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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Jul 06. 2021

추억의 펜팔친구

20살까지도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잡지책에 예쁜 부분을 잘라 편지지와 봉투를 만들어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렇지 않을 때는 편지지를 사서 글도, 글씨도 잘 못 쓰는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전하고픈 말을 꼭꼭 눌러 썼다. 그 당시 글을 잘 못 써, 편지 쓰는 일은 매우 어렵고 큰 작업이었다.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 같고, 매일 같은 이야기만 도돌이표처럼 돌고 도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말로 다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편지에 담을 수있는 그때가 행복했었다. 굳이 우편을 부치지 않더라도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자주 있었다.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특별하고, 설레는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펜팔 친구를 소개해 줘 오랫동안 경주에 살고 있는 동갑내기 남자아이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 친구으로부터 편지를 받을 때면, 봉투를 뜯기도 전에 설레었다. 동성이 아닌 이성과 나누는 편지여서인지, 편지에 무엇을 썼을까 뜯기도 전에 온갖 상상을 했었다. 그렇게 나와 펜팔을 주고받았던 친구는 나와 생일이 같았다. 다만 그는 양력 생일로, 나는 음력 생일로 생일을 챙긴다는 것이 다를 뿐. 너무 신기했었다. 혹시 인연은 아닐까 착각하기도 했었다. 혼자만의 상상. 그것만으로도 지금은 추억이다.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을 펜팔 친구로 소개해 줬는데, 그 사람이 나와 생년월일이 같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혹여 전생에 이뤄지지 않는 사랑이 다시 만난 것은 아닐까. 암튼 신기한 인연이었다.  


    

그 친구의 이름은 남성적인 이름보다 여성적인 이름에 가까웠다. 처음 편지를 받았을 때 이름을 보고 여자로 착각할 뻔했다. 글씨도 조심성이 보이고, 차분하게 써 내려간 느낌이 여성적인 면이 있었다. 그래서 더 호감이 갔는지 모른다. 어떻게 편지가 끊겼는지 모르지만, 그와의 펜팔은 나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줬다. 그의 편지를 기다릴 때면, 우체국 아저씨의 오토바이 소리에도 귀를 쫑긋 세우고, 우리 집 앞마당으로 오는 소리가 들리면 서둘러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지금은 그렇게 펜팔을 할 수 없다. 더 이상 새로운 낯선 사람과의 아기자기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일도 사라졌다. 나의 메마른 감수성에 그때처럼 잔잔한 감수성을 느낄 수 있는 일이 과연 앞으로 있을까. 앞으로 없을 것 같다. 내겐 더 이상 그런 이성에 대한 인연도 없을 듯하다. 평생 솔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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