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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Aug 28. 2022

끓인 물 맛이 다르다.

볼일 보러 나가다가 잡곡을 파는 할아버지가 오래간만에 오신 것을 봤다. 주말에 쉬는 자동차 정비소의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참기름, 들기름, 찹쌀, 보리, 옥수수, 메밀 등 다양한 잡곡을 파는 할아버지이다. 토요일에 아주 가끔 내가 사는 동네로 오신다. 얼마 만에 오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토요일 자동차 정비소가 닫았을 때 오신다는 것을 알 뿐이다.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할아버지가 늘어놓은 잡곡들중 유독 옥수수에 눈독을 들였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옥수수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볼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 주저 없이 옥수수가 담겨있는 위치로 가서 서 있었다. 할아버지는 먼저 오신 손님에게 물건을 팔고 있었다. 판매를 다 끝마치고, 내가 있는 위치로 오셨다. 1되만 사려 했던 나는 할아버지의 설득으로 옥수수 2되, 보리 1되를 샀다. 


마트에서 구매한 옥수수가 맛이 없다고 혹시 지금 사는 옥수수도 역시 맛이 없을 것 같아 걱정하니,


"마트에 있는 것은 볶은 지 오래된 것이고, 이것은 갓 볶아온 옥수수이니 걱정하지 말고 사가"

라고 하시며, 그 자리에서 먹어보라 하신다. 


그러나 옥수수를 그 자리에서 먹지 않았다. 잘못 먹다가 이가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소심한 나의 마음 탓이었다. 


할아버지의 자부심으로 나는 옥수수만 사려던 당초의 계획을 바꿔 보리까지 함께 구매했다. 할아버지의 추천으로 옥수수와 보리를 함께 끓였더니, 맛이 구수하다. 한 번도 보리면 보리고, 옥수수면 옥수수였지, 그 둘을 조합해 끓여 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나름 괜찮다. 슈퍼마켓에서 구매한 옥수수는 끝 맛이 찜찜하고 이상한 맛이 났는데, 할아버지에게 구매한 옥수수와 보리를 끓인 물은 뒷맛이 깔끔하다. 할아버지 말을 듣기를 잘했다.


옥수수를 튀길 때 '뻥이요'하면 옆에서 귀를 막고 옥수수가 강냉이가 되는 장면을 보던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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