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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Jun 03. 2019

알약 셋,

우울증과 제법 오래 살아온 철없는 영이의 체험기

#함부로 타인을 정의하지 마세요.


"내가 겪어봐서 잘 알아. 네 마음 다 알아.."


마음이 힘든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 말이 위안을 줄 것이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어쩌면 이 말은 우울증으로 마음이 힘든 누군가에겐 참 무책임하고 어이없는 말일지 모릅니다.


머리가 하나, 팔다리가 각각 두 개씩.. 기본적으로 '인간'이란 '종'을 생각해보면 좁은 도심에 그 많은 인구가 우글대며 살아가는데 신기하게도 저마다 다른 외모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외모도, 성격도, 기질도 제각각 독특한 외로운 소우주들.. 그래서 우리는 "내 맘 같지 않아.." "내 맘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런 말들을 그렇게도 자주 내뱉고 사는 건 아닐까요?


어찌 됐든 동그라미, 세모, 네모.. 모두 도형이란 범위 내에서 그것들은 생김도, 이동하며 바닥에 닿는 궤적도 모양과 크기에 따라 제각각 다르죠. 동그라미는 네모의 투박하고 거친 궤적을 알 수 없고, 세모는 같은 시간 더 먼 거리를 가야 하는 동그라미의 수고스러움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보면 함부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다 알아.."


과연 그럴까요? 

정말 한 번쯤 진짜 그런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생각해보면 정작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아주 피상적인 일부의 이야기들 뿐입니다. 결국 그 말은 자신의 좁은 경험을 바탕으로 함부로 그 사람을 이렇다 단정지은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어떤 말이 힘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요?


"나는 (블라블라) 이랬어.." 딱 거기까지 유사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혹은 "힘내, 내가 아는 너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더라.." 

우울증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며 아주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을 거치며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음이 깊이 아프기 시작하고 "네 마음 다 알아.."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에게 기대고 싶었고 치유받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후 그 인간관계에서 느껴지는 건 대체로 실망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과 내가 같지 않기 때문이고, 생각과 마음이 흘러가는 궤적이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사한 경험일지라도 결코 같지 않았던 환경과 마음의 수용 도구들이 전혀 다른 감정과 고통을 만들어 내는 데 어찌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말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진정한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꼭 너 같았어.. 그래서 네가 왜 그러는지 내가 다 알아.. 그래서 내가 이러는 거야."

"나도 나 자신을 모르겠는데, 네가 나를 다 안다고?"

나를 잘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나를 너무나도 잘 안다고 말하는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할수록 감정이 상하고 답답한 맘은 산처럼 커져갔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여전히 나에 대해 잘 안다고 이야기합니다. 

상대방을 잘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네모난 창틀 너머 상대를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없다고 단정 지으면 누군가에게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너를 잘 안다고..


우울한 마음을 상담하는 심리상담사들도 절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함부로 진단을 내리고 처방하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진행자가 되어 내담자가 스스로 길을 찾게 만들어 줍니다.


곁에 누군가가 마음에 피를 흘리고 있다면 함부로 상대를 잘 안다 진단하고 처방하지 마세요. 어쩌면 그것은 그를 더 외롭게, 자신의 동굴로 더 깊이 들어가도록 하는 위험한 말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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