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에서 사랑을

<빌어먹을 세상따위>

by 배석준

‘시즌 1’만한 ‘시즌 2’없다. 보통 영화계, 드라마계에서 많이 사용되는 문구인데, 일반적으로는 시즌 1까지만 기획해두었다가 생각보다 영화가 흥하자 시즌 2까지 제작되는 경우에 나타난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조금 다르다. 시즌 1에서 시즌 2로의 연결은 분명 필연적이었고 심지어 원작도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됐을까.



숲길을 헤치는 제임스와 앨리사



일단 드라마를 보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장르의 변주’가 흥미롭다는 것이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블랙 코미디, 하이틴 로맨스를 적절하게 섞은 것 같은데, 글로 쓰니 장황해 보이지만 전개는 명쾌하다. 여기에는 원작의 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각본가와 감독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트렌디하면서도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은 기존의 드라마보다 압도적으로 짧은 30분 정도를 한 화의 분량으로 잡아 전개의 속도감을 잡았고, 그 짧은 시간 내에서도 긴장감의 강약을 잘 조절했으며, 약간 느슨하게 감정선의 정리가 필요한 파트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냈다.

특히 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장치가 긴장감에 큰 효과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이 드라마의 한국 제목은 “빌어먹을 세상따위”이지만 영어 원제는 “The End of Fucking World”이다. 연출도 노골적으로 세상의 끝처럼 배경을 표현했다. 제임스와 앨리사가 길을 떠난 후부터 주로 그들이 머무는 장소는 외진 숲 속, 살인마가 살고 있는 폐가, 차들이 거의 없는 도로, 허허벌판 위의 컨테이너 등이다. 그들이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식당 주변은 건물들의 느낌과 주된 배경색에서 웬만한 종말 영화들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분위기를 잘 살렸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 역시 겉으로는 선해 보였지만 제임스를 성추행했던 전직 군인, 교수이면서 동시에 살인마인 클라이브 등 흔히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등장하는 빌런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자원과 물자가 부족한 인류 멸망 뒤에서 자원을 무기 삼아 본인의 욕망과 인간 본연의 악을 채우는 사람들처럼 묘사되는 것이다. 이런 장치들을 찾아보는 재미만 해도 나름 쏠쏠했다. 그렇다고 해서 하이틴 로맨스 특유의 설레는 느낌이나 블랙 코미디의 씁쓸한 웃음이 약한 것도 아니었다. 잘 섞이지 않을 것 같은, 개성 강한 세 장르를 적절하게 버무려 자극적이면서도 깔끔한 맛을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영화는 그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것만으로도 칭찬 받을만하다.



두 사람의 첫 번째 키스씬



그리고 여기에는 “매력적인 캐릭터”의 몫이 컸다. 제임스와 앨리사는 겉으로는 정상인들과 거리가 멀지만 또 막상 까보면 평범한 10대에 불과하다. 제임스는 스스로를 사이코패스라고 착각하는 소년이고, 앨리사는 자신의 충동을 참지 않는 소녀다. 흔히 10대들이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는, 그리고 어른들에 의해서 억압되고 자제되는 모습을 영화는 영화 속에서나마 그대로 구현해놓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겉으로 옮기는 행동과 그로인해 벌어지는 상황은 상상 속 세계인 영화 속에서만 존재할 것처럼 보일지라도, 감독은 이들이 읊는 속마음을 섬세하게 짚어감으로써 10대 관객들 그리고 나아가 10대였던 관객들의 마음까지 자극할 수 있었고, 관객들은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과 판단, 결과까지 모두 감정적으로 이입해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건 조금 다른 맥락의 이야기인데, 나는 같은 상황 속에서 두 캐릭터가 보이는 다른 반응이 남녀의 미묘한 차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단 상황 자체가 충분히 그럴만하다. 세상의 끝에 다다른 것처럼 극단적인 배경과 그 속에 놓인 미성숙한 아이들. 그들은 아직 사회에서 성적인 역할을 억압받지 않았기 때문에 남녀가 본능적으로 보이는 차이를 잘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제임스는 자신이 사이코패스라고 착각하던 때에도 정신으로서의 본인과 신체로서의 본인이 일치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기 몸이 행하는 행동을 정신이 정확하게 의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면 앨리스는 ‘나는 후회할 걸 알면서도 왜 이런 말을 할까’처럼 자신의 몸이 행하는 행동을 정신으로서의 자아가 분리해서 인식한다. 예를 들어, 클라이브를 뜻하지 않게 죽이게 됨으로써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를 고민할 때 그전까지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상상하던 제임스가 오히려 자신이 저지른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어쩔 줄 몰라 당황해한다. 반면, 앨리스는 오히려 그 순간에도 자신이 저지른 일을 마치 제3자가 보는 것처럼 분리해서 인식했기 때문에 침착하게 제임스를 타박하고 해야 할 일을 지시할 수 있었다. 물론 당연히 이것을 남녀의 근본적인 차이인 것처럼 말하는 건 과도한 일반화다. 그저 개인적인 경험들에 비추어 떠올려본 것에 불과하니 가볍게 듣고 흘려주면 좋겠다.



범인을 쫓는 테리와 유니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앞서 이 드라마의 장르 혼합과 캐릭터 구성을 칭찬하긴 했지만, 사실 드라마 자체에 높은 평가를 주기는 힘들 것 같다. 왜냐하면 디테일한 서사와 캐릭터의 어긋남이 너무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나씩 짚어보면, 먼저 시즌 1의 아쉬움은 두 형사 캐릭터에 있다. 이 드라마 속 대부분의 어른들은 ‘빌어먹을 세상’의 다양한 측면을 대변하고 있다. 부모들의 맹목적인 자식 보호와 무책임함, ‘사회 속에서 어쩔 수 없었다’며 변명하는 행동들은 짜증이 날 정도로 잘 묘사되었고, 성적으로 뒤틀린 비정상적인 인간들 또한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잘 표현되었다. 물론 그나마 괜찮은 어른도 있는데, 제임스의 아버지(시즌 2에 들어와서 더욱), 앨리사가 도둑질한 가게의 주인, 그리고 형사 두 명 정도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형사 두 명이다. 두 인물은 모든 면에서 서로 상반되는 것처럼 설정되었다. 흑인은 제임스와 앨리사를 범죄자로 취급하며 어떻게든 체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백인은 두 아이들을 아직 어린 아이들이며 이 사태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어떻게 보면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가상을 다시 현실로 돌려놓을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나는 마지막 체포와 심판, 그리고 나아가 시즌 2와 이어지는 지점에서 그들의 역할이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은 시즌 2에서 등장조차 하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시즌 1에서도 이들의 생각 그리고 삶의 차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레즈비언이라는 설정도 대사와 어렴풋한 분위기로 넘어갈 뿐 두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이인지, 왜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지, 과거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매우 부족하다.



시즌 2에 등장한 보니



두 번째 아쉬움은 시즌 2의 전개에 있다. 시즌 1이 장르의 혼합을 통한 신선함을 기반으로 밀고 갔다면 시즌 2는 보다 직선적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복잡한 서사나 도전적인 스토리를 사용하지도 않고, 흔히 슬레셔 무비에서 이용되는 산장과 수상한 모텔 주인, 사이코패스 연인 정도를 차용한 것이 전부다. 그나마 보니라는 새로운 캐릭터와 그녀가 시즌 1 초반의 제임스의 사고방식을 닮았다는 점, 그리고 사랑의 방향에 따라 두 인물의 결말이 달라졌다는 점은 조금 흥미로웠지만 이마저도 연출과 분위기가 “겟아웃”과 “어스”에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다. 물론 보니라는 캐릭터를 등장시킨 것 자체는 시즌 1에서 시즌 2로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장치로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선택은 이 드라마가 시즌 2에 들어 신선함을 잃고 기존의 많은 블랙 코미디 장르와 비슷한 길을 가도록 만든 원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캐릭터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제임스는 아버지를 갑작스럽게 잃고 앨리사의 엄마 때문에 앨리사와도 멀어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본인을 기억하고 있는 마지막 인물인 앨리사에게 집착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종속적인 사랑으로 이어진다는 점은 분명 설득력 있었다. 하지만 시즌 1의 제임스를 한 번 되살려보자. 그는 본인을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했다가 거기서 벗어나며 성장했고, 마지막에는 순정적이면서도 지극히 어리고 미숙한 판단을 내려 관객들에게 미묘한 감정을 일으켰다. 이에 비하면, 시즌 2의 제임스는 대단히 심심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앨리사도 마찬가지다. 시즌 2의 결말에 다다라서 그녀가 시즌 1에서 저질렀던 살인에 큰 트라우마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지만, 이것이 다소 뜬금없게 느껴지는 것은 관객의 탓이 아니다. 영화가 결말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설명을 안했기 때문이다. 앨리사가 마치 시즌 1의 제임스처럼 감정이 줄어들고 무뚝뚝해졌다는 점은 흥미롭지만 이를 트라우마와 함께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하면 결말을 쉽게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서사 전체의 재미가 반감될 우려가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관객 입장에서 보면, 그건 또 다른 방식으로 해결했어야 하는 문제다.




평점 : 3 / 5


*****기준******

1 : (망작) 이걸 본 시간이 아깝다.

1.5 : 봤던 거 한 번 더 볼껄.

2 : 장점보단 단점이 많네.

2.5 : 단점 하나가 너무 크다.

3 : (평작) 뭐, 장단점 크기는 비슷하다.

3.5 : 장점 하나가 압도적이다.

4 : (수작) 단점이 거의 없다.

4.5 : 내 이름을 걸고 추천할 수 있다.

5 : (명작) 죽기 전에 하나만 더 볼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