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울제 복용과 관련한 수험과 다소 동떨어진 이야기
2차 시험이 막 끝나고 1년간 참았던 어깨통증 치료를 받으러 간 어느 날,
대기 인원이 많은 병원 로비에서 하마터면 짜증 가득한 얼굴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시끄러워!! 시끄럽다고!! 그리고 너는 왜 그렇게 정신 사납도록 다리를 떠는 건데!!"
물론, 마음의 소리였다.
다소 북적이는 로비에서 유모차에 탄 아이는 부모가 어르고 달래는 와중에도 핏대를 올리며 울어댔고 대각선에 앉은 10대 여학생은 정서불안처럼 계속해서 심하게 다리를 떨어댔다.
그 상황이 다소 불편하긴 해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올라올만한 상황은 아니었을 텐데 견디다 견디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던 나는 예약을 취소하고 병원 밖으로 나갈까를 10번쯤은 생각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수험기간 약 1년간을 계속 복용해 왔던 항우울제를 중단한 탓인 것 같았다.
작년 1차 시험 불합 후 회사도 퇴사한 마당에 갑작스레 방향을 잃은 것 같은 상실감이 몰려오기도 했고, 잠시 아르바이트라도 할까 싶어 모 회사 교육실에서 교육을 받던 어느 날, 그 공황이란 증상을 겪어버린 것이다. 큰 대로 옆으로 걷는 사람을 압도할만한 큰 빌딩들이 빽빽이 늘어선 도시의 한 빌딩 안 교육실, 창문도 없는 작은 공간에 10명이 넘는 교육생들이 종일 함께 교육을 받았더랬다. 그런데 너무도 갑작스럽게 그 공간이 진공상태가 되어버린 듯 숨 쉬기가 힘들어졌다. 마치 5초 뒤 그 거대한 건물은 그대로 붕괴할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빠져나가야 한다'라고 생각하니 10층쯤 되는 그 사무실에서 거대한 미로 같은 통로들을 지나 중앙 출입구까지 적어도 5분 이상이 소요될 것 같았다. 그 생각에 다다르니 죽을 것 같았다. 황급히 교육장을 빠져나와 건물 한 귀퉁이에 난 작은 창을 열었다. 그리고 쏟아져 들어오는 공기를 마치 산소호흡기를 단 환자처럼 흡입했다. 그리고서야 겨우 천천히 진정을 되찾았다.
우울과 무기력은 이제 너무도 익숙해 스스로도 너무 지겨울 지경이었지만 공황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다시 겪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결국 신경정신과를 다시 찾을 수밖에 없었다. 30대 중반 이후로 근 10년 만의 일이었다. 수험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그저 힘들었던 날쯤으로 공황의 순간을 넘겨버리고 그냥 '예민한 사람' 쯤으로 치부되며 살았겠지만 공황과 우울, 그리고 그 뒤에 어김없이 따라오는 과거의 아픈 기억들, 자괴감, 자기 혐오감.. 그 구렁텅이에 빠져버리면 헤어 나올 때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엉엉 울었다, 술을 먹었다, 억지로 잠을 자고 힘이 없어 일어나지 못하는 철창살 없는 감옥의 삶, 그리고 혐오스러운 자신의 모습이 견디기 힘들어 죽고 싶다 생각이 드는 최악의 수순.. 그런 상태로 공부를 한다니, 개가 웃을 일인 것이다.
여러 검사를 거쳐 의사는 알약 한 알을 처방했다. 세로토닌 분비와 흡수를 조절하는 항불안, 항우울제.. 보통 25mg을 매일 아침 복용하고 증상이 심한 날은 2알을 복용하는 것으로..
크게 부작용이라 할 것은 없었지만 약에 적응하기까지 3일, 일방적인 단약을 하던 3일,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땅이 올라오는 것 같은 어지럼증 정도를 겪어내야 했다.
약을 먹으면 확실히 편해지긴 했다. 그래서 공부를 하는 동안은 약이 내 몸과 기분에 미치는 영향을 굳이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2차 시험이 끝나고 문득 약을 먹고 기분이 괜찮아지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참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의사 말이 내 증상이 그렇게 심한 정도는 아니라길래 운동과 산책 정도로 스스로 조절이 가능할 것이란 판단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난 다소 번잡했던 그 병원에서 소리를 지를 뻔한 것이다.
지금은 다시 약을 복용 중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의사를 만나고 증상을 보며 조절하는 것으로..
사실 나는, 내 우울증의 깊은 발원지와 대체로의 해결방법을 잘 알고 있다. 아픈 마음의 큰 덩어리를 덜어내기 위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도전하는 삶을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지만 주요 근원지는, 이제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 그건 참 슬프게도 나를 가장 사랑하는 나의 부모로부터 발현됐다는 사실.. 정확히 말하면 아이를 키울만한 능력도 책임감도 없었던 내 어린 날의 미성숙한 두 젊은 남녀가 의도치 않게(정말 의도치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게 심어준 상처들.. 참 이상하게도 이제는 내가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부모보다 훨씬 큰 존재가 되었음에도 그 상처들은 절대 잊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잘 살다가도 가끔 마음의 밀도가 흐물흐물해지는 날이면 그 상처들이 바이러스처럼 침투해서 나를 한동안 무너뜨렸다. 내가 출세를 하고 돈을 많이 번다고 이 상처가 씻은 듯 사라질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