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우 <아버지의 땅>

철없는 영이의 책 파먹기

by 철없는 영

임철우라는 작가의 이름은 낯선 이름이었다.

임철우 작가의 <아버지의 땅>

좋아하는 한강 작가에게 깊게 영향을 주었다는 책.. 그래서 꼭 한 번 읽어보아야 했던 작품, <아버지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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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문학지에 1984년 실린 작품이다.

당시엔 '빨갱이'란 단어로 모든 좌측을 금기시했던 시절.. 빨치산이었던 주인공의 아버지도 주인공에겐 혐오와 원망의 대상이었다.


사건은 군인이던 주인공과 동료가 야전 작업을 하며 벌어진다. 땅을 파던 그들의 삽 끝에 끔찍한 모습을 한 시체 한 구가 걸려 나온 것.. 철사로 손을 꽁꽁 동여맨 형상을 한 시체를 보며 군인들은 그 시체가 빨치산의 것임을 짐작한다.


행여 시체의 연고를 알 수 있을까 하여 마을로 내려가 한 어르신을 모셔온 군인들.. 어르신은 그 지역이 지형적으로 북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고, 한국전쟁이 끝나갈 즈음 북으로 도주하는 이들의 퇴로를 막기 위해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마을 일대 어디에선가 이런 시체 하나쯤 나오더라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


군인들이 빨치산으로 추정되는 시체를 함부로 대하자 어르신은 이를 제지하며 죽어서까지 편을 가르는 일은 부질없다며 신문지로 싼 유해를 묻고 작은 봉분을 세워 술을 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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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사건은 여기까지다. 작업 중이던 군인들이 한 구의 시신을 발견하고 마을 어르신과 그 빨치산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함께 묻어준 일.. 단순한 구성의 소설이 남겨준 깊은 인상은 '해소'와 '암울한 분위기'였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단순히 사고로 돌아가신 줄 알았다. 한창 반공 분위기가 몰아닥치던 시절, 학교에서 친구들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아버지의 비밀.. 아버지는 북으로 넘어간 빨치산이었다. 그 이후부터 주인공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무거운 형벌과 같았고, 숨겨야 할 수치와 같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주인공과 달리 늘 아버지를 기다렸다. 북에서 넘어오는 철새를 보고도, 따뜻한 봄날 이유 없이 마을 초입길을 돌아보기도 하며 애타게 남편을 기다린 것이다. 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원망스러움, 그런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머니에 대한 미움의 응어리가 크게 엉켜있었다.


빨치산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소중히 묻어준 마을 어르신도 전쟁 중에 잃은 형이 있었다. 마을 인근에서 한밤중에 끌려나가 시체도 찾지 못했던 형.. 혹시나 시체가 형의 그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따라나선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그런 세월에 해묵은 응어리들은 시체를 함께 묻고 술을 부어주며 마음속으로부터 서서히 해소되어갔다. 오래 묵은 체증이 서서히, 그러나 쑤욱하고 내려가는 느낌을 작품을 읽으면서 함께 공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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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또 하나의 매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느껴지는 '암울한 분위기'다. 메마른 겨울, 황량한 들판, 헝겊조각 같은 까만 날개를 퍼덕이는 한 무리의 까치들..

시신을 발견하기 전 무언가 무거운 일이 곧 벌어질 것 같은 이 암울한 회색 분위기가 짙게 깔려 숨통을 조여왔다. 사건이 해결되고 소설의 마무리에서 역시 이 암울한 한 무리의 새 때들이 다시 등장한다. 그리고 그 위로 하얗게 눈이 내려앉는다. 모든 것을 덮을 듯이 하염없이 내리는 함박눈.. 해묵은 마음의 상처들을 비로소 덮으려 내려앉는 하얀 함박눈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아귀가 맞게 잘 짜인 구성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일반 독자로서는 역사의 한 부분을 담은 사실적 소재를 다룬 가치 있는 소설을 만난 기분,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는 단편소설의 구성과 윤곽을 배울 수 있었던 깊고 깨끗한 우물을 만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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