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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Jul 29. 2019

알약 열,

우울증과 제법 오래 살아온 철없는 영이의 체험기

# 긍정의 에너지가 있는 곳으로


이번엔 무슨 이야기를 할까.. 오랫동안 고민을 해도 머릿속에 딱히 떠오르는 무언가가 없었습니다. 

이제 할 얘기가 다 떨어졌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이 매거진은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찾게 되니 무작정 내 얘기만 늘어놓기보단 제가 정신과나 심리상담을 경험했을 때 선생님들과 나누었던 무언가를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이미 경험을 해본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심리상담을 한다고 해서 선생님이 아주 드라마틱한 해법을 제시하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하는 노래에 선생님은 이따금씩 "얼쑤~"하는 추임새를 넣어준다고 표현하면 아마 비슷한 느낌일 것 같네요. 상대적으로 내담자가 말하는 시간이 많습니다. 상담을 아주 장기간 진행하게 되면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를 넘어 인간적인 유대가 쌓이기 때문에 상담자가 개인적인 어떤 의견을 제시하게 되기도 하는데요, 이것은 상담자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하네요. 


"OO 씨랑 오랫동안 상담 진행하면서 저도 솔직히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경험을 했어요. 상담자가 강하게 내 의견을 제시하면 안 되는 건데 나도 모르게 그리 한 적도 있었고.."


마지막 상담을 받던 날 선생님이 제게 이런 고백을 하더군요.

그런데 그런 고백들이 참 따뜻하게 제 마음을 안아주더군요. AI끼리의 만남이 아니라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대 인간의 만남이기에 철저히 원칙으로만 흐를 수는 없지요. 때론 그런 인간적인 무언가가 철저하게 준비된 상담보다 상처를 더 포근하게 감싸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최근 몇 개월은 제게 너무도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습관적으로 죽음을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어느 곳 하나 마음을 둘 곳이 없었고.. 설령 그런 사람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위안이 매우 일시적인 간사함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라는 걸 여러 번의 학습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또 역시 맘을 터놓지 않았을지 모르겠어요.


그나마 돈벌이는 제가 스케줄을 조정하며 할 수 있는 일이라 다행이었습니다. 일 욕심이 많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존재 자체에 위기를 느끼니 움직임은 최소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 남는 시간엔 뭘 했냐..
 그냥 누워있었어요. 이 세상에서 저를 단 하나의 인간으로 인식하는 반려견을 많이 쓰다듬고 안아줬어요. 녀석과 산책을 하고 늘 같은 장소에 앉아 풀과 나무를 바라봤어요. 


돈이 들어오는 글 외엔 거의 아무것도 쓸 수 없었고(이 역시 의무감에 했으나 스스로 느끼는 퀄리티를 생각하면 많이 부끄럽지요).. 늘 달고 살던 책도 문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손에서 놓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가족처럼 키우는 제 반려견을 "그 개새끼"로, 꿈을 위해 쓰는 글들을 "맨날 들어앉아서 하는 일"로 말하는 부모님과 연락을 단절하고 지냈습니다.(연을 끊은 것이 아니라 단지 제 맘이 회복될 때까지..) 만나면 늘 타인의 험담을 하면서 자신의 무언가를 숨기는 이웃과 관계를 단절했습니다. 제 마음에 무언가 부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것들과 이별을 한 것이지요. 



저는 지금 바닥을 찍고 다시 상승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마음도 언젠가 다시 무언가에 의해 잡아내려 질 것을 알지만 어찌 됐든 지금은 회복 중이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끝 모르고 하향곡선을 그리는 우울증 패턴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삶을 놓는 경우가 아니라면요. 널을 뛰긴 하지만 분명 우울함이 조금은 잦아드는 날도 있지요. 


마음의 거친 파도가 잠잠해지는 시간도 분명 필요하지만 돌이켜보니 저는 의도적으로 긍정 에너지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을 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나 상황을 접할 때 분명하게 느껴지는 에너지의 파장이 있습니다. 평소 마음이 건강해 단단한 상태라면 이런 환경에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게 되지만 우울증으로 마음이 힘들 때는 마음이 마치 퍼석한 무언가와 같아요. 어떤 것을 만나느냐에 따라 다시 단단하고 평온한 상태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푹 꺼져버리거나 완전히 파괴되는 경우가 평소보다 쉽게 발생할 수 있죠.


그런데 이런 마음 상태에서 쉽게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 사람도 힘들겠구나.. 그러니 나를 이해해줄지 몰라.. 우리는 서로 얘기가 통할지 몰라.."

동병상련 속에서 자칫 부정적인 에너지를 잘못 받아들여 상태가 더 악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록 우울하지만 내 마음이 건강하고 상대도 건강한 사람이라면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그 우울한 패턴을 벗어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에게 어떤 에너지로 영향을 미칠 상대가 기본은 건강한 사람인지 잘 판단하셔야 합니다. 간혹 어떤 이유로 돌이킬 수 없이 비뚤어지고 망가진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겉으로 봐선,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아선 알 수 없지요. 하지만 늘 타인을 험담하는 패턴으로 나와 관계를 유지하려 하거나.. 자신을 과시하려 하지만 정작 자신을 철저히 감추는 사람.. 등 부정적 에너지로 나를 옭아매려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상대가 늘 자신과 같이 어두운 구덩이 안에 있길 바라는 유형들이 많기 때문이죠.


"나도 그 아픔 겪어봐서 아는데.. 내가 저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

이건 보통 사연이 있는 상대를 사랑하는 경우 하게 되는 생각인데요, 말 그대로 정말 그 사람을 순수하게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걸 이해하고 더 나아가 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란 생각마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놀라서 다 등을 돌릴만한 상대의 그 무언가를 내가 계속 지켜보고 있는 이유는.. 그 사람을 사랑하기 이전에 내가 살아오는 동안 그와 유사한 무언가를 겪고 보고.. 그래서 그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아버지의 폭력과 폭언을 보고 자란 딸이 유사한 남자를 만났을 때 놀라 도망가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사랑이 아니라 익숙함 때문인지 모른다는 것이죠. 

어쨌든 이런 이유들로 부정적인 에너지들이 만나면 우울은 말 그대로 끝을 모르고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삶을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아주 치명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글 쓰는 일을 더 본격화하고 싶었으나 생계가 막연해 갈등하고 있던 제게 당시 상담사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으레 해줄 수 있는 무책임한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아마도 이 긍정 에너지와 연결된 말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불안과 의심은 도사리고 있지만 하고 싶은 일엔 긍정의 기운들이 넘쳐나기 때문이죠. 


최근엔 한 영역에서 비슷하게 글을 쓰는 어떤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인간관계 확장에 별다른 취미도 없고 사람에게 질릴 대로 질려본 사람으로 모임에는 잘 나가지 않는 편이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너무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우울함의 패턴을 이제 그만 끊어야겠단 생각도 늘 있었고요. 가기 전까지 못 나간다고 할까 여러 번 고민을 하다 스스로에게 모임 참가 미션을 내리고 결국 그곳에 가게 되었습니다. 친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글이라는 공통 주제를 놓고 건강한 대화가 오가고 비슷한 고민들을 주고받으며 마음이 치유됨을 느꼈습니다. 확실히 건강한 에너지들이 공간에 가득 찼지요. 매번 타인의 험담을 늘어놓고 자신을 감추던 이웃과는 다른 느낌의 에너지였습니다. 


마음이 힘든 순간 누군가의 손을 잡아야 한다면 당장 나를 이해해줄 것 같은 비슷한 에너지를 선택하지 마시고 현재 나보다 좀 더 건강한 사람들의 손을 잡으세요. 그 사람들에게 무조건 의지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실례가 될 수 있어요. 그들에게서 받는 긍정 에너지로 내 안의 고개 숙인 나를 건강하게 일으키세요. 나를 치유할 수 있는 건 긍정 에너지를 가진 타인이 아니라 그들의 에너지로 다시 건강해진 내 안의 자아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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