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없는 영 Jun 18. 2019

알약 넷,

우울증과 제법 오래 살아온 철없는 영이의 체험기

#내 맘 속에 자라지 못한 가여운 아이


"너 몇 살이야 대체? 내일모레 마흔인데 하는 짓은 쓰레기네? 네가 진짜 정상이라고 생각해? 너 하는 짓을 보니 정신병원 열심히 다녀야겠다!!"


분노에 가득 찬 그의 음성은 내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전화기 너머에서 이쪽 세상으로 폭탄처럼 날아듭니다. 함께 격분하여 목소리를 높이다 이내 포기를 하고 맙니다. 단지 말할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 그와의 관계를 포기하게 된 거죠. 

어떻게 말해도 난 그에게 이해받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모든 사랑이 이해를 전제로 꽃 피우진 않지만 이해가 없어 매번 부딪히는 이 관계를 더는 지속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와 격렬하게 부딪히며 여러 번 삶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어 졌거든요. 우리 관계는 그만큼 위태로웠습니다.


결국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이젠 익숙한 외로움 속에서 생각을 하죠. 난 처음부터 그에게 어른인 척하지 않았는데.. 망가지고 아픈 모습을 그대로 이해한다 보듬겠다던 그에게 너무 기대 버린 걸까요? 

돌이켜보면 그는 내게 점점 지쳐간 것 같습니다. 그도 아픈 기억이 많은 사람인데.. 아직 아물지 않았을지 모르는 상처가 있는 사람인데.. 마지막으로 우리는 아픈 서로를 보듬기엔 너무나 지치고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란 걸 인정하고 말았죠. 


누군가에게 온전히 이해받길 바라는 마음.. 내 맘 속에 아직 자라지 못한 작고 가여운 아이..

그 아이가 그대로 내 마음 지옥 밭에 버려져 있다는 걸 인지한 것은 서른 살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불안하고 우울한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느끼던 감정들이 단지 사춘기의 반항 같은 통과의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서른 살 무렵 내 존재 자체를 집어삼킬 듯 심각하게 찾아온 우울감을 겪으며 그제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인지하기 시작했죠. 


아버지는 내가 자라던 학창 시절 내내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셋 씩이나 키워야 하는 현실이 힘드셨겠죠.. 그래서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드셨습니다. 아주 엉망이 될 때까지.. 


아버지가 취해 돌아오는 날이면 어머니와 우리 삼 남매는 잘못도 없이 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공부를 하다 불려 나와 무릎 아래가 없어진 듯 다리가 저려올 때까지 끝나지 않는 아버지의 주사를 들어야 했죠. 그때 풍기던 술냄새.. 혀 꼬인 발음과 내지르던 고함소리.. 

전 지금도 곁에 술 취한 사람이 지나가면 그때의 공포가 떠올라 몸을 움츠립니다. 


그런 아버지는 아들도 아닌 내가 상장을 받고 공부를 잘하는 것이 별로 달갑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쯤이었을까요? 상장을 내미는 제게 말씀하셨죠. 동생들 앞길 막는다고.. 네가 이런 거 받아 오면 아빠가 좋아할 줄 아냐고..


아버지는 말 그대로 집안의 폭군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점점 아버지에게 마음의 문을 닫았죠. 

가족에 대한 무언가의 기대를 포기한지도 오래되었습니다. 전신마취를 하고 장시간 진행하는 수술대에 오르면서도 결국 부모님께 알리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어쩌면 그때부터 내 맘속에 가여운 아이는 성장을 멈추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말이 맞지요.. 내일모레 마흔인데 마음이 아플 때마다 불쑥 그 어린아이가 자꾸 고개를 내미니 내가 참 한심하고 답답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마음속에 그런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타인은 모르죠. 그 아이가 가여워 밥을 먹다가도 울고, 길을 걷다가도 울고.. 그런 내 모습이 정상으로 보일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 말고는 아무도 그 아이를 안아줄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요. 


"아버님이 더 나이 드시기 전에 아버지와 그런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정식으로 사과를 청해보시는 건 어떠세요?"

오랜 심리상담을 진행해 온 담당 선생님은 제게 이런 방법을 권유했습니다.


"아니요..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저는 그냥 이 상처를 안고 가야 할 것 같아요. 그런 과거를 받아들이지도 제게 사과를 하지도 않으실 분이라는 걸 잘 압니다."


아버지에게 정식으로 미안하다 사과를 받는다면 제 마음속 아이가 조금은 성장할 수 있을까요? 

아버지에게서 채워지지 못했던 어린날의 관심과 사랑을 자꾸만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찾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조건이 없다는 상징적인 부모의 헌신적 사랑.. 그것은 사랑하는 이에게서 얻을 수 있는 사랑과 많이 다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속 어린아이는 자꾸만 헌신적인 그것을 달라고 떼를 쓰는 것 같네요. 그렇게 어긋난 관계의 조각들은 날 선 모서리로 우울한 제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들어버리는데 말입니다. 


"사람이 그렇게 살면 우울해서 못써. 마음을 밝게 가져야지. 왜 그렇게 바보같이 울고 다녀!"   

그 사람처럼 아버지도 내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내 삶 자체를 단순화시켜 무책임한 채찍을 휘두릅니다.

나는 또 말하기를 포기해 버립니다.

내 안의 어린아이가 웅크린 채 가엽게 울기 시작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알약 셋,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