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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Jan 13. 2021

할아버지를 찾는 사람들

점점 동네 문방구들이 사라진다. 문방구에 삼삼오오 모여 있던 아이들의 모습도 감촉같이 사라져 버렸다. 코로나로 더더욱 볼 수 없다. 안타깝다.      


초등학교 인근에 사는데 주변에 문방구가 단 하나뿐이다. 이 문방구도 재작년 1년 내내 문구점 임대를 걸어놨지만 인수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나 보다. 계속 운영하시는 어르신이 문구점을 운영하신다.    


 

나의 어린 시절 초등학교에는 초등학교 후문을 나와 20m도 채 안 되는 거리에 문구용품은 물론 아이들 간식거리를 파는 문방구가 있었다. 쉬는 시간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냅다 문방구를 달려가 과자를 사거나 미처 가져오지 못했던 준비물을 급하게 샀었다. 그렇게 문방구는 쉬는 시간을 특별하게 만들어준 장소였다.   

   

문어 다리라도 나올까 기대를 품고 조심스럽게 여러 개의 종이 중 하나를 고르기 위해 매의 눈으로 훑었다. 하지만 매번 “꽝”이라는 쓰디쓴 글자를 맞닥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 먹듯 나의 도전은 계속되었다. 고무줄놀이를 위해, 제기차기를 위해, 공기놀이를 위해, 인형 놀이를 위해, 딱지치기를 위해, 구슬치기를 위해 내가 찾았던 그 문방구는 이제 찾아볼 수가 없다. 못내 아쉽다.     




그 시절과는 다르지만 나는 여전히 문방구를 찾는다. 초등학교 인근에 있는 문방구에서보다 거리는 도보로 15분 더 걸리지만, 더 많은 문구용품을 취급하는 문방구를 간다. 거기에 내가 필요한 문구용품들이 있다. 그렇게 지금 나는, 다른 필요에 의해 문방구를 간다. 문방구에 그때와 다른 신기한 문구용품들이 많다. 특히 어린이 용품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스티커, 색연필, 아이들 장난감 등. 싱글이고, 아이를 키우지도 않는데 어린이 용품은 나의 눈을 홀린다. 문방구에 쪼그리고 앉아 스티커를 고른다.   




얼마 전 독서지도사를 공부해볼 겸 무료 교육 사이트에 회원가입하고 교재를 출력했다. 종이 출력물을 보고 공부를 해야 하는 것에 익숙한 탓인지 PDF 파일로 보면서 강의를 듣지 못하겠다.      


15년도   프린터가 이제는 “자기도 힘들다라고 표현하는지 자꾸  장을 프린트한   장이 같이 끌려 들어가 프린터가 멈추길 반복한다.   바가지 걸쭉하게 나온다. 종이  장을 버렸는지 화딱지가 나기 시작했다. 나중에 요령이 생겨 종이를 넣은 곳을 붙여 잡고 조절하면서 100 가까이 출력하니, 온몸의 힘이 빠졌다. 공부  해보려니 프린터가 말을  듣다니. 무생물인 프린터에 짜증을 . 프린터가 무슨 잘못이라고.    





어렵사리 출력물을 가지고 문구점에 제본 맡기러 갔다. 그 문방구는 가족들이 함께 경영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 3대가 걸쳐 일하는 듯하다. 제본을 맡기기 위해 문의를 드렸더니, 손자분이 할아버지를 부른다. 손자가 할 줄 알았던 나의 예상을 뒤엎고, 손자는 할아버지에게로 달려가 제본해 줄 수 있냐고 스케줄을 물어본다. 할아버지의 답변을 듣고 돌아온 손자는 내일 찾으러 오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직접 제본을 하시나 보다.     



그렇게 다음날 문구점을 찾아갔다. 제본보다 일단 문방구에서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 둘러보기로 했는데 어제 성인이 손자보다 더 어린 초등학교 손자가 할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진열을 도와주고 있다. 할아버지에게 일을 어떻게 하는지 계속 묻고 또 묻는다. 할아버지는 친절하게 어린 손자에게 알려준다. 어린 손자는 할아버지 말을 경청한다. 어린 손자는 '자신이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를 할아버지에 거침없이 조잘조잘 말한다.   

   

나도 할아버지에게 내가 찾는 물건을 물어본다. 위치를 알려주신다. 그 길로 가니 정말 찾는 문구용품이 있다.


이래서 다들 할아버지를 찾는가?  

   

사려 했던 문구용품을 집어 들고 제본을 찾기 위해 계산대 갔다.

성인 손자가 다시 멀리에서 일하고 있는 할아버지를 부른다.

“제본한 것 어디에 두셨어요?”

그렇게 할아버지가 답변한 곳을 찾아보더니 제본 책이 나왔다.



그렇게 성인 손자도, 초등학교 손자도, 할머니도, 손님들도 할아버지에게 궁금한 것들을 묻는다. 할아버지는 묻는 것들에 친철히 답변하고, 문방구 이곳저곳을 누비신다.     



80세가 훌쩍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나도 할아버지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이를 먹어도 사람들이 찾는 부담 없고 편안한 사람, 자신이 아는 것을 알려주고 나눠주는 사람, 마지막으로 꾸준히 여든까지도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여전히 일자리, 경제적 불안정에 살고 있지만, 할아버지처럼 경험과 경력이 쌓여  가지 일을 꾸준히 몇십  하고 싶다. 그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훗날 할아버지처럼 나의 모습을 그려본다. 까마득하다. 요즘 가끔 나보다 먼저 인생을 사신 분들은 어떻게 마흔, 오십을 살았을까 싶어 대단생각이 든다.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 나의 것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소유자

그런 할아버지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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