람의 정성이 깃드는 것도 알았다.  


         

턱없이 부실한 나의 독립출판물을 통해 다음 책을 낸다면 정성을 다해, 처음 혼자 만들 때 느꼈던 부족함을 채우고 싶다. 마음속으로 뇌 되었던 ‘마흔 살 책 한 권 내보고 싶다’는 소원이 그러고 보니 이뤄졌다. 설령 내가 원하는 길이 당장 되지 않더라도 잊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 이뤄진다는 사실을 또 한 번 겪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더 큰 엉뚱한 꿈을 꾼다.


꿈꿔라, 작은 것이라도. 지금 당장 현실에 묶여 못하는 상황이라도 잊지 않는다면 언젠가 그 기회가 내 곁으로 올 때 잡을 수 있다. 그것이 그 꿈을 이뤄줄지 모르는 끈이라도 잡아보니 이뤄지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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