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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Aug 11. 2019

알약 열둘,

우울증과 제법 오래 살아온 철없는 영이의 체험기

#심리상담, 돈 없이도 받을 수 있어요


"어떤 일 때문에 오게 되셨어요?"

상담실 문이 닫히고 상담 선생님의 이 한마디에 왈칵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한마디도 채 하지 못하고 먼저 터져버린 울음..

처음 보는 상담 선생님 앞에서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이 창피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번 터져버린 눈물은 좀처럼 멈추질 않았습니다.

흑흑 이내 어깨까지 들썩이며 숨죽여 내리 5분 여를 우는 동안 남편은 옆에서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혼을 앞두고 부부상담을 간 것이죠. 제 울음이 그칠 때까지 상담실 안은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벌써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전 이미 이혼을 했죠.

남편의 잘못된 사생활로 이혼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원인이 그것 하나여도 충분히 괴롭고 힘들었을 텐데 불행은 겹쳐서 몰려온다고.. 당시 살던 다가구 전셋집마저 경매에 넘어가 하루하루가 정말 어찌 지나가는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일들이 벌어지기 전에도 일상에 깊은 우울감이 드리워 힘겨운 날들이 진행되곤 했는데, 그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 버린 후에는 그야말로 중증 우울증에 갇혀버리게 됩니다. 결국 두려움에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자살시도도 한 번 한 적이 있으니까요. 당최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제게 남편은 마지막 자존심이자 자랑이었습니다. 22살 때 만나 6년을 한결같이 연애했고 가진 것 없이도 서로만 믿고 결혼을 망설이지 않았던 사랑 그 자체였기 때문이죠. 그런 그가 우리 사이의 신뢰를 저버렸다는 사실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 제가 잃었던 것은 남편이 아니라 그냥 내 삶의 모든 것이라는 느낌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뒤돌아보지 않아도 될 만큼 그의 유책사유가 분명한 파탄인데도 쉽게 그를 놓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 방법을 궁리하던 끝에 찾아낸 묘안, 바로 부부상담이었죠. 생각해보니 그것이 제가 받게 된 첫 심리상담이었네요. 사설센터도 많지만 당시엔 경매로 집이 넘어간 상황.. 부부상담에 회기당 1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상담을 받기란 무리수였습니다. 여러 방법을 찾던 제게 지역의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진행되는 부부상담이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래서 그 기회를 이용하게 된 것이죠. 상담을 받고 나서도 서로가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때 이혼하기로 약속을 하고 센터를 찾아갔던 것입니다.


무료로 진행되는 상담이라고 해서 질이 낮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입니다. 어느 지역 어떤 센터에서 어떤 상담사를 만나게 되는가에 따라 상담의 질은 복불복으로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드네요. 제가 상담을 받았던 선생님은 상담학 박사까지 공부하고 외부에 개인 센터도 가지고 있는 분이었던 것 같아요. 50대로 추정되는 여성분이었는데 상담스킬 보다 우선 진심으로 저희 부부의 아픔을 함께 공감하고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약 15회기 정도의 상담을 받았던 것 같아요. 각각 따로 5회씩, 나머지 5회는 함께..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그때 선생님과 나누었던 말들은 거의 기억에 없지만 저희 부부가 이혼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셨던 것 같았습니다. 우리들의 말과 행동 그 어딘가에서 아직 모든 가능성이 식지 않았음을 감지하셨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결국 우리가 선택한 것은 이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전 그 결정에 후회하지 않습니다. 상담은 그렇습니다. 상담 선생님의 처방을 받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매회 그와 나누는 대화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게 되는 과정이죠. 그러니 우울증으로 심리상담을 받게 되더라도 상담사가 전적으로 나를 이끌어 줄 것이란 완벽한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은 조금 성질이 다른 것 같지만..



요즘은 정신건강을 체크할 수 있는 기관들이 많아졌습니다. 값비싼 비용을 치르지 않더라도 말이죠. 지역에서 지원하는 센터들은 심지어 무료입니다. 정신건강센터, 근로자건강센터, 건강가정지원센터 등 지역 별로 있는 센터에 예약 방문하면 심리치료에 관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무료로 만날 수 있어요. 올해부턴 보험공단에서 20~30대도 우울증 검사를 무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꼭 심리상담이 아니더라도 신경정신과를 이용해야 할 때 괜찮은 병원을 소개받는 루트로도 좋은 것 같습니다. 괜찮은 제도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참 좋은데 어쩐지 정신이 아픈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진 세상이 되어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조금 씁쓸하긴 하네요.


누군가에게 터놓을 수 있다는 것 만으로 극에 달한 우울감이 조금은 해소될 수 있습니다. 친구에게, 연인에게 섣불리 아픈 마음을 열었다가 더 크게 상처가 벌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나를 알아주지 못하는 그들을 원망할 수도 없는 것이 그들은 이런 문제들을 오래도록 생각하고 고민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와 연결된 관계의 끈이 없고, 나의 아픈 마음을 오로지 증상으로.. 객관적인 시각에서 다뤄줄 수 있는 사람, 전문가에게 상담을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요? 찾아보면 생각보다 많은 기관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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