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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Jul 25. 2021

입원과 수술

작년 9월 말 엄마는 미세혈관감압술이라는 수술을 받았다. 병명을 찾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치아 통증이 일차적으로 와, 혹시 전년도에 치과 치료에 문제가 생긴 줄 알고, 치료했던 치과로 갔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대학병원이며, 다른 치과도 가 엑스레이를 몇 차례 찍었지만 모두 염증 소견이 없다는 결론이었다. 근데 어느 치과도 삼차 신경통이 의심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치과의사도 잘 알지 못하는 병인 듯했다.  

    

엄마의 통증은 치아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점점 인중까지 넓어졌고, 통증 간격도 점점 짧아졌다. 결국 이마부터 눈 밑까지 전기가 찌릿찌릿 오는 통증 나타났고, 그로 인해 얼굴을 찌푸리는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는 고통 속에 살았다. 삼차신경통이라는 것이 겉으로 알 수 없어, 가족인 나도 엄마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저 ‘조금만 더 참아봐’라는 말만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말들이 엄마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었을까 싶어 미안하다.     


몇 번이나 치과를 전전하다가 한방치료는 혹시 될까 싶어 한 달을 다녔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런데 한의사가 머리 신경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치료해보고 호전이 안 되면, 신경과를 가보라고 했다. 그 한의사의 말이 도움이 되었다.      



차도가 없자, 나는 그간 있었던 엄마의 증상을 인터넷으로 샅샅이 뒤졌다. 그랬더니 엄마의 증상과 거의 흡사한 병명을 찾았다. 삼차신경통이었다. 삼차신경통의 원인 중 대상포진일 수도 있다는 문장에 가슴을 후벼 팠다. 대상포진에 걸려 치료받은 적이 있는데, 당시 삶의 무게와 경제적인 걱정과 불안으로 한동안 엄마랑 다툰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병에 걸린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자꾸 들었다. 그렇게 병명을 찾고 부랴부랴 병원을 수소문해 병원 예약을 했다.      


인터넷 쇼핑몰 운영과 아르바이트로 시간을 낼 수 없었던 나는 큰 오빠에게 부탁했다. 아니길 바랐지만 내가 생각했던 삼차신경통 진단명이 내려졌다. 대상포진 때문에 그렇지 않냐고 물어보라고 했는데,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혹시 나 때문에 병이 왔나 싶어 미안했다. MRI인지 MRA인지 촬영 후 의사는 수술을 권했다. 수술이 아니길 바랬다. 결국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미 일곱 번 수술 경험이 있는 엄마지만 많이 무서워했고, 나도 무서웠다. 수술을 한 번도 안 한 나도 무서운데, 엄마는 얼마나 무서울까 싶어 마음이 안쓰러웠다. 뇌 수술이라 엄마도 나도 수술 전에 여러 번 악몽을 꿨다. 어쨌거나 몇 번의 고심 끝에 2020년 9월 말 수술하기로 했다. 그렇게 또다시 엄마는 병원에 입원했다.      


수술 후 동맥뿐만 아니라 예상하지 못했던 정맥도 눌려 있다면서, 동맥에 눌려 있던 부분은 수술 경과가 좋겠지만, 정맥에 눌러 있던 부분은 10명 중 7명이 예후가 좋지 않다며, 수술의사의 말에 걱정이 앞섰다. 더는 고통이 없기를 바라며 한 수술인데, 예후가 안 좋을 수 있다는 말에 좌절했다. 그러나 좌절할 여유가 없었다. 엄마가 마취에서 깨어나며 고통을 호소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이젠 9월이면 일 년이 다 되어 가지만,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돼 버렸다. 동맥에 붙어 있던 증상은 수술 후 한 번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정맥 부분은 수술 후 3개월부터 다시 통증이 시작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통증이 있다. 그래서 약을 꾸준히 복용 중이다.      


그렇게 삼차신경통은 엄청 무서운 병이다.      


(삼차신경통과 함께 살아가기, 김하진 지음)     

“삼차신경통은 뇌신경통증 중에서 가장 흔하지만, 유병률 자체는 10만 명 당 15~16건 정도로 드문 질환이다.”     
“우리 같은 환자가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를 접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처음에 인터넷 조사를 시작했을 때, 거의 자료가 없던 시절이다보니 영어로 ‘trigeminal neuralgia’ 즉 삼차신경을 검색하니 위키피디아의 설명이 제일 먼저 나왔다. 나는 15년 전에 본 그 문장 하나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Most painful known to humanity(인류에게 알려진 가장 큰 통증)“ - 정확하게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 외에도 통증의 왕, 출산보다 더한 고통, 자살률 1위 등등 이 병을 묘사하는 단어들은 한마디로 무시무시했다.”               


옆에 보호자도 그 고통을 알 수 없다. 얼굴 보고, 고통 정도를 판단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매일 통증 정도를 묻고 체크하고, 새로운 통증을 상세히 엑셀 자료로 차곡차곡 기록해두는 일이다. 이 기록지는 정기검진이 있을 때 의사에게 보여주거나, 그것을 토대로 엄마의 상태를 상세히 설명한다. 두 번째는 통증이 심할 때는 과일 갈아둬 엄마가 편히 먹을 수 있게 도와준다. 세 번 째는 환우 카페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고통을 이겨내고 있는지, 엄마와 증상이 비슷한 사람은 어떤 통증이 있는지를 찾아 이따금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현재 15년 동안 삼차신경통을 겪고 있는 분이 쓴 책을 구매해 읽고 있다. 일반 서점에 판매하는 삼차신경통 책은 이 책이 처음일 것이다. 삼차신경통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다. 그래서 그분의 책이 나에게 생명수다. 근데 요즘 혼자 바쁘다는 핑계로 읽지 못하고 있다. 조만간 집중해 나머지를 부분을 다 읽고 엄마에게 알려줄 예정이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당시 일부러 추석을 끼고, 수술 일정을 잡았다. 그렇게 지난해 12일간 나는 간병인 한번 쓰지 않고 엄마를 돌봤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고, 내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잘 입원하고 잘 퇴원했다. 우려했던 일은 현실로 일어나지 않았다. 인터넷 쇼핑몰이 잘 안돼 3년 내내 투잡 하는 상황이라, 당시 아르바이트하는 관공서에서 혹시 휴가를 안 내주면 어떡하지 걱정을 많이 했지만, 다행히도 이틀이나 휴가 낼 수 있도록 허락해줬다. 거기에 큰오빠도 하루 휴가 내 낮에 있어 준 덕분에 12일간의 밤을 엄마 옆에서 잘 간호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몇 건 없는 인터넷 쇼핑몰 주문 건의 발송 택배도 수술 전 미리 택배사에서 마감하는 바람에 큰 문제없이 지날갈 수 있었다. 그렇게 분주했던 2020년 9월과 10월도 이젠 일 년이 다 되어간다. 퇴원 후 정작 내가 '담'이 와 3개월 이상 고생했지만 어쨌거나 그 시간도 지나갔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갔고, 앞으로도 그렇게 시간은 흘러갈 것이다.           




금주 토요일, 엄마의 안과 정기검진에서 망막과 녹내장이 잘 유지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고, 근 5년 만에 3개월 정기검진이 아니라 4개월 정기검진으로 바뀌었고, 엊그제 신경과도 3개월 정기검진이 4개월로 바뀌었다. 오늘 하루 그래서 행복하다. 췌장은 훨씬 전에 6개월 정기검진에서 1년으로 바뀌었다. 일 년 전보다 많이 나아진 상황에 감사하다.


엄마의 상황이 조금 나아진 것처럼 내 상황도 분명 나아질 것이다. 투잡으로 3년을 힘들게 보내고도 수입이 없어, 3년 내내 한달살이 인생으로 살았지만, 그간 입고시키고 남아 있는 재고를 어느 정도 정리하면, 그나마 몇 푼은 손에 넣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버티며 붙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으려니 마음은 편안하다.


다시 새로운 길을 찾는 일 쉽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하지만,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라 믿고 싶다. 서른아홉 살 사분기쯤 회사를 나와, 다시 생계를 위해 취업을 시도했지만 잘 안 되었다. 그래서 결국 자영업을 시작했지만, 그것 역시도 실패했다. 나는 참 실패가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이 힘들 때가 많다. 그럼에도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다. 내가 가장이니까.


나는 지금 인터넷 쇼핑몰을 정리 중이며, 이와 더불어 취업전선에 뛰어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마흔이 넘는 나를 누가 써줄까 싶지만 그래도 지금보다 나아지리라고 생각한다. 성실하게 산다고 꼭 보상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성과가 너무 없어 맥 빠지기 일쑤였다. 나는 왜 이런 고통 속에서 십 년을 넘게 보내야지라며 투덜거리지만 아무리 외쳐봐야 소용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3년 동안 창피하게 살지 않았다고 자신한다. 그러니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나 스스로 나를 잘 깍아내리는데 자꾸 그렇게 하다 보며 하염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한순간이고, 나중에는 헤어 나올 수 조차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니 이젠 되도록 그러지 말아야겠다.     


앞으로 엄마가 지금 겪고 있는 삼차신경통이 완치돼 병원에서 치료받는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지금의 주치의에게서 잘 치료받아 조금 덜 고통스러워하며 건강하게 사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취업이 잘 안돼, 자영업을 시작했지만, 그것마저 실패해 많이 위축되었음에도 인생을 놔버리지 않고, 다시 취업전선으로 뛰어들어가려는 나를 칭찬해주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며, 더불어 더 나빠지지 않으리라는 믿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나에게 매일 건강한 주문 넣고 살기를 바란다. 그렇게라도 해야 살 것 같고, 그렇게라도 해야 변화된 삶을 살 것 같다. 오뚝이처럼 일어서자. 그게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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