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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잊는 마법

몰입의 심리학적 특성

by 명랑세린
오늘 하루, 어떤 기분으로 지내셨나요?

바쁘고 빠르게 흐르는 하루 속에서도
잠시, 감정과 생각의 물결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웰빙 코칭, 여덟 번째 시작합니다.


책상 앞에서 흐른 4월

최근 저는 대학원 2학기를 마무리했습니다. 4월 30일, 두 과목의 기말 과제를 제출하면서 정신없이 달려온 한 달을 끝냈죠. 평일 내내 책상 앞에 앉아 자료를 찾고, 참고할 논문을 정하고, 읽고, 구조를 잡고, 초안을 쓰고, 고치고, 또 고치고… 말 그대로 하루하루가 과제와 함께 흘러갔습니다. 저는 전일제(Full-time student) 학생이라 수업을 두 개 듣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긍정심리 컨설팅과 트레이닝’이라는 과목이었습니다. 이 과목의 과제는 기업 사례를 분석하고 이론과 전략을 적용해 제안서를 쓰는 거였어요. 진단부터 평가 계획, 개입안 설계, 마지막 발표까지 총 6000 단어. 한마디로, 실전 컨설팅을 해본 셈이었죠. 도움이 많이 되는 과목이었는데, 과제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 런. 데.



시간이 사라지는 작업

이 과제의 마지막 단계였던 ‘발표 자료 제작’ 과정에서, 오랜만에 뿌듯한 경험을 했습니다. 앞서 작성한 제안서 내용(약 5500 단어)을 단 다섯 장의 슬라이드로 요약해 핵심만 담아 시각적으로 정리하고, 발표 스크립트까지 써야 했는데요. 실제로 고객사 앞에서 경쟁 PT를 한다는 마음으로 임했죠. 이 다섯 장을 만드는 데 꼬박 3일이 걸렸습니다. 아침 8시에 책상에 앉으면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고, 도서관 문이 열리면 부랴부랴 달려가 자리를 잡은 뒤, 하루 종일 ‘어떻게 하면 이 제안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흐름을 다듬고, 이미지를 고르고, 도표를 만들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과제에서 다른 파트를 쓸 땐, 오후엔 꼭 달달한 커피를 마셔줘야 하고, 집중력을 유지하려고 ‘포모도로 기법’(25분 집중하고 5분 쉬는 방식)을 쓰기도 하고, 중간중간 스트레칭도 하면서 애를 썼는데요, 이 3일 동안은 그런 루틴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시간 감각도 흐려진 채, 만들고 또 만들고, 그 과정 안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마지막 날엔 목디스크 통증이 아니었다면 정말 도서관 의자에 그대로 굳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하하



익숙한 몰입의 기억

3일이 지나고 내가 왜 이렇게 시간 가는 줄 몰랐을까.. 생각해 보니, 강사로 일할 때가 떠올랐습니다. 새 강의안을 만들 때도 꼭 그 3일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트북과 한 몸이 되어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이미지나 영상을 끝없이 찾곤 했습니다. 사실 저는 발표 자료를 잘 만드는 사람은 아닙니다. 강사 커뮤니티에서 오래 활동하다 보니, 발표 자료에 센스와 재능이 있는 분들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강의안을 만들 때마다 늘 푹 빠지곤 합니다. 결과가 좋든 그렇지 않든, 어느새 시간이 사라지고, 저 자신마저 잊어버리는 그런 순간들이 지난 10년 동안 자주 찾아왔었습니다.


누군가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순간이 언제였나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늘 이 대답부터 꺼냅니다. “강의안을 만들 때요. 그리고 강의할 때요.” 모든 것을 다 쏟아낸 듯한 몰입의 끝에, 조용히 따라오는 한 생각이 있습니다. ‘아, 내가 살아 있었구나.'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마음이 두근거립니다. 언젠가 다시 강의를 준비하고 마주하게 된다면, 또 한 번 ‘살아 있음’을 깊이 느끼는 순간을 다시 만날 수 있겠죠?



PERMA에서 E(Engagement): 몰입

많은 사람들이 웰빙을 ‘기분이 좋은 상태’로만 생각하곤 하지만, PERMA의 두 번째 요소인 E(Engagement), 즉 ‘몰입’은 그와는 결이 다릅니다. 몰입은 기분이 좋은지를 따질 겨를도 없이, 시간이 흐르는 걸 잊고, 자의식도 사라진 채, 한 가지 활동에 완전히 빠져 있는 상태를 말하죠. 이전 글에서 다뤘던 긍정 정서(Positive Emotion)를 떠올려 보면 차이는 더 분명해집니다. 긍정 정서는 우리가 실시간으로 느끼는 평온함이나 즐거움에 가깝다면, 몰입 그 순간에는 감정도 생각도 희미하지만, 지나고 나서야 “정말 좋았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마음에 깊이 각인되는 경험입니다.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만족감, 바로 그것이 몰입의 본질이죠.



몰입하는 순간을 알아차리는 방법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활동을 할 때 쉽게 몰입하는지,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요? 몰입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몇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게 도움이 됩니다.

시간이 멈춘 듯 느껴졌던 순간이 있었나요?

과제나 일, 공부를 하다 어느새 밤이 되었던 적은요?

그 순간,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던 때였나요?

이런 질문에 떠오르는 장면이나 경험이 있다면, 여러분은 분명 몰입을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때야말로, 여러분이 가장 ‘살아 있는 나’를 만났던 순간일지도 모르고요.



몰입은 강점이 이끄는 흐름

몰입은 아무 일에서나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전 글들에서 소개한 것처럼, 자신의 강점이 드러나는 활동일수록 우리는 몰입하기 쉬워집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창의성이 발휘되는 시간에 몰입하고, 또 누군가는 사려 깊은 조언을 건넬 때 몰입할 수 있습니다. 초기 PERMA 이론에서 셀리그만은 몰입을 ‘강점이 최대치로 작동할 때 발생하는 경험’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웰빙 이론에서는 강점들이 몰입뿐 아니라, 긍정 정서, 관계, 의미, 성취 모두를 지지하는 근간이 된다고 하고요. 강점,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죠? → [강점 글 다시 읽기 https://brunch.co.kr/@sharingserin/38 ]



코치로서 권하는 질문

여러분은 언제, 시간 가는 줄 모르시나요?

그 순간, 여러분 안에서 어떤 강점이 작동하고 있었을까요?


몰입은 ‘잘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상태로 머무는 방식’ 일지도 모릅니다. 이번 한 주, 시간도 잊고, 자의식도 잊을 만큼 몰입할 수 있는 활동을 의도적으로 한 번 해보는 건 어떨까요?



+ 이 글은 마틴 셀리그만의 『플로리시(Flourish)』에서 제안된 PERMA 모델을 참고해 썼습니다. 웰빙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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