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영이의 영화 파먹기
어떤 기분일까, 혼자 힘으로 견딘다는 게..
정처 없이 구르는 돌처럼, 완전히 잊혀진 존재가 된다는 게..
제15회 EBS국제다큐영화제, 4일 차 8월 23일(목)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1관에서 만난 영화 <구르는 돌처럼>.
이 영화는 페스티벌 초이스 부문으로 관객들의 평가도 반영되어 수상이 이루어진다.
50여 년을 무용가이자 대학교수로 살아온 남정호. 그는 은퇴를 앞두고 이런 고민에 빠진다.
자신을 둘러싼 명예와 사회적 지위를 모두 벗고, 오로지 한 인간으로서만 살아가야 하는 은퇴 이후의 삶.
방향을 잃고 정처 없이 구르는 돌처럼 그의 사회적 부재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잊혀지게 될까?
은퇴를 앞두고 그는 제도권 교육 밖에 있는 학생들과 8일간의 만남을 갖게 된다.
자신의 내면에 감정들을 숨김없이 춤으로 표현하는 수업. 수업을 이끄는 남정호 교수는 제도권 교육 안에서 일정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학생들의 자유로운 몸짓을 통해 지난날의 자신을 회상한다.
교장선생님 아버지 슬하에서 엄격한 통제 속에 유년을 보낸 남정호 교수.
몸을 움직이며 자유를 느끼는 그는 무용이라는 삶의 길을 택했고, 그 선택은 그녀에게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가져다주었다.
좋은 대학, 외국 유학.. 그녀의 춤사위는 사회적 틀 안에서 교육되었다. 자유로워 보이지만 거기에도 약속된 표현과 방법이 존재할 것이다.
제도권 교육 밖에서 자유로운 몸짓을 선보이는 학생들을 지도하며, 은퇴를 몇 년 앞둔 시기에 새삼 "더 자유롭게 살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는 작은 노인.
잊혀진 존재가 되더라도 최소한 정처 없이 구르는 돌처럼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자유'를 표현하는 대표적 수단 '춤'
이성의 통제 하에 놓인 정신영역의 맞은편엔 언제나 자유와 본능으로 대변되는 신체영역이 존재한다.
'춤'이란 수단은 이런 신체영역을 통해 자유를 이야기하는 스토리 전개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소재만을 보고도 이미 영화의 흐름이 어떻게 전개될지 가늠할 수 있었다.
정형화된 틀 안에서 길러진 대학교수와 대안학교 학생들의 신선한 만남. 대립구도를 연상케 하는 이들의 소통 역시 춤이었다.
오로지 자신의 본능에 내맡긴 춤사위는 공간 안에서 모두 같은 존재였다.
단지 인간이란 이름표를 똑같이 붙인 개성만 다른 존재. 그래서 그들은 춤을 통해 교감할 수 있었다.
클래스에 참여한 학생들은 모두 각기 다른 얼굴과 체형을 가졌다. 수려하고 잘빠진 무용과 학생들이 아닌, 내 가족 같고 친구 같은 일반적인 모습의 사람들.. 그래서 그들이 말하려는 '자유'가 더 크게 공감되었는지 모른다.
잊혀진 존재가 되는 것으로 인한 불안은 사실 나이를 불문한 모든 이의 고민이 아닐까?
이 문제는 비단 은퇴를 앞둔 초기 노년의 고민이 아닌, 불안한 현실을 사는 우리 모두의 고민이다.
또한 인류가 존재하고 어느 정도 통제라는 것으로 만들어진 사회가 굴러가는 한 끝나지 않을 고민일 것이다.
직장, 집단이라는 조직에서 벗어나 소속감을 상실하는 불안감.
현대인은 그 불안감 속에서 점차 자신을 잃어간다.
사회에서 주어진 어떤 역할의 옷을 입고 그것이 '나'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잠시 빌려 입은 그 옷을 반납할 때,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상실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구성하는 한 가지 역할의 소멸.
아주 원초적으로 '행복의 주체는 누구인가'를 떠올린다면, 이 원초적 진실을 만나면 손쉬운 해결점을 스스로 만나게 된다.
변화무쌍한 인생의 모습은
어쩌면 누구나 구르는 돌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결국 혼자 굴러야 하고, 역할이 끝나면 서서히 잊혀지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약간은 불편한 느낌들이 살짝 일렁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모든 시선에서 자유로운 '온전한 나'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은퇴한 대학교수로서 구르는 돌과 아무런 명예가 없었던 일반적 구르는 돌이 느끼는 사회적 온도는 과연 비슷한 것일까?
'자유'를 가장 상위에 내걸고 진행된 클래스 속에서 참여 학생들 각각의 이야기 역시 교수의 그것과 비슷한 주제였을까? 하는 연이은 질문들..
손가락, 발가락, 섬세한 춤 동작 하나에 초점이 맞춰졌던 화면을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인생을 생각하게 했던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