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빛항아리 Jul 15. 2021

이제야 표현하네요

돌이켜보면 내 곁에 묵묵히 나를 바라봐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몰랐다. 내 곁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힘들 때 주변에 정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다들 나를 가르치려고만 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는 내가 생각하는 타인의 단점을 섣부르게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내가 살아온 생활방식이나 사고를 기반으로 덧 쓰인 고정관념이거나 잘못된 판단일 확률이 높아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친해지면서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내 판단이 잘못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단점이라고 보이는 것에 대해 잘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오히려 잘하는 부분이나 칭찬할 부분을 말하고 산다. 자존감이 낮은 내가 상처를 잘 받는 것처럼, 다른 이 또한 나처럼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 수 있으니 조심하게 된다. 모든 사람이 자존감이 높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사는 사람이라 내가 이러하니, 타인도 이렇게 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러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어릴 적 이름으로 초등학교 내내 놀림을 당했고, 사람들로부터 칭찬보다 단점을 많이 들었으며, 나에게 조언아닌 조언을 해주는 사람을 만나다보니, 꽤 오랜 시간 내 주변에는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지금도 여전히 힘든 삶이 더 나아지지 않았지만 마음 근육은 많이 건강해졌다. 사소한 것에 감사해하며,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차리고 있다.    

  



2006년 교차로에서 사고로 몇 바퀴를 돌았다. 에어백이 터지면서 차가 도는 순간 4~5개 장면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혹시 이대로 죽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나는 살았다. 큰 사고였음에도 2주간의 입원 치료만으로도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한참 복대를 착용해야 했지만, 천만다행이었다. 주변에서도 가족도 하늘이 도운 것이라며 나에게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응급실 이송 후 얼마 지나 기억을 잃었다. 사고 당일, 저녁 잠깐 다시 깨었을 때 내 옆에 누워있던 사고 상대방의 통화내용만 살짝 기억날 뿐(상대방과 같은 병원 응급실 이송은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들었는데, 119에서 나와 상대방을 부부로 착각했나 보다). 사고 당일 그것 외에 다른 기억은 없다. 사고 당일 응급실에서 내가 어떻게 보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음날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는 순간부터 기억날 뿐이다. 사고 일로부터 며칠 후에 현장 조사가 이뤄졌는지 정확한 날을 기억할 수 없지만, 나는 그때 현장 조사를 나갈 몸 상태가 아니었다. 갑자기 누구에게 부탁해야만 했다. 고민하다가 무역인 양성과정에서 알게 된 선배에게 연락했다. 당시 직장을 다니는 선배에게 갑작스럽게 부탁하는 것이라, 나의 급박한 도움에 응해줄지 몰랐다. 그런데 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주겠다며 걱정 말라고 나를 안심시켜줬다. 말할 수 없이 고마웠다.      



혼자 덕유산을 갔다가 대전 버스터미널에서 청주로 가는 막차가 끊겨, 무서움에 떨며 어떻게 가야 하나 발을 동동 구르다가 망설이다 부탁했을 때도 선뜻 달려와 준다고 말해줬던 선배였다. 그때 다른 선배가 먼저 온다는 연락에 선배에게는 오지 말라 했지만, 고민 없이  준다고 했을  고맙고 미안했다. 이렇게 고마운 일이 많았는데도 지금까지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선배는 내가 사고  현장조사 나가 달라는 부탁이나 대전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도움을 요청했을 , 주저하지 않고 도움을 준다고 말했던 선배의 행동에 무척 고마워한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늦었지만 조만간 그때 고마웠다고 말해야겠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내 곁에 있었는데, 나는 진즉에 알지 못했을까. 나는 내 삶이 왜 이리 고단하고, 왜 이리 불행할까에만 초점을 맞추면 살았는지 싶다. 여전히 걱정과 불안을 남들보다 좀 더 자주 안고 사는 기질이라 부정적인 감정이 자주 나타나 나를 힘들게 하지만, 그와 반대로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글을 쓰면서 하나 둘 기억해 내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후원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