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4 한 장 짜리 - 60살 노인의 소녀 감성
사람들이 군집해 있는 장소나 모임, 수업 등 초면에 낯가림이 심한 나는 봉사를 제외하고 일부러 동호회를 찾아간 기억이 없다. 일대일에 능수능란하지만 일 대 다수로 상황이 바뀌면 꿀 먹은 벙어리가 돼버린다. 회사, 학교 외에 낯선 사람들과 모임에서 더더욱. 주변에 나를 아는 지인들은 이런 나를 놀라워한다. 좀 엉뚱하고 명랑하게 보는 친구들이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런 나의 성향을 알고 있다. 모임에 따라 달라지는 듯하다. 동호회나 글쓰기 모임을 참여하는 것보다 강좌를 듣는 편이 더 심리적 안정감을 주었다. 낯선 사람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몽롱한 정신으로 지하철 아니 지옥철을 타고 매일 출퇴근 하는 길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다. 다행히도 출근길 지옥철에서 자리에 앉아 갈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돌이켜보면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종점에서 출발했기에 승차하자마자 언제든 잠잘 태세를 갖추고 머리를 한껏 뒤로 젖혀 곤히 잠에 빠져들었다. 매일 피곤함에 실신이 되어 사람들이 내리고, 타는 것도 모른 체 그렇게 나는 매일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했다. 신기한 것은 하차 역의 두세 정거장에서 대부분 깼다는 것이다. 가끔은 지나쳐서 다시 방향을 바꿔서 타기도 하지만.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잠이 일찍 깨 핸드폰을 보는데 소설 쓰기 모임이 눈에 띄었다. 소규모 인원으로 모임이 운영되는 것 같았다. 소설은 먼나라 이웃나라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렸던 나는 그날따라 왜 소설 쓰기 모임에 꽂혔을까. 낯선 사람들과 첫 시간의 자기소개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탐탁지 않아하는 나에게 그것을 뛰어넘은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일까.
소설을 읽어봤지,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 소설 이론과 지식이 전무한 나는 며칠을 고민한 끝에 수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첫 모임을 두려워했던 나는 첫 모임에서 그 벽이 허물어졌다.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은 소설 쓰기의 모임에 왔고, 그들의 다양한 생각을 보는 것 또한 큰 모험일 것이라 생각했다.
소설 쓰기의 '소'자도 모르는 나는 과제를 잘못 이해하고 A4 한 장의 짤막한 이야기를 지어냈다. 그것이 소설이라고 혼자 생각하며... 미쳤지 말이다. 쓴 글을 공유한 뒤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고 낯 뜨거워졌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이미 생각하고 있었고, 어느 정도 소설을 쓰기 위해 다양한 강의와 습작을 해왔던 사람들이 좀 있었다. 나처럼은 달랑 A4용지 하나에 이야기가 끝나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매일 이야기들을 올리는데 그다음 날도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글을 올라오고 있었다. 어쩜 사람들은 이야기도 잘 창조해내는 것일까?. 모임을 통해 배울 점이 많아 좋았지만 스스로 쪽팔림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 모임에 참여한 일에 후회는 없다. 모임을 통해 소설을 쓰는 사람들의 열정을 보았고, 언젠가 한번쯤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내게 품어보게 했으니. 하지만 문제는 내 머리가 창의적이지 않다는게 문제이다. 엉뚱한 꿈이라 꾸면 어떤가.
2016년 A4 한 장으로 썼던 이야기 한편을 부끄럽지만 공개해보려 한다.
60살 노인의 소녀 감성
1960년대 10대 소녀의 순수했던 순자는 어느덧 육십이 넘은 노인이 돼 있었다. 고달픈 인생을 사느라 더 이상 자신에게 10대 소녀의 감성은 살아있지 않다고 단언했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에 대해 그 어떤 기대도 실망도 하지 않았다. 순자는 가난한 살림에 자식들을 키우느라 자신도 모르게 늙어버렸고, 세상사의 희로애락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으며, 순수헸던 그녀 자신을 가둬버렸다.
그러나 최근 손녀딸을 보면서 그녀는 문득문득 어릴 적 소녀의 감정을 몽글몽글 튀어나오며, 자신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머금는다.
오늘이 그러했다.
며칠전부터 태풍이 북상하여 전국적으로 비가 퍼부었다. 도로의 전봇대가 힘없이 부러지는가 하면 컨테이너로 된 집은 휴짓조각처럼 가볍게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등 전국적으로 피해가 컸다. 특히 어떤 도시는 도시 전체가 마비되었다는 소식이 연일 보도되었다. 며칠간의 위험천만한 일이 없었던 것처럼, 마치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아침부터 햇살이 쨍쨍 눈부시도록 부셨다.
아침부터 손녀딸 서희는 순자를 조른다.
“할머니, 우리 밖으로 꽃놀이 가요. 응~~? 가자?”
“어제 비가 와서 그냥 집에 있자”
“할머니, 날씨가 너무 좋은데 왜 왜 왜~~”
손녀딸이 보채는 바람에 기억을 상기시켜보니 가까운 공원에서 꽃 축제가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어제저녁 태풍으로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손녀딸과 함께 힘을 내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천천히 걸으면 15분 정도 걸리는 공원에 손녀딸의 손을 잡고 꽃구경갔다.
도착하니 온갖 꽃들 사방팔방 만개해 있었다. 외국에서 자라는 꽃들을 포함해 이름도 모르는 꽃이 공원을 여기저기 ‘나 좀 봐줘’ 하며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수많은 꽃 속에 목화도 있었다. 목화가 있는 터로 가다가 주최 측 한 아주머니가 봉지를 나눠준다. 봉지를 주면서 그녀는 말한다.
“여기 있는 목화 솜을 따가세요. 나눠드리는 봉지에 담아 가세요.”
서희와 봉지를 받아 들고 설마 하는 심정으로 목화밭으로 갔다. 목화밭에 도착하니 이미 여러 명이 목화에서 솜을 채취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순자는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어릴 적 순자의 엄마는 언덕배기 밭에 목화를 심었었다. 그 목화솜을 채취해 이불을 만들어주셨다. 어릴 적 엄마와 함께 목화솜을 따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라 엄마가 그리워졌다. 엄마가 지어준 따뜻한 이불은 그녀에게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목화솜을 손녀 서희와 함께 따는 동안 행복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신이 나 힘껏 목화솜을 땅겨 채취했다. 봉지 한 가득 목화솜을 따고 서희와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녀는 자신에게도 아직 소녀의 감성이 미세하게 살아남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