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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Jul 06. 2021

익숙해지기까지

이십 대 중반까지도 커피를 단 한 잔도 먹지 못했다. 도서관에서 졸리면 밖으로 바람을 쐬러 나가거나,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먹었다. 혹시 먹으면 졸음이 달아나지 않을까 자판기에서 100원, 200원 넣고 커피를 뽑아 도서관 4층 야외 의자에 앉아 먹어보지만 나의 심장은 콩닥콩닥 방망이질이 심했다. 그렇게 심장을 뛰게 만드는 커피를 난 이십 대 중반까지도 먹지 못했다. 그 당시 요즘 말하는 스타벅스, 탐앤탐스와 같은 커피 프랜차이즈로 로즈버드가 조금씩 생기고 있었는데, 그곳에서도 나는 커피를 주문하지 못했다. 그렇게 커피를 영영 먹지 않고 살 줄 알았다. 그런 내가 지금은 커피믹스를 사랑한다. 하루에 한 잔이라도 먹어야 산다.   


   

커피도 먹지 못하던 나는 커피 회사를 다녔다. 그리고 커피 영업도 했다. 전국에서 그 당시 여성 영업사원은 나 혼자였다. 거래처에서 영업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영업을 해야 했고, 나는 결국 친숙해지기 위해 먹지 못하던 커피를 먹기 시작했다. 하루에 적게는 3개 거래처 많게는 6~7개 거래처를 다녔는데 새로운 거래처를 갈 때마다 마치 처음 마신 것처럼 커피를 먹어야 했다. 어느 순간부터 커피를 먹고 뛰던 나의 심장은 고요해졌다.      



이제는 커피믹스는 내가 좋아하는 기호식품이다. 졸음을 달아나게 하고, 가끔 피곤에 지쳐있을 때 한잔 먹으면 피곤함이 깜짝할 사이 사라지게 하고, 산 정상을 밟은 뒤 먹는 커피의 달달함까지 커피의 행복을 알아버렸다. 그렇게 커피는 이젠 나와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영업할 때 거래처 일부에서는 남자 영업사원으로 바꿔 달라며 나를 문전박대 했지만 나는 그에 굴하지 않고, 그런 거래처를 내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마음먹고, 빈번하게 방문했었다. 그렇게 방문해 으레 커피믹스 한 잔으로 상대방과 대화의 물꼬를 틀었다. 대화를 하면서 거래처를 설득하기도 했고, 설득 당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커피 한 잔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커피에 대한 추억은 나의 삶에 한 부분이 되었다. 커피로 시작된 인연은 여전히 나의 곁에 있고, 이따금 나를 친동생처럼 생각해 주는 선배도 곁에 있다. 나에게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커피가 실어다 준 복을 나도 나눠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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