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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되는 삶을 위한 다섯 번의 연습

일상적 친절로 시작하는 긍정관계와 웰빙

by 명랑세린
이번 주, 누구와 연결되셨나요?
가정의 달 5월, 연휴가 지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이 시기.
누군가는 오랜만에 가족과 시간을 보냈을 테고,
누군가는 혼자만의 조용한 여운을 즐겼을지도 모르겠네요.

바쁘고 빠르게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도
잠시, 감정과 생각의 물결을 가라앉히고
지금 나와 연결된 사람을 떠올려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웰빙 코칭, 아홉 번째 시작합니다.


엘리사와 나

작년 9월, 헬스장에 등록했습니다. 노르웨이에 와서 일은 안 하고 공부와 먹기만 하고 있으니 활동량은 줄고, 살이 많이 쪄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거든요. 한국에서도 헬스장은 늘 어색했던 저라 외국에서, 그것도 노르웨이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헬스장에서는 다양한 그룹 운동 수업을 제공했습니다. 그중 월요일과 수요일 필라테스 수업이 저와 잘 맞았어요. 운동할 때 틀어주는 배경 음악도 좋고, 동작도 살짝 힘들면서도 큰 무리는 없고, 무엇보다 강사인 엘리사 덕분이었죠.



세린, 이 동작, 정말 잘하고 있어요!

엘리사는 건강하고 활기찬 중년 여성입니다. 노르웨이어로 수업을 진행하지만, 저와는 영어로 대화해 줘요.

"오늘 동작, 정말 잘했어요."

"어제 러닝 수업은 왜 안 왔어요?"
"인스타에서 봤는데, 무슨 공부하세요?"

그녀의 말은 과하지 않고, 그렇다고 무심하지도 않습니다. 언어는 다르지만, ‘당신에게 관심 있어요’라는 마음이 매번 전해졌죠.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 길엔 몸이 개운해졌다는 느낌보다 엘리사와 나눈 ‘긍정적인 울림(Positive resonance)*’이 제 기분을 더 많이 바꿔놓곤 했어요.



세린은 내 한국인 친구예요

올해 1월, 헬스장 주최 갈라 파티가 열렸습니다.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즐거운 행사였죠. 엘리사는 저를 여러 사람에게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쪽은 내 한국 친구예요.” 그 순간, 엘리사와 연결된 그 느낌이 정말 좋았습니다. ‘나는 누군가의 마음 안에 자리한 존재구나.’ 그건 단순한 인사 이상의 연결이었어요. 깊은 대화를 길게 나눈 것도, 오래 알고 지낸 것도 아니었지만, 그녀와 나눈 매주 두 번의 작은 교류는 저와 그녀 안에 잔잔한 파장을 남겼습니다.



관계는 그렇게, 스며들듯 시작되죠.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은 『플로리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감정적으로 말하자면, 벌집의 생명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리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자 하는 존재들이다.”


관계는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전략이었습니다. 인간의 뇌는 도구를 만들기 이전에,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화했죠. 우리가 누군가를 웃게 하려고 말투를 조심하고, 상처 주지 않으면서 내 뜻을 전하려 애쓰는 일상의 노력들. 그 모든 건, 사회적 유대가 인간의 본능이자 선택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웰빙의 다섯 가지 요소 PERMA에서 R은 바로 '관계(Relationship)'에 관한 겁니다. 특히 긍정적 관계(Positive relationship) 말입니다. 사실, 관계가 행복에 얼마나 중요한지, 굳이 심리학자의 연구를 인용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긍정적 관계는 그렇게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작고 꾸준한 친절, 관심, 그리고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들에서 시작됩니다. "고맙다"는 말, "잘 지냈어요?"라는 인사, 눈을 맞추며 진심으로 들어주는 5분, 아무런 대가 없이 내민 도움의 손길.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모이면, 관계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에서 ‘연결되는 것’으로 바뀌게 되죠.



관계에서 웰빙을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얼마 전, 스웨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정말 강렬한 냄새로 유명한 청어 통조림(그 방귀 냄새나는 거! 수르스트뢰밍 Surströmming)을 발견했죠. 그 순간 남편이 말했습니다. “이거, 예전에 네 친구가 노르웨이에 파는지 물어본 적 있었잖아. 기억나?” 맞습니다. 1년이 훌쩍 지난 이야기지만, 그 순간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그때는 노르웨이에는 없어서 사다 주지 못했는데, 이렇게 여행지에서 우연히 마주친 청어와 남편의 기억 덕분에 저는 친구의 작은 바람을 다시 꺼내어 들어줄 수 있었습니다. 통조림을 사서, 친구가 알려준 주소로 택배를 보내는 과정은 뿌듯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친구는 여행 중에 번거로운 일을 하게 해서 미안하다며 고마워했지만, 저는… 이상하게도, 번거롭다기보다는 기뻤습니다. 이건 단순히 부탁을 들어준 것이 아니라, 친구와 나 사이의 연결을 다시 한번 튼튼하게 이어준 행동처럼 느껴졌거든요.



관계의 언어: 친절, 그리고 ‘다섯 번의 친절’이 만들어내는 행복

심리학자 류보머스키(Lyubomirsky) 등의 연구에 따르면, 하루에 다섯 번, 작고 의도적인 친절을 실천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행복감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의도적이고 신선한 행동이 우리 기분을 가장 강하게 끌어올린다.” — Lyubomirsky et al., 2005


흥미롭게도, 그 친절은 반드시 거창하거나 친밀한 대상에게 향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판단 없이 들어주는 일, 문득 떠오른 이름에 안부를 묻는 일, 엘리베이터 버튼을 대신 눌러주는 행동, 누군가의 프로젝트에 응원의 댓글을 남기는 일처럼, 일상의 틈에서 실현되는 작은 행동들이 그 자체로 관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반복되는 친절보다 ‘의도적이고 다양한’ 친절이 더 큰 정서적 이득을 준다는 점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같은 방식의 행동을 반복하는 것보다 매번 다른 방식으로 실천할 때, 그 친절이 주는 행복감이 더 오래 지속된다고 합니다. 관계의 깊이보다 중요한 건, 연결의 ‘신선도’ 일지도 모릅니다.



코치가 권하는 시간: 오늘, 관계를 돌아보며

요즘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지만,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던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그 사람을 다시 ‘처음 만난 날’처럼 바라본다면, 어떤 점이 새롭게 보일까요?

내가 누군가에게 베푼 친절 중,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어떤 순간일까? 그 안엔 어떤 나다운 가치가 담겨 있었을까?

가장 외롭다고 느꼈던 관계의 순간을 떠올려보세요.
그때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한 마디, 혹은 따뜻한 행동은 무엇이었나요? 지금 그 말을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다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연결되는 삶을 위한 다섯 번의 연습

관계란 꼭 오래 알고 지낸 사람, 깊이 나눈 이야기 속에서만 피어나는 건 아닙니다. 엘리사처럼, 처음 만난 사람과 나눈 다정한 인사 한 마디에도, 스웨덴에서 우연히 마주친 청어 통조림처럼 오래된 기억을 다시 꺼내는 행동 안에도, 그 사람과 나 사이를 이어주는 작고 선명한 연결의 힘이 숨어 있습니다. 이런 순간 우리는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 임을 알아차리고, 서로의 울림이 겹치는 순간, 몸과 마음이 동시에 반응하는 긍정적 공명을 경험하게 되죠.


PERMA에서 말하는 웰빙의 다섯 요소 중 관계는 때로 긍정 정서(P)처럼 따뜻하고, 몰입(E)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며, 의미(M)와 성취(A)를 견고하게 떠받칩니다. 하지만 그 출발은 아주 작고 구체적인 행동에서 시작되고요. 관계는 감정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에서 살아납니다.


이번 주, 여러분 안의 친절이 누구에게 닿을 수 있을지, 그 친절이 어떤 연결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다섯 번의 작고 의도적인 행동으로 조용히 실험해 보는 건 어떨까요? 웰빙은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가 서로를 기억하고, 부드럽게 연결될 때, 삶은 아주 조금, 그러나 분명히 달라질 겁니다.




+긍정울림 개념 설명

긍정울림(Positive resonance)는 심리학자 바버라 프레드릭슨(Barbara Fredrickson)이 정의한 개념으로, _두 사람이 순간적으로 공유하는 긍정적인 감정, 생리적 동기화, 그리고 상호 돌봄의 의도가 함께 나타나는 상태_를 말합니다. 단순한 기분 좋은 감정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마음과 몸이 일시적으로 조화되는 감정적 공명(emotional synchrony)의 경험이죠. 프레드릭슨은 이를 사랑의 핵심 조건이자, 일시적이지만 반복 가능한 심리적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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