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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Jul 04. 2019

알약 일곱,

우울증과 제법 오래 살아온 철없는 영이의 체험기

#끝없는 도돌이표


3년 전 근로자건강센터 임상심리사 선생님과 우연히 연이 닿아 약 1년 반가량 일주일에 한 번씩 심리상담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저 여자가 대체 무슨 고민이 있다고..' 생각할 만큼 사람들 눈엔 제 겉모습이 썩 괜찮아 보였던 모양입니다. 심리상담사 선생님도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기초건강검사와 병행한 스트레스 검사에서 저는 노인보다 더 심한 면역력 저하와 과도한 스트레스 상태에 있음을 진단받게 됩니다. 그 연유로 심리상담사 선생님과 연이 닿았던 것이지요. 나중에 따로 이야기를 풀 시간이 있겠지만 당시 저는 한 가지도 견디기 버거울 인생의 날벼락을 동시에 두 개나 견디고 있었습니다. 회사도 다니고 있었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선 드러나지 않았지만 정신적인 속사정까진 감출 수가 없었던 거지요. 


1년 반이나 상담을 받았고 당시엔 스스로도 어느 정도 우울감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어 상담을 종료했습니다. 그런데 이 우울증.. 한번 지나갔다고 영원히 이별하게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환경이나 상황이 조금만 흔들려도 우울의 그림자가 어른어른 비치기 시작합니다. 또 찾아왔나? 싶으면 어느새 정신과 육체가 우울증의 노예가 돼버려있더군요. 


몇 달 전 결혼을 하려던 이와 이별을 하고 가족과 연락이 거의 두절되면서 이 우울감이 자꾸만 커져가고 있던 상황입니다. 그래도 밥은 먹고살아야 하니 정말 귀찮고 하기 싫지만 이따금씩 취재를 나가야 합니다. 근로자건강센터 체험기를 작성하기로 한 저는 몇 년 만에 다시 제가 1년 반이나 상담을 받았던 공간을 찾았습니다. 다른 직원분과 사전 연락을 했었는데 센터 규모가 작다 보니 모든 직원에게 공유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저를 상담했던 선생님께서 제 방문시간에 맞춰 현관 앞에서 대기하다 들어서는 저를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너무 반가웠습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척 언니를 보는 것처럼 말이죠.


취재가 끝나고 선생님과 잠시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상담 종료하고 그럭저럭 잘 살다가 최근 결혼하려던 사람과 헤어지면서 다시 좀 힘들어졌어요. 너무 안 좋게 끝을 맺어서 상처가 좀 컸던 것 같아요. 제게 자꾸 화살을 돌리는 그 사람이 처음엔 너무 싫고 화가 났는데.. 생각해보니 제 잘못 같아요. 이렇게 마음이 병든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 친구는 벌써 결혼을 했겠죠.."


"관계에 있어 일방적으로 한 사람이 잘못하는 건 없어요. 특히나 그렇게 사랑하던 사이에는 더욱.."


한참 저를 조용히 바라보시던 선생님은 조심스레 한마디를 꺼냅니다.


다시 오세요



보름 전의 일이지만 전 아직 선생님을 다시 찾지 않았습니다. 다시 상담을 받게 된다면 선생님과 무슨 이야기들을 나눌지, 그 이야기들은 어떻게 흘러갈지, 선생님은 제게 무슨 말을 건네줄지.. 솔직히 이젠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꼭 제가 상담을 받았던 분이 아니라 다른 심리상담사 선생님이라 할지라도..


만일 제가 그곳을 다시 찾는다면.. 그건 아마도 이 힘든 마음을 나눌 이가 없어서일 것입니다. 함께 힘든 순간을 견뎌주는 사람.. 우울증을 상담하는 심리상담사의 역할은 바로 그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나를 이렇게 저렇게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우울증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함께 그 힘든 순간이 지나갈 때까지 견뎌주는 사람.. 심리상담의 역할은 거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불안한 내 곁에서 함께 견디는 타인을 보며 위로를 받아 증상이 호전될 수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무언가가 와 닿지 않아 그 연대를 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우울증이 정말 호르몬 이상에 의한 두뇌질환이라면 심리상담사도 뇌과학을 심층적으로 공부할 필요가 있을 텐데.. 대한민국에서 보통 상담심리학은 그 영역을 깊게 다루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들어요. 우울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위로받길 원한다면 꼭 심리상담사를 찾아야 한다는 것.. 다음에 더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지만 처음부터 정신과를 찾는 건 사람마다 다르지만 충격과 실망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지인에게.. 혹은 가족에게, 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건 정말 하지 않길 권유합니다. 누군가가 제게 물어온다면.. 


일상에서 이따금씩 찾아오는 가벼운 우울감은 충분히 털어놓고 공유할 수 있죠. 그러나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지독한 우울증.. 그건 내 영역 안의 사람들도 견디기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죠. 처음엔 공감하고 나누던 사람들도 같은 얘길 듣고 또 듣고.. 그러다 보면 점점 무뎌집니다. 나는 너무 힘든데 그 아픔에 무뎌져 가는 사람들을 보면 더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됩니다. 가족, 애인?? 다른 영역에 넣어놓고 그들은 다르다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들도 결국은 신이 아니거든요. 굳이 아픔을 나누고 싶다면 그래도 그 방면으로 공부를 하고 경험이 많은 심리상담사를 찾는 것이 돌아올 수 없는 깊은 수렁으로 빠질 우울증을 조금이라도 빨리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아닌가.. 싶네요.


경험담을 하나 더 쓰고 싶은데.. 글이 너무 늘어집니다. 그 얘긴 다음 편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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