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EBS국제다큐영화제
<오 나의 블리스>

철없는 영이의 영화 파먹기

by 철없는 영

마닐라, 라는 지역배경만 제외하면 그곳은 대한민국 어느 도시, 우리 청년들의 이야기였다.


오 나의 블리스 2.jpg


이 영화 <오 나의 블리스>는 나루즈 파귀도폰 감독의 자전적 스토리를 셀피 영화로 담백하게 담았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불안정한 프리랜서 애니메이터로 살아가는 그는 10년째 블리스에서 거주 중이다.

블리스는 1970년 마닐라의 공무원을 위해 설계된 최신 아파트였지만 지금은 도시 이주민과 노동자, 대학생들이 살고 있는 허름한 아파트에 불과하다.


20대 후반, 본격적인 인생 항로를 고민하는 시기. 감독은 당장 월세를 걱정할 만큼 생계가 불안하지만 여러 기회가 끊이지 않는 마닐라에 계속 머물길 희망한다.

이따금 경제적 지원을 대는 어머니는 그가 고향으로 귀환하길 희망하지만 마닐라에 체류하려는 그의 눈물겨운 노력은 필사적으로 계속된다. 돈을 인생의 중요 포인트에 놓고 생각하는 것이 서툰 그는 마닐라 체류비를 마련하기에 안간힘을 쏟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오 나의 블리스 1_티켓.png


백기 투항하는 용사처럼 고향으로 내려온 그. 그러나 고향은 더 이상 어릴 적 포근하던 그곳이 아니었다. 평화로운 느린 삶은 무기력함으로, 힘이 되던 가족들은 불안정한 그를 압박하는 존재로 탈바꿈한다.

가족들과 부대끼면서, 특히 어머니와 크고 작은 갈등을 겪으면서 그는 다시 마닐라로 돌아왔고, 자신의 삶을 영화로 다루고자 하는 열망이 더욱 강렬해진다.


결국 가슴의 힘이 머리의 힘을 압도한 것.


장장 5년에 걸친 자전적 다큐영화 제작의 결과는 대성공. 2013년 인천에서 열린 피칭 워크숍을 통해 제작지원을 받고 그의 이야기는 더욱 탄탄해졌다.


애니메이터인 그의 특기가 고스란히 녹아든 <오 나의 블리스>.

좌충우돌 펼쳐지는 그의 이야기 사이사이로 그가 직접 기획하고 그린 애니메이션이 등장해 영화를 해설하는 기능을 한다. 영화 화면과 애니메이션이 결합된 신박한 구성. <오 나의 블리스>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였다.


자칫 짠한 이야기로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소재지만 감독은 이 심각한 생활문제를 비교적 유쾌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화면을 통해 분명 심각한 상황을 보고 있는데 객석에선 자주 웃음이 터졌다. 배우들이 대사를 나누는 모습, 화면처리 등 분위기를 심각하게 빠뜨리지 않으려는 감독의 노력이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 상영 후 이어진 감독과의 대화


KakaoTalk_20180823_215759518.jpg


Q. 영화 이후의 삶은 어떤가요?

A. 영화 이후 개인적인 삶에 대해 업데이트를 하자면 1년 반 전에 블리스를 나와 생활하고 있습니다. 영화에 주로 등장하는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은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2013년 피칭 워크숍을 통해 영화를 지원받을 기회가 생겼을 때 개인적인 고민이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픽션 영화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Q. 영화의 주제를 선정하게 된 계기는요?

A. 필리핀 경제가 계속 좋아지고 있다는 필리핀 정부의 발표에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2013년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이 문제를 좀 더 개인적인 문제로 풀어보고 싶었고, 블리스에 거주하는 제 삶을 통해 필리핀 경제를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Q. 영화 중간에 독특하고 약간은 괴이한 애니메이션이 등장하는데, 이 부분을 좀 더 상세히 설명해 주세요.

A. 저는 애니메이터였습니다. 2013년 워크숍을 통해 다큐영화를 접하게 되었고, 멘토링 과정에서 애니메이션과 다큐를 접목하는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5년간 우여곡절 끝에 영화를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애니메이션 구성의 아이디어는 게임에서 얻었습니다. 가슴에서 길게 뻗어 나오는 팔은 서로 잡아먹으려는 뱀의 모습을 형상화했습니다. 어쩌면 요즘 사회 우리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마닐라에서 삶을 지속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해 움직이는 인간의 욕망을 잘 표현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Q.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요?

A.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가진 소재를 창의적으로 풀어내려는 노력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힘든 순간을 오히려 힘으로 전환하여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처음 시작할 무렵 저 역시 미래에 대한 고민들로 매우 압박을 받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그 외롭고 힘든 시기를 힘으로 전환했고, 영화를 만들었고, 한국에서 여러분 앞에 설 수 있었습니다.




한 젊은 청년의 미래 고민, 남들과 다른 성 정체성, 가족과의 갈등과 회복,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의 서막이 열리기까지 리얼한 과정을 그대로 담아낸 <오 나의 블리스>.

비슷한 고민에 빠진 청년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오 나의 블리스 3.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