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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Jun 23. 2019

알약 다섯,

우울증과 제법 오래 살아온 철없는 영이의 체험기

# 우울증을 처방해 드립니다.


모르는 전화번호가 뜬 휴대폰 진동이 늦은 아침 나만의 의도적인 게으름의 공간을 찢어버립니다.

받지 않으려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제 일의 특성상 혹시 중요한 전화일 수도 있겠다 싶어 폰을 집어 듭니다.


"여보세요?"

"... 곽 씨 바꿔봐."

다짜고짜 곽 씨를 바꾸라 반말로 일관하는 60대쯤으로 추정되는 느슨하고 짜증 섞인 남성의 목소리..

순간 혐오스러우리만치 불쾌한 감정이 솟구쳤습니다. 그런 목소리엔 으레 '나 옛날 사람이야. 매너고 뭐고 나 편하게 살다 죽을 거야'라는 전제가 깔린 듯해서 말이죠.


"네?" (똑같이 저질스럽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톤을 높여..)

"****번 아닌가?"

잘못 건 전화인 줄 알았으면 이제 그만 반말을 그칠 법도 한데 무식이 용기를 만들어내는지 계속해서 반말을 일관하는 상대방..


"맞는데 그런 사람 없고요. 전화 잘못하셨어요."

전화를 끊고 그 목소리가 두 번 듣기 싫어 수신차단을 해버립니다. 보통은 "어? 이상하네.." 하며 두세 번 더 전화를 걸어오니까요..


<언어의 온도>라는 책이 인기를 끈 적이 있죠.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공감하는 제목입니다. 언어에도 온도가 있고 시선에도 예의가 있습니다. 그런 타인과의 삶에 불문율로 존재하는 것들을 우리 모두가 인지하고 조금이라도 신경 쓰며 지킬 수 있다면 마음이 다치는 사람이 정말 많이 줄어들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아침이었습니다. 


달리다 생각지도 못하게 풀썩 넘어지듯 가끔 그렇게 우울감은 제 삶 속으로 훅하고 들어옵니다. 매일이 지옥이고 분, 초마다 우울해 못 견딜 지경이면 아마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겠지요. 다행히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가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듯 우울감에 빠져 일상에서 도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처음엔 여기저기 많이도 매달렸지요. 나를 좀 구원해달라며 간절하게 무언가를 붙들고 또 붙들었습니다. 그러나 심리상담도, 신경정신과도, 나만 바라봐 줄 것 같았던 사랑도.. 모두 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알게 된 지금은 스스로 몸을 낮추고 그 시린 칼바람이 내 몸 위를 타고 지나갈 때까지 혼자서 견디고 또 견뎌봅니다. 


이번에도 조금 강력한 감정 덩어리 녀석이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녀석을 맞이해야 할까.. 고민하던 저는 정신줄을 놓고 폭식을 하는 사람처럼 우울증과 관련한 모든 책들을 눈에 보이는 대로 읽어버렸습니다. 서점 베스트셀러 칸에 놓여 있는 우울증 체험기부터 도서관에 잠자고 있는 우울증 에세이, 철학서까지.. 루마니아 소설가, 에밀 시오랑의 철학서는 읽다가 결국 중단했습니다. 이걸 다 읽으면.. 몇몇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다시 읽고 모든 문장을 이해하게 되면 제가 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죠.


경증 우울증부터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중증 우울증까지..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담을 담담하게 책으로 풀어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 책 써보려고 척하는 거 아닌가?' 싶은 책도 솔직히 있었습니다. 우울증이 그렇게 간결하고 똑 떨어지도록 아름다운 결말이 나기 힘든데.. 어쨌든 제가 모르는 영역도 분명히 존재하는 거니까.. 함부로 말할 수 없겠지만요..


우연히 제 체험기 제목과 유사한 문장으로 쓰인 젊은 여성작가의 책도 만났습니다. 유일하게 가장 깊이 공감이 갔던 에세이였죠. 취재를 갔다 빈 시간이 생겨 카페에서 이 책을 마저 읽다가 사람들이 많은 그 카페에서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습니다. 이제 떠날 시간이 됐다.. 생각했던 작가는 무언가의 힘에 이끌리듯 스스로 행거에 목을 매고 자살을 시도했지만 행거가 무너지는 바람에 실패를 했습니다. 잠시간 의식을 잃을 만큼 줄에 목이 묶여있던 그녀는 온통 퍼렇게 멍든 얼굴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지요. 자살을 시도했다고.. 번개같이 그녀에게 달려온 남편은 펑펑 울었지만 그녀는 공허한 눈을 한채 그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죠. 모두 이해할 순 없지만 모순된 삶의 본질에 닿아 더 이상 이 세상에 미련이 없는 그녀의 공허한 마음과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랑하는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남편의 아픔이 고스란히 다 느껴져 에세이를 읽으며 여러 번 눈물바람을 해야 했습니다. 기억의 한계에서 문장이 휘발돼도 그것을 읽으며 느꼈던 색채가 고스란히 마음의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을 보니 최소한 이 작가는 진실을 썼구나.. 싶었습니다. 그 책을 읽었던 밤은.. 불면으로 고통받던 제가 제법 깊은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었을까요? 


며칠간 우울증과 관련한 책들을 다양하게 읽으면서 든 생각은.. 사람들은 우울증을 계기로 자신과 타인에 대해, 삶과 인생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모든 결과가 자책으로 귀결되는 모질지 못한 이들이 주로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남에겐 관대하면서도 자신에겐 유독 혹독한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요. 어찌 보면 이런 성향은 '사회적' 성공을 위한 디딤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채찍질하고.. 그보다 더 적극적인 '사회적' 성공방법이 있을까 싶은 정도네요. 링턴도 그랬고, 니체도 그랬고.. 우리가 아는 많은 명사와 위인들이 우울증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그들의 삶이 성공했다고, 행복했다고 느낄는지는.. 미지수네요. 


하는 일이 기자인데도 저는 인터뷰가 무섭고 사람에게 다가서길 꺼려하는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기사에 몇 줄 넣을 인터뷰를 생각하면서 내 말이 상대에게 실례를 범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5분이라도 늦어 상대의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훨씬 일찍 도착해 근처를 배회하기도 합니다. 돌아와서는 소위 정말 '병신'같지 않았을까? 그 시간들을 되뇌고 또 생각합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요.



남의 마음에 함부로 상처를 내는 사람들에게 우울증을 처방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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