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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Sep 20. 2022

불면증 달갑지 않다

작년 20일 정도를 하루에 두 시간 정도 잤는데 이 두 시간도 두 시간을 오롯이 잔 것이 아니었다. 사람 몰골이 이상해지기 시작했고, 예민해지고, 극도로 신경질을 내기 시작했다. 잠이 얼마나 건강을 위해서 중요한지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약국에서 수면유도제를 구매해 먹어도 잠이 안 오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밤에 잠을 못 자니, 눈도 퀭해지고, 성질도 더러워졌다. 결국 편안하게 다니는 한의원에 갔다. 한의원에 가 보디체크하고, 진맥을 본 뒤 한의사 선생님이 말하기를 약국의 수면유도제 말고, 병원 가서 불면증 처방받으라고 권한다.     


몇 년을 지켜봐 온 분이라 신뢰가 가고 편하다. 내가 혼자 사자를 마주하고 있는 상황인데 잠이 오겠냐며, 무슨 걱정거리가 많냐고 걱정해주셨다. 한의원을 다녀온 뒤로도 이런저런 불면증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해소가 안 돼 결국 병원을 찾았다. 


간헐적으로 한 번씩 새벽 네 시나 다섯 시에 잠이 드는 것을 제외하면 평소에는 잠을 자는 편이다. 한번 자면 거센 빗소리도, 천둥소리도 듣지 못하고 잠을 자 엄마가 놀라기도 여러 번이다. 어릴 적부터 그래 왔다. 스트레스가 심할 때 잠을 못 자는 경우가 있었어도 20일 가까이 잠을 못 잔 것은 내 인생에 작년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올봄에도 또다시 불면증이 찾아왔다. 바로 병원으로 갔다.     


십 년을 열심히 살아도 삶은 한 치 앞도 나가지 못하고, 더 불안한 상태가 되고, 뒤처지고 있으니 걱정 안 될 수밖에 없다. 많은 시간 버텨 왔다. 결국 몸이 고장 난 것이다. 내 의지로는 잠을 청할 수 없어 병원을 찾았고, 상담 끝에 선생님은 나의 경우는 경제적인 부분이 해결되면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라 말씀하셨다.     


세상일이라는 게 열심히 산다고 공평한 결과를 주지 않는 것을 알지만 꽤 오랜 시간이 계속되니 지쳤는지도 모른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몇 년을 보내니, 내 인생에 더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으로 굳어지면서, 인생이 풀리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과 나의 미래는 첩첩산중이라는 생각에 검은색 물감이 온몸을 뒤엎었다. 그리고 나의 정신까지도.     


올봄 불청객이 다시 찾아왔다. 나 아니면 그 누가 나의 밥벌이를 해준다는 말인가 나도 때론 누군가에게 단 몇 달이라도 기대고 싶다. 그러나 내 인생에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경제적 독립을 일찍 했고, 지금도 여전히 혼자 모든 결정을 스스로 하며, 누구에게 의지를 안 한다. 때론 그 모든 것이 지치고, 놓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밥 한 끼나 대화할 누군가가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약을 처방받아먹고 자면 푹 잠을 잘 수 있었다. 행복했다. 잠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그러나 약이 8시간 지속되는 것 같다. 8시간 이하로 잠을 자다가 일어나면 약간 몽롱해지는 기분이었다. 혹여 약에 중독될까 봐 며칠을 먹지 않고 자려했다. 하지만 그러면 잠을 새벽녘까지 자지 못하고 깨어있어야만 했다.    

 

원래 진료 가는 날보다 늦게 병원에 가면 원래 날짜보다 왜 늦게 왔냐고 물으셨고, 나는 나의 의지대로 자보려고 했다고 말을 했었다. 내가 왜 그러는지를 이미 선생님은 알고 있었다. 선생님은 내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되면 뇌가 헷갈리니 처방한 대로 당분간은 꾸준히 복용하라고 말했다. 중독될 정도 용량이 아니니 걱정말라며 몇 번을 강조했었다. 경제적 상황과 미래의 불안만 어느 정도 해결되면 불면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라며, 약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작년, 올해 각 4개월씩 약을 먹었다.     


지금은 그나마 매달 적은 급여라도 받고 있어서인지 잠을 잘 잔다. 선생님 말씀이 맞았다. 경제적인 문제로부터 약간 벗어나니, 잠을 잘 잔다.      


그런데 어제는 갑자기 밤에 모기에 물리는 바람에 자다가 깼다. 모기약을 바르고 누우려니 여러 걱정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기간이 정해져 있는 계약직이다. 계약기간 만료 후 어떤 일을 해야 하지라는 걱정들이 몰려오면서 다시 잠을 자는 데 방해되겠구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남아있는 불면증 약을 먹었다. 잠을 자지 못할 때는 오히려 불면증 약을 먹고 자는 것이 나에게 더 좋은 선택인 것 같다.


젊은 시절처럼 밤을 새워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안 된다. 잠을 자야 다음날을 무리 없이 생활할 수 있다. 잠을 잘 수 있는 것은 복이다. 그 복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스트레스도 덜 받고, 운동하고 커피를 줄여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런데도 해야 한다. 작년, 올해 밤잠을 설치면서 잠을 못 자는 괴로움이 얼마나 큰지 알았으니까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불안을 낮춰주는 약 광고가 미디어를 통해 나오는 것을 보니 나처럼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코로나19 이후로 많아졌나 보다. 옛날에 전혀 나오지 않았던 약 광고이다.      


우리는 옛날보다 살기 좋아졌으나 물질적, 정신적으로 피 튀기는 경쟁 속에 살고 있다. 약육강식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다 같이 못살던 시절의 이웃 간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이젠 많은 사람이 각개전투로 세상과 맞서며 살고 있다. 그 속에서 강자는 더욱 약자를 배척하고 강탈하며 잔혹해지고 있다. 자본주의 끝에 와 있다. 자본주의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나타나 많은 사람이 불안해하지 않고 살아가는 세상이 왔으면 한다. 인생이 행복보다 고통의 순간이 많지만, 그 고통의 순간이 지금처럼 많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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