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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Aug 06. 2019

알약 열하나,

우울증과 제법 오래 살아온 철없는 영이의 체험기

#대체 가능한 존재가 된다는 인식이 주는 우울감(실은.. 넋두리..)


결혼을 고려하던 이전 연인과 함께 키우려 강아지 한 마리를 분양받게 되었습니다.

작고 귀여운 치와와 한 마리..

이후 녀석은 우리들의 모든 일상과 여행에 동반자가 됐죠. 행복한 부부와 아이를 대체한 강아지 한 마리.. 그렇게 가족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던 커플은 결국 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상대가 강아지를 딱히 데려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기에 이후 강아지는 계속 제가 키우는 것으로 되었습니다. 하지만 안정적인 급여도 없는 상황, 강아지를 데리고 움직일 차도 없는 상황, 일이 생겨 집을 비워야 하는 상황에도 딱히 이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죠. 반려견 보호시설을 자주 이용하기에는 금전적으로 부담이 컸습니다.


헤어진 연인은 강아지에게 본인도 책임이 있으니 제가 사정이 있을 때 맡아주겠다 했지만 그런 일로 헤어진 사람과 연락을 지속하기는 정말 원치 않았습니다. 차라리 여러 가지로 사정이 나은 그 사람이 강아지를 데려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강아지를 저보다 더 예뻐라 하기도 했고..


헤어지고 두 달쯤 지났을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수도 없을 만큼 몸이 아팠습니다. 택시도 들어오지 않는 외진 동네에 사는지라 몸이 좀 나아지면 병원에 가야지 생각했지만 고통은 며칠이 지나도록 나아지질 않았습니다. 일어나서 강아지 사료를 챙기고 변을 치우고 하는 일도 할 수 없었죠. 무엇보다 주인이 계속 일어나지 않고 있으니 강아지도 불안함을 느꼈는지 자꾸 아무 데나 대소변을 지리더군요. 몸까지 아픈데 케어할 일이 점점 많아지는 강아지.. 하는 수 없이 그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몸이 나을 때까지만 강아지를 맡아달라고요.


열흘이 지나는 동안 그는 강아지를 언제 데려갈 것인지 여러 번 물었습니다. 회사도 다니니 강아지가 부담스러운가 보다 싶어 내 상황에 강아지를 키우기가 힘들단 말은 여러 번 했지만 차마 당신이 맡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는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 새로운 강아지를 또 들여 키우더군요. 함께 키우던 강아지와 닮았다며..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강아지는 어디까지나 닮은 강아지일 뿐 함께 키워온 강아지를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했죠. (사실 닮지도 않았습니다만..)


헤어짐 후 그 짧은 시간 동안 그 사람에게는 제 강아지를 대체할 새로운 강아지가 생겼습니다. 아마 저를 대체할 존재도 이미 그의 곁을 채우고 있겠죠. "생각해보니 이전 연인을 별로 사랑하지 않 것 같다.." 제게 한 똑같은 그 말을 누군가에게도 똑같이 속삭일 겁니다. 나를 만나기 전 수도 없이 여자를 갈아치우고 환승 이별도 서슴지 않던 그에게 나만은 다른 존재일 것이라 생각했던 제 자신이 어리석었음을 이제와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저 옆자리를 스쳐 지나는 수많은 대체품 중 하나였을텐데 말입니다. 나의 존재를 그저 고려했을 그에게 함부로 확신을 얘기했던 제가 부끄럽습니다. 신뢰가 무너진 순간 끝을 내지 못하고 지지부진 관계를 이어와 결국 안 좋게 끝을 본 자신이 너무 한심해 미칠 지경입니다. 존재의 고유함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바친 진심이 짓밟혀 저는 또 한동안 깊은 우울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대체 가능한 존재가 된다는 것..


굳이 내가 아니어도 누구나 채울 수 있는 그 자리.. 누구나 할 수 있는 그 일..  

그런 일을 하거나 그런 존재가 된다는 인식이 들면 어쩐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가치 없게 느껴지고 나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느런 느낌을 받는 경우는 물론이고 대체 가능한 업무를 하는 직장인들은 이런 이유로 종종 우울감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나의 설 자리가 내 노력 여하가 아닌, 다른 원인들에 의해 조정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황당함이 무력감을 느끼게 했다가 우울감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OO기자가 꼭 써야 하는 기사가 아니라 모든 기자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소재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충분히 대체해서 할 수 있는 일.. 그 차이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구조.. 이런 이유로 저 역시 4년을 지속하던 일에 최근 슬럼프를 느끼고 있습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이 불안함과 불쾌한 감정들을..

일이라면 독창성을 발휘하거나 더 실력을 키워 좀 더 전문적인 분야로 진출하는 것 밖에는 뚜렷한 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그런 자리를 대체할 인력들은 너무나 많이 넘쳐나기 때문이죠. 심지어 요즘은 사람이 아닌 AI와도 경쟁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관리자의 불합리한 처사로 '상식적으로', '인간적으로'를 들먹이며 항의를 하려던 저는 그만 입을 닫았습니다. "불만이면 하지 마세요. (당신을 대신할 사람은 얼마든지 많아요)" 뒤에 제가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죠. 슬프지만 오늘 제게 일어난 현실이었습니다.


인간관계라면, 사랑하는 사이의 문제라면.. 그것을 끊어내고 잊어버리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네요. 그렇게 살아온 사람을 감히 내가 바꿀 수 있다고.. 그에게 나만은 특별한 예외일 거라는 어리석은 착각.. 결국 그 세계에 발을 담근 건 어리석은 나 스스로 벌인 일이니까.. 누굴 탓할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다리에 묻은 얼룩도 스스로 지워내야겠지요. 현명하지 못한 판단을 한 형벌로 말입니다.


누구 하나 사라진다고 해서 갑자기 세상이 멈추고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닙니다. 그런 광대한 범위에서 생각해보면 완벽히 대체 불가능한 존재도 없겠다.. 싶네요.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란 생각도 듭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씁쓸한 이 마음을 조금은 누그러뜨려 봅니다. 내 존재를 대체하든 말든 그마저도 관심이 없는 날이 오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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